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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혼자 사는 가난한 형까지 내가? ‘형제부양’ 고민 빠진 일본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선 늙어 가는 형제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돈·직업·배우자가 모두 있거나 세 가지 모두 없는 형제간의 격차가 원인이다. [사진 지지통신]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선 늙어 가는 형제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돈·직업·배우자가 모두 있거나 세 가지 모두 없는 형제간의 격차가 원인이다. [사진 지지통신]

#1. 일본 도쿄(東京)에 사는 47세 여성 도다(戶田)는 세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생활비에 여유가 없는 그에게 요즘 최대 고민은 독신으로 사는 언니다. 도다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세 살 터울의 언니를 언젠가 내가 돌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초고령화 시대 새 사회문제로
직업 없이 부모에 얹혀 살던 캥거루족
혼자 되면 정부 보조 없어 생계 막막
한국과 달리 법으로 형제가 부양의무
40대 주부 “언니 평생 돌봐야” 한숨
갈수록 느는 ‘독신 니트족’의 재앙
“사회가 분담할 수 있게 제도 개선을”

도다의 언니는 변변한 직업이 없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다. 경제적 능력이 없다 보니 노부모에게 얹혀 산다. 대기업 출신의 80대 아버지가 받는 연금 덕분에 세 사람이 생활하는 데 아직까진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다. 그는 “언니가 혼자 살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간병은 오롯이 내 몫이다. 나이 차이도 많지 않으니 평생 돌보게 될까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2. 49세 회사원 니시야마(西山)에겐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누나(51)와 비정규직 남동생(45)이 있다. 80대 노모가 보살피는 누나의 경우 어머니가 숨져도 장애인연금이 있어 걱정이 덜하다. 또 지역사회의 장애인 돌봄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주 3일 정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남동생은 늘 생활비에 쪼들린다. 국민연금도 노모가 대신 내주고 있다. 니시야마는 “동생은 도쿄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20년 이상 자립하지 못했다”며 “매달 용돈을 보내 주고 있지만 늙어 가는 남동생을 언제까지 도와야 할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돈·직업·배우자 유무로 ‘형제 격차’ 생겨
 
가족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에선 형제부양의 책임 역시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경향이 크다. [중앙포토]

가족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에선 형제부양의 책임 역시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경향이 크다. [중앙포토]

최근 일본에서 나이 든 형제를 책임져야 하는 ‘형제부양’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연말 출간된 『나는 형제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에 소개된 두 사례처럼 돈·직업·배우자(가족)가 있는 형제와 셋 모두 없는 형제 사이에 이른바 ‘형제 격차’가 발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 사회에서 격차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요즘 우리가 금수저·은수저를 논하듯 당시 일본에선 ‘격차(格差)사회’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2006년 ‘신어·유행어 톱10’에 꼽힐 정도였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 ‘1억 총중류 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중산층이 두껍고 빈부 차가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거품경제가 붕괴한 뒤 91년부터 2000년까지 ‘잃어버린 10년’ 동안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상당수 중산층이 무너지고 계층 간 격차가 급격히 커졌다.
 
공교롭게도 격차사회가 시작된 그즈음 일본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초고령 사회란 만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사회다. 늙은 사람이 많다는 건 부양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이 고령화 현상이 기존의 격차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형제 격차에 따른 형제부양의 부담이 그 단적인 예다.
 
형제부양의 밑바탕엔 임금 격차가 자리한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에 따르면 84년 15.3%였던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이 2014년엔 37.4%로 3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꼴로 비정규직이란 얘기다. 개인 차원에서도 비정규직 형제자매가 있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지게 됐다.
 
제대로 된 구직활동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이른바 니트족(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NEET)이다. 총무성 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15~34세의 니트족은 61만7300명(2012년)에 이른다. 35~49세의 중·장년 니트족도 2002년 통계 때 이미 49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니트족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않고 늙어 간다면 향후 110만 명이 형제부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16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20~59세의 고립무직자(Solitary Non-Employed Persons·SNEP)는 더 큰 위협으로 지적된다.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성장한 경우다. 아동·청소년기에 학교를 거부하고 집 안에 틀어박혔던 이들이 나이만 먹은 것이다. 겐다 유지(玄田有史)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는 “니트족은 최소한 사회관계라도 가지지만 SNEP는 가족의 테두리조차 벗어나지 않았다”며 “아르바이트조차 기피하는 이들을 돌봐야 하는 형제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비혼 문제도 있다. 일본에서 50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모태 솔로’ 비율을 의미하는 생애미혼율은 꾸준히 오름세다. 여성보다 남성의 생애미혼율이 더 높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생애미혼율은 남성(20.14%)이 여성(10.61%)의 두 배나 된다. 이들의 상당수가 소득 부족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사회에서 연애에 관심이 없는 ‘초식남’을 넘어 이성에게 아무런 흥미를 못 느끼는 ‘절식남’이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부모와 함께 사는 중년 미혼자(35~44세)도 80년 39만 명에서 2014년 308만 명으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 모두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은 아니라고 해도 일부는 부모의 연금과 주택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다 동거하던 노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해질 수 있다. 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생활보조금을 타려면 전제가 있다. 일본 민법 877조 제1항은 “직계 혈족 및 형제자매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부양가족이 없을 때라야 정부에 손을 벌릴 수 있다. 다시 말해 독신으로 늙어 가는 가난한 중·장년이 먼저 의지할 곳은 하나 또는 둘뿐인 형제다.
 
40~50대 비정규직 중년 독신녀 가장 심각
 
최근 아사히신문은 형제부양 대상 중에서도 40~50대 비정규직 중년 독신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의 임금은 나이가 들어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수준이다. 이들은 어느 집단을 대상으로 해서 비교해도 임금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4세의 정규직 여성보다 월급이 5만 엔(약 50만원) 정도 적다. 50대 정규직 남성의 평균 월급과 차이는 30만 엔(약 300만원)가량 된다. 또래 비정규직 남성에 비해서도 8만 엔(약 80만원) 정도 적게 받는다.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다 독신으로 중년이 된 여성들은 가족에게 기대는 것도 마땅치 않다. 여기엔 결혼·출산을 하지 않은 여성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 특유의 편견도 작용한다. 노요리 도모코(野依智子) 후쿠오카여자대 교수는 “비정규직 중년 독신녀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집단인데도 비슷한 처지의 남성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싱글맘 등과 비교해도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히라야먀 료(平山亮) 도쿄건강장수의료센터 특별연구원은 “형제격차 문제의 근본 원인은 형제를 돌보지 않으면 도덕적인 비난이 뒤따르는 사회구조”라면서 “사회가 부담을 나누지 않으면 가족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참고자료
『나는 형제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 히라야마 료·후루카와 마사코 지음, 어른의시간 펴냄(2016), 『격차고정』 미우라 아쓰시 지음, 세종연구원 펴냄(2016)
 
김상진 기자 k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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