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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양이 분투기

한국의 고양이 섬으로 이름난 경남 통영 욕지도 목과마을에서 만난 고양이.

한국의 고양이 섬으로 이름난 경남 통영 욕지도 목과마을에서 만난 고양이.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여행기자는 조급해진다. 완연한 봄에 접어들기 이전에 봄소식을 건져 올려야 한다. 봄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꽃이다. 활짝 핀 봄꽃은 누구나 좋아하고 잘 팔리는(?) 기사 소재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남쪽에서 전해오는 꽃소식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한데 봄꽃은 봄을 반기는 사람의 마음보다 항상 더디다. 춘삼월에 접어들었지만 3월 중순이나 말께가 돼야 산수유꽃이든 매화꽃이든 제법 사진에 담을만한 풍경을 연출해준다. 그래서 만만한 취재 거리가 동백이었다. 동백은 고맙게도 늦겨울에 꽃을 피운다. 고백하자면 해마다 3월초에 봄소식을 지면에 담는답시고 전국의 동백 군락지를 찾아다닌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한국의 고양이 섬, 욕지도에 갔다
소시지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났다

경남 통영 욕지도에 핀 동백꽃. 욕지도 봄 풍경의 주인공은 꽃이 아니었다.

경남 통영 욕지도에 핀 동백꽃. 욕지도 봄 풍경의 주인공은 꽃이 아니었다.

올해 봄소식도 으레 동백꽃으로 대체할 요량이었다. 남해에 떠 있는 작은 섬, 욕지도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32㎞ 떨어진 욕지도는 고양이 매니어 사이에 입소문난 ‘고양이 섬’이라고 했다. 고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감’이 작동했다. 바닷가 방파제에 드러누워 봄볕을 받는 고양이 사진이라면 남쪽의 봄기운을 전하기 딱이겠다 싶었다. 데스크에 보고했을 때, 부장은 기꺼이 취재해보라고 승낙했지만 ‘그림’이 돼야 한다는 엄포는 잊지 않았다.
당장 3월 첫 주, 경남 통영으로 내려갔다. 통영에서 뱃길로 꼬박 한 시간. 드디어 욕지도에 도착했다.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마음이 이글거렸다. 욕지도 항구 맞은편에 있는 관광 안내소로 곧장 향했다. 관광 안내소는 욕지도 할아버지의 사랑방인지, 욕지도에서 나고 자랐다는 토박이 할아버지 다섯 분이 앉아계셨다.
“고양이 찍으러 와따꼬. 하모. 고양이 억수로 많다. 말도 몬한다. 우리집에 젤로 많다.”
할아버지들은 자기네 동네에 고양이가 가장 많이 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다, 생선을 말리면 고양이가 다 채간다 등등 고양이가 많은 근거를 대면서 우리 동네에 많네, 너네 동네에 적네 대거리를 했다. 결국에는 목소리가 가장 큰 조선마을 이장 김덕만(81) 할아버지가 이겼다.
할아버지들을 따라 쫄래쫄래 조선마을로 갔다. 할아버지는 동네 어르신을 모아 고양이를 찾아내라고 특명을 내렸다. 할머니 두 분, 할아버지 네 분, 그물을 손질하던 외국인 노동자 한 명까지 가세해 ‘야옹야옹’ 외쳤다. 온 마을을 뒤졌지만 고양이의 'ㄱ'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봐라. 여기 없다카이. 목과마을에서 엄청시리 봤다. 낚시하면 죄다 고양이가 채간다.”
김덕만 할아버지가 잠잠해진 사이 최오호(75) 할아버지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고양이 승부도 목소리 큰 사람이 승자다. 또 쫄래쫄래 목과마을로 갔다.
욕지도 목과마을 방파제에서 드디어 고양이를 목격했다.

욕지도 목과마을 방파제에서 드디어 고양이를 목격했다.

목과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번쩍였다. 고양이다. 어? 저기도 고양이다. 할아버지 말대로 목과마을은 정녕 고양이 마을이었다. 방파제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 옆에 꼭 달라붙어있는 고양이도 있고, 방파제 돌담을 산양처럼 뛰어다니는 고양이도 있었다. 한눈에도 고양이 열대여섯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정녕 고양이 섬, 고양이 마을에 다다랐다!
 
섬고양이에 농락당하다 
사진기자 선배와 고양이 사진 찍기 작업에 돌입했다. 문제가 있었다. 카메라만 들이밀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도 부리나케 도망갔다. 고양이는 개인주의적 동물이었다. ‘고양이 섬’ 욕지도에 오면 고양이가 우루루 몰려 있는 ‘떼샷’을 쉽게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목과마을 고양이는 좀처럼 단체행동이 없었다. 암묵적인 영역이 있는 건지 방파제 고양이는 방파제에, 길가 고양이는 길가에, 숲에 살고 있는 고양이는 숲에 머물렀다. 고양이는 애타는 봄처녀 마음을 몰라줬다. 고양이를 유혹할 만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튿날 다시 목과마을을 찾았다. 이번에는 횟집에서 얻어온 고등어 대가리 20여 개가 담긴 봉투를 들고 갔다. 욕지도 고양이가 고등어에 환장한다는 낚시꾼의 말을 들은 터였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자 재깍 반응이 왔다. 검은 고양이가 내 주변으로 스멀스멀 몰려들었다. 얼른 먹을 것을 내놓으라며 냐옹냐옹거렸다. 고양이 보란 듯이 낚싯줄에 고등어 대가리를 묶었다. 그리고 낚싯줄을 봉에 휘감았다. 고양이를 낚기 위한 고양이 낚싯대다. 낚싯대로 고양이를 유혹해, 고양이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점프도 하고, 우다다다 달리기도 하는 멋진 ‘그림’을 만들 참이었다.
낚싯줄에 달린 고등어 대가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고양이.

