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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탄핵 이후 태풍의 눈, 김종인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김종인이 때문에 정치하기로 결심했다.”
 

보수·중도의 마지막 카드, 문재인에도 보약
대선구도 ‘패권 대 협치’로 뒤바뀔지 주목

1992년 정주영은 대선 출사표를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정주영은 노태우 정부 시절 현대를 조여오는 세무조사를 막기 위해 당시 경제수석 김종인을 찾아갔다가 30분이나 기다리는 수모를 당했다. “회의 중인데 약속도 안 잡고 불쑥 오면 어떡하나”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정주영은 김종인을 최고급 요정으로 초대해 술판을 유도한 뒤 “세무조사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김종인은 “수석이 국세청장에게 이래라저래라 못한다”며 자리를 박찼다. 정주영은 세 번째로 김종인을 만나 “나랑 잘 지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김종인은 “그런 말씀에 공무원들이 다치는 거다. 더 이상 안 만나는 게 좋겠다”며 일어섰다. 격분한 정주영은 “대통령은 모르겠는데 경제참모가 엉망”이라 말하고 다니더니 마침내 대선에 출마, 6공과 정면 충돌했다.
 
김종인은 단단하다. ‘산신령’ 별명처럼 시야가 깊어 정치적 감각이 남다르다. 수석·5선 의원·여당 책사·제1야당 대표를 섭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정권교체와 국정안정을 동시에 바라는 유권자의 딜레마를 해소해 줄 내공을 가진 정치인은 김종인 외에 찾기 어렵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돼 60일 대선 정국이 개시된다면 이틀 전 비례대표까지 내던지고 민주당을 뛰쳐나온 김종인이 태풍의 눈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정권교체’ 한마디만 입에 달고 산 문재인의 독무대였다.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업고 박근혜의 대척점을 장악, 개미탑 식으로 지지율을 쌓아 올렸다. 대선판을 선악으로 갈라버린 이분법에 안철수나 유승민은 맥을 추지 못했다. 답답해진 중도·보수는 민주당 내부로 들어가 안희정을 띄우며 문재인 대체재 만들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문재인이 장악한 민주당에서 안희정이 ‘문벽’을 뚫고 대선주자 자리를 꿰차긴 쉽지 않다. 이대로 대선이 치러지면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종인의 탈당은 이런 뻔한 구도를 뒤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민주당 비문과 국민의당·바른정당, 그리고 자유한국당 비박과 교감해 온 김종인이 탈당을 통해 ‘반문·반박 후보 단일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김종인·안철수·손학규·유승민 등이 각각 경제와 교육, 국방을 책임지는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3년간 집권한 뒤 개헌으로 7공화국에 권력을 넘기고 물러나는 시나리오다. 대선 구도를 ‘정권교체’에서 패권·수구(문재인·친박) vs 협치·개헌세력(반문·반박 연대) 구도로 대체해 표류하는 중도·보수표를 흡수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우선 자신이 중도·보수의 총아가 돼 문재인과 2파전을 벌이겠다고 별려온 안철수를 빅텐트에 끌어들여야 한다. “박근혜 잔당과 손잡는 세력은 적”이란 호남 일각의 반연정 정서도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김종인발 ‘빅텐트’는 반기문에 이어 안희정마저 낙마 공산이 커진 대선판을 뒤흔들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지지층만큼이나 비토층이 두꺼운 문재인의 독주로 대선이 치러지면 보수·중도 상당수가 투표를 포기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그 결과 문재인이 당선되면 보수층과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사사건건 딴지를 걸 것이다. 문재인 집권에 올인한 진보는 진보대로 문재인에게 ‘공동정부’를 요구하며 정권을 흔들고, 보수와 혈투를 벌일 것이다. 이런 극단적 대결정치를 막기 위해 대타협의 빅텐트를 치자는 김종인의 등판은 문재인에게 오히려 보약이 될 수 있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정권교체는 절반은 실현됐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대선 구도를 재정의해야 한다. ‘보수 대 진보’라는 그 낡고 지겨운 전쟁 대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국가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는 후보가 누군지 놓고 벌이는 페어플레이로 말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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