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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재의 대통령 파면은 국민의 명령이다

어제 헌법재판소가 8인 재판관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파면을 결정·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말 그대로 ‘폐위’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안타까운 국가적 비극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됐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헌재의 판결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지지한다. 이 판결에 모두 승복해 법치의 새 역사를 열어야 한다고 본다.
 
이날 헌재는 박 대통령에 대한 다섯 가지 탄핵 사유 중 두 가지를 직접적 탄핵 인용 근거로 판단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허용·방조하고 그녀의 사익 추구를 지원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남용,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구체적으로 대기업 출연금으로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운영·의사결정에 관여했으며 KD코퍼레이션·플레이그라운드·더블루K 등을 통한 이권 추구 과정을 지원했다고 적시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이런 행위는 헌법·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해 대의민주주의제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기거나 부인하고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해 국회의 견제와 언론의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국정은 비선 실세가 아닌 공조직에 맡겨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한 뒤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가 결정문에서 “대통령이 최씨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힌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대기업들을 뇌물죄로 사법처리하려는 특검과 달리 강요의 피해자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헌재가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비판한 대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박 대통령이 세 차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 협조를 약속하고도 정작 검찰과 특검조사에 불응하고 청와대 압수수색마저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번 헌재의 탄핵 인용 의미는 엄중하다. 아무리 대통령일지라도 결코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 어떤 권력자들도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 이번 탄핵은 헌정 질서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켰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촛불 진영과 태극기 진영이 각자의 깃발을 들고 나왔지만 폭력 사태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쥔 대통령을 국민이 권한을 부여한 헌재를 통해 민주적으로 퇴장시킨 건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의 분열과 혼돈을 멈추고 위기극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헌재가 “오늘의 선고로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듯이 먼저 박 전 대통령부터 승복 선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거리에서 반발하는 지지세력에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지막 애국이다. 2007년 박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뒤 내놓은 것과 같은 승복 연설을 다시 한번 듣고 싶다.
 
대통령 파면 이전과 이후의 한국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어제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 2명이 숨지고 다수가 부상한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냉정하게 보면 이제 탄핵 열차도, 탄핵 시계도 멈췄다. 울분을 묻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또다시 최고지도자가 탄핵받는 비극이 되풀이돼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은 어제 한 사람의 대통령을 잃었지만 흔들리던 법치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갈등을 치유하고 다시 힘을 모아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국가적 위기마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우리민족의 빛나는 DNA의 힘을 다시 한번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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