낚싯줄에 달린 고등어 대가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고양이.

호기롭게 고등어 낚싯대를 휘둘렀다. 웬걸. 섬고양이는 섬 아낙처럼 억척스럽고 재빨랐다. 푹 퍼져있는 집고양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낚싯대를 휘두르기 무섭게 앞발을 휙휙 휘둘러 고등어 대가리를 쓱쓱 낚아채갔다. 사진 선배가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고양이는 어수룩한 육지 여자에게서 고등어를 빼앗아갔다. 고등어 대가리 한 덩어리를 얻은 고양이는 의기양양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다. 고등어 강도가 따로 없었다. 욕지도 고양이 중에는 ‘돼냥이(살찐 고양이)’가 없었다. 탄탄한 근육이 발달된 욕지도 고양이는 고단백 식사를 즐겨서인지 털에도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섬고양이를 무력화 시키려면 세련된 도시 냄새를 팍팍 풍겨줘야 했다. 당장 읍내로 달려 가서어묵 소시지 2만원 어치를 사왔다. 소시지 껍질을 까기 전까지 “그게 뭐냥”하는 식으로 처다보던 고양이들이 소지시 냄새가 갯바람을 타고 흐르자 다시 야옹거렸다.
소시지를 잘게 쪼개 바닥에 뿌렸다. 한 마리 두 마리 모여들었다. 온 동네 고양이가 모이길 바랐는데, 고양이 서열이 있는 것인지 고양이들은 서너 마리씩 먹고 교대했다. 까만 고양이, 흰 고양이, 노랑 고양이, 줄무늬 고양이가 어묵 소시지를 찹찹 잘도 먹었다. 고양이들이 소지지를 하도 열중해서 먹는 탓에, 바닥에 고개를 수그리고 먹는 사진만 겨우 건질 수 있었다.
바닥에 흩뿌린 소시지를 열심히 먹고 있는 고양이들.

바닥에 흩뿌린 소시지를 열심히 먹고 있는 고양이들.

우리 취재팀이 고양이에 농락당하며 좌충우돌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목과마을 펜션 주인이 넌지시 일렀다.
“손님들이 물고기나 육고기 구워먹는다꼬 불 피우면 고양이 40~50마리는 그냥 모인다.”
아, 그렇구나. 불을 피워야 하는구나. 다시 읍내에 나갔다. 고기 굽는 불판을 구하고, 번개탄이랑 석쇠도 준비해 왔다. 잘 숙성된 고등어 대가리도 충전했다. 목과마을에 돌아와 방파제에 판을 벌렸다. 간절한 마음으로 고양이에게 바칠 고등어를 구웠다. 부모님께도 구워드린 적이 없는데, 고양이들에게 줄 고등어를 손수 구웠다. 욕지도 온 섬에 고등어 냄새가 퍼지길 기도하면서.
고등어는 맛깔나게 익었다. 입에 침이 고일만큼 냄새도 좋았다. 하지만 고양이는 곁으로 오지 않았다. 실컷 생 고등어 대가리와 어묵 소시지를 먹어치운 고양이들은 집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 같은 목과마을 고양이.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 같은 목과마을 고양이.

머나먼 욕지도에 찾아와 고양이 사진 찍기에 투자한 시간만 10시간. 해가 저물어갔다. 건진 사진은 없다. 내일은 육지로 귀환해야 했다.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얼룩덜룩한 고양이 한 마리가 쓱 찾아왔다. 우리 취재팀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건지, 옷에 밴 고등어 냄새를 따라 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 고양이는 도망가지도, 할퀴지도 않았다. 우리 카메라 앞에 다소곳이 앉아 몸을 핥고, 그르릉(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 거리고, 하품을 했다.
“얼룩이가 마을 꼭대기에서 당신들 쭉 지켜봤어.”
밭일 나가던 목과마을 할머니의 전언에 따르자면, 얼룩이는 목과마을 터줏대감과 같은 고양이인데 벼랑에서 목과마을과 바다를 굽어보는 걸 즐긴다고. 그 얼룩이가 고군분투하는 우리를 찾아와준 거다. 갸륵한 정성이 통한 걸까.
어쨌든 욕지도 고양이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나니 그제야 섬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다도해의 짙푸름이나 한적하고 소담한 섬마을 풍경이 아름다웠다. 볕도 따사로웠다. 봄이로구나. 봄. 고향의 봄, 아니 고양이 봄 소식은 3월 17일자 중앙일보 week& 지면에 담긴다.
 
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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