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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탄핵이 헌법정치 복원 계기 돼야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비선에 의한 국정 농단으로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위배함은 물론 권한을 남용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태로 주권자의 신임을 잃은 것이 확인된 결과다. 나아가 반성은커녕 대통령직을 더 이상 맡겨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헌법 수호 의무를 소홀히 하는 태도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파면당한 당사자는 명백한 승복 선언도 하지 않았고, 이 와중에 대통령 변호인단이나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탄핵 결정에 대한 불복을 선동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탄핵을 이념으로 편가르려는 건
헌법무시의 퇴행적 정치문화 탓
민주주의 헌법제정권자 국민이
정치엘리트 통제해 법치 재건해야

특히 이들의 불복 사유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운위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들은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거부나 탄핵심판 절차에 대한 모독적 행태를 감행했다. 정부수반의 직무상 일탈행위에 그토록 관대한 법치주의가 어느 문명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탄핵 불복 세력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촛불시민을 종북 세력으로 폄하하는 것도 법치 정신에 어긋난다. 자유민주국가에서 국기 문란과 권한 남용을 저지른 공직자의 탄핵을 요구하는 평화적 집회, 법 집행기관의 수사, 대의 기관의 소추, 심판 기관의 파면에 대한 불복을 편향된 이념 논리에 기대어 정당화하려 해선 안 된다.
 
민주화 30년의 길목에서 이뤄진 대통령 탄핵과 불복 사태가 초래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 즉 헌법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예컨대 탄핵당한 대통령이 탄핵 사유 외에도 일관되게 보인 행태에선 민주공화국 정부수반의 헌법적 덕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은 주권자가 위임한 행정권을 정부 조직을 통할하여 행사하는 정부수반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단독으로 행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대통령 1인에게 행정권을 부여하는 미국 연방 헌법과는 달리 우리 헌법은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국무회의, 행정 각부 등으로 구성되는 행정부와 대통령으로 구성되는 정부라는 집합 조직에 행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집단권력인 행정권은 정부 내부의 숙의와 협력을 기반으로 행사돼야 한다.
 
그러나 전 대통령 박근혜에게 행정권은 자신이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인식된 듯했다. 행정부를 오로지 자신 의 의지를 받아 적어 그대로 집행하는 수족처럼 다루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오로지 서면으로만 상대되고 국정 최고심의기관인 국무회의에서는 숙의가 아니라 오로지 지시만이 난무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좌천시키고 불법 수집된 개인정보로 검찰총장을 낙마시킨 무모함은 오히려 사소해 보인다. 법 집행권을 사익편취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와 법의식의 부재는 헌법 수호자의 역할을 다짐한 헌법에 따른 선서가 무색한 것이다.
 
관저도 집무실이라고 주장하는 억지, 그리고 그 말대로라면 대통령의 집무실일 수 있는 공간을 파면 이후에도 사흘 동안 점거했던 행태는 민주공화국 헌법을 무색하게 하는 자기모순의 극치이다. 법을 무시하고 분립된 다른 국가권력 위에 군림하는 행태는 공적 권력을 사인의 인격으로 대치하는 공직 의식 결여의 전형을 보여준다. 민주공화국은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의한 독재의 거부를 제일의 가치로 한다는 점에서 권력을 인격화한 독재적 의식에 사로잡힌 정치문화의 퇴행성이 탄핵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헌법 무시의 퇴행적 정치문화는 무엇보다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의 헌법에 대한 저작권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아 왔던 데 기인한다. 헌법의 제정이 정치 엘리트만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정작 국민은 수동적으로 승인해온 불행한 역사 때문이다. 주권자에게 내가 만든 우리의 최고법이라는 자각이 없는 헌법은 그저 죽은 문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탄핵 이후를 국민이 참여해 숙의하는 절차도 없이 정치권만의 권력구조 개헌 논쟁으로 마무리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탄핵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부족을 드러낸다. 헌법 무시로 발생한 권력의 전횡을 또다시 정치 엘리트들만의 권력 배분의 문제로 접근하는 정략에서 또 다른 탄핵의 그림자를 읽지 않을 수 없다.
 
부적격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협력했던 세력이 주도하는 권력구조 개헌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 개헌의 방향이라는 것이 국민의 직접적인 정부수반 선택권을 박탈하고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자초한 공범일 수도 있는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행사하는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라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는가?
 
이번 탄핵 사태는 무엇보다 국민이 헌법의 저작권을 회복하여 헌법정치를 복원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치 엘리트 간의 권력이동이 아니라 주권자가 정치 엘리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자유·민주·복지를 기본 요소로 하는 민주공화국을 재건하는 기회여야 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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