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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파면 피할 기회, 박 대통령 스스로 걷어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을 피할 수 없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 전 대통령에게는 적어도 파면은 피할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 재판부는 형량을 정할 때 ‘정상 참작’ 사유를 고려한다. “피해자와 합의한 점’, ‘피해를 회복하려 노력한 점’,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점’ 등이 판결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상 참작의 사유다. 
 
반대로 죄를 뉘우치지 않거나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을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벌을 무겁게 한다.
 
(중제)국민의 신뢰도 중요한 판단 기준 
 
이런 관행은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2004년 5월 당시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를 부탁하는 내용의 발언이 공무원으로서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라고 비판한 것과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은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봤다.
 
하지만 위반 행위가 파면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때 헌재는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을 기준으로 삼았다. 또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 결정문의 설명은 이렇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정당화되는 것이다." (2004년 5월 14일 헌재 탄핵심판 결정문 중)

 
이런 기준은 이번 탄핵사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정상 참작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헌재 결정을 요약하자면 ‘잘못을 저지른 대통령이 죄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결정문 요약본을 보면 박 전 대통령에게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구절이 있다. 재판관들은 결정문 중 상당 부분을 할애해 박 전 대통령이 사태 수습과 잘못을 해결하려는 진정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힌트는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인지 여부’의 부분에 있다.
 
(중제) 박 전 대통령, 기회 올 때마다 제발로 걷어차 
 
재판관들은 우선 박 전 대통령이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고 의혹을 제기한 것을 거꾸로 비난한 점을 강조했다.
 

“피청구인(박근혜)이 행정부처나 대통령비서실 등 공적 조직이 아닌 이른바 비선 조직의 조언을 듣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그때마다 피청구인은 이를 부인하고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하였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하였을 때에도 피청구인은 비선의 국정 개입 의혹은 거짓이고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 문란 행위라고 비판하였다.”

 
2017년 3월10일 헌재,만장일치.1475일만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그에겐‘최초’라는 수식어가 하나더 붙었다.헌정사상 최초 탄핵 대통령

2017년 3월10일 헌재,만장일치.1475일만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그에겐‘최초’라는 수식어가 하나더 붙었다.헌정사상 최초 탄핵 대통령

나아가 박 전 대통령이 국회와 언론이 문제를 지적했을 때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잘못을 시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하였기 때문에,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일한 안종범과 김종 등 공무원들이 최서원과 공모하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질렀다는 등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두 차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와 진상 규명 협조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아 진정성이 부족했다고 했다.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 개입 등이 문제로 대두되자 2016년 10월 25일 제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사과하였으나, 그 내용 중 최서원이 국정에 개입한 기간과 내용 등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진정성이 부족하였다.”


“이어진 제2차 대국민 담회에서 피청구인은 제기된 의혹과 관련하여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고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제) 파면의 결정적 이유 된 '헌법 수호 의지'
 
재판관들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박 전 대통령의 태도는 ‘의혹 부인’, ‘사실 은폐’, ‘조사 거부’로 요약된다. 재판관들은 이런 진행 과정을 종합할 때 “피청구인의 헌법 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피청구인은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의 이러한 언행을 보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기회는 많았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자신을 돌아보고 측근들을 쇄신할 기회였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때 진솔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조처했다면 일은 커지지 않았을 수 있다. 최씨의 태블릿PC를 통해 청와대 기밀자료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도 그리 늦은 건 아니었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 협조해 신뢰를 회복하고 뒤늦게나마 헌법의 수호자로서 제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정상 참작’이 될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불명예를 자초한 셈이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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