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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16

 <빽다방>
 
커피를 좋아한다. 사랑하진 않는다. 사랑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아무튼, 난 커피를 좋아하다. 하루에 적게는 1~2잔, 많게는 3~4잔 마시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고 느낄 때가 있을 리가 있나. 커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물을 따라잡을 순 없다. 물보다 진한 건 피뿐이다.
 
하지만 난 커피 애호가는 아니다.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커피의 역사에 대해서도 모르고 커피의 제작 공정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원두의 종류에 대해서도 물론이다. 가끔 어떤 카페를 가면 원두를 선택해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다. 난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기에 그럴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그게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떤 원두를 선택해도 커피는 늘 같은 맛이었다.
 
사실 커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다.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정하게 보이려나. 하지만 사실이니 별수도 없다. 야 커피, 너 여기 선 보이지? 너 여기까지만 와야 돼. 이 선 넘어오면 안 돼. 즉, 나는 커피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커피가 나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좋아한다. 몸이 찌뿌듯할 때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컨디션을 정상으로 돌려준다. 새벽에는 밀린 작업을 끝까지 붙들고 있게 해주기도 한다. 커피는 나에게 도구적 존재다. 난 커피를 이용한다. 너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하지만 난 너에게 중독됐어.
 
무조건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평생 동안 뜨거운 커피를 마셔본 적이 몇 번 없다. 태음인이기 때문이다. 몸에 열이 많다. 겨울에도 두꺼운 겉옷을 잘 입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도 열이 많다. 뜨거운 남자다. 한편 김경주 시인은 나와 정반대다. 그는 늘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그는 늘 내게 이렇게 말한다. “얼음을 넣는 순간 커피의 진짜 맛은 휘발되는 거야.” 나도 알고 있다.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진짜 맛이 휘발되어도 별 상관은 없다. 커피, 너의 진짜 맛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 하지만 널 좋아해.
 
커피 애호가와는 거리가 멀기에, 나는 커피 애호가라면 하지 않을 행동도 곧잘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빽다방’에 자주 가는 것이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커피 애호가들을 오만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빽다방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커피 애호가들은 대체로 빽다방 커피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빽다방에도 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말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빽다방의 아메리카노는 커피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 또 빽다방은 빽다방만의 타깃 필드가 있지 않나. 그 필드 안에 커피 애호가는 별로 없겠지만.
 
하지만 그 필드 안에는 김봉현 씨가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위로를 얻었다. 김봉현 씨의 집 근처에는 빽다방 연남점이 있다. 성인 남성의 힙합 걸음 기준으로 걸어서 1~2분 거리다. 못해도 2~3일에 1번은 가는 것 같다. 빽다방에서 김봉현 씨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원조 냉커피’와 ‘체리 빽스치노’다. 김봉현 씨의 입맛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 물론 김봉현 씨는 비싸고 고급 음식도 잘 먹는 사람이다. 먹으면서 이게 왜 맛있는지, 왜 비싼지도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범위를 벗어나는 음식에 배타적이거나 그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은 아니다. (굳이 찾아 마시진 않지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원두로 만든 커피도 잘 마실 수 있고 빽다방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즐길 수 있는 사람, 또 최고급 코스요리도 맛있게 먹으면서 편의점 삼각김밥도 얼굴에 미소를 띠며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김봉현이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너무 멀리 왔다. 정신을 잃었다. 다시 돌아가자. 빽다방 연남점의 사장님은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이다. 늘 친절하시다. 난 그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다. 버스에서 가지고 내린 고객 불만 수리용지도 쓰레기통에 버렸다. 물론 나 역시 훌륭하다면 훌륭한 고객이었다. 메뉴 주문할 때만 입을 열고, 조용히 음료를 받아 나가는, 그러나 인사는 잘 받아주는 고객이 바로 나다. 그런데 얼마 전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메뉴를 주문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혹시 김봉현 님 아니신가요?” 올게 왔구나. 결국, 내가 이렇게 유명해져 버렸구나. 안 되는데. 동네에서만큼은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은데. 이제 어디로 이사 가야 하나. 이런 게 유명인이 내는 세금이구나.
 
나는 맞다고,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제가 도끼를 너무 좋아하는데요. 도끼로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어떤 사진에서 도끼 옆에 계시더라고요. 어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이 사람 우리 가게 손님인데, 그랬죠.” 역시 망상이었다. 세상, 이상, 너무나도 괴상, 내가 유명하다니 그건 너무 망상. 찰나의 달콤함은 이렇게 깨져버렸다. 말하자면 나는 일종의 ‘부록’이었다. 도끼 옆에 서 있던 부록. 그가 본 사진은 내가 주최하고 있는 서울힙합영화제에서 도끼와 콰이엇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 그 사진 이상하게 나왔는데. 그리고 그제야 난 이 가게에 늘 흐르던 배경음악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거의 늘 도끼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늘 이어폰을 끼고 다녀서 잘 몰랐을 뿐.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동안 안 오시는 것 같아서 기다렸어요.”
 
그 후, 그는 내가 갈 때마다 잘해주었다. 소프트아이스크림 메뉴를 이미 마감했음에도 다시 기계를 켜 내 주문을 받기도 했고, 어떤 메뉴든 평균보다 더 많이 얹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은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잘 가던 가게에 발길을 끊은 경우도 종종 봤다. 손님과 점원의 거리 조절은 이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김봉현 씨는 다르다. 의식을 아예 안 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큰 부담까지는 없었다. 나는 그의 호의를 가게를 더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갚아나갔다.
 
나는 그에게 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도끼를 좋아하니 내 책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날 더 좋아하면 되니 다행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서울힙합영화제에도 영화를 보러 왔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홍대CGV에서 열렸던 나와 이하늘(47, DJ DOC)의 GV를 객석에서 지켜봤다. 고마웠고 기분이 좋았다. 이런 소소한 인연이 생겨나는 삶이 좋은 삶이 아닐 리 없다.
 
내가 언제까지 연남동에 살지는 모르겠다. 당장 다음 달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이사를 갈 수도 있다. 또 그가 언제까지 연남동에서 빽다방을 운영할지도 잘 모르겠다. 내일 갔는데, 가게가 없어져 있을 수도 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19 소방차가 지나가면 단 5초라도 멈춰 서서 얼굴 모르는 누군가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만약 빽다방 연남점이 나에게 말도 없이 사라진다고 해도 난 섭섭해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때의 나는 5초간 멈춰 서서, 얼굴은 아는 누군가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때때로 흔들려도 결국은 살 만한 삶을 그가 손에 쥐길 바라면서.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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