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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인식 첫 조사해보니…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대상은?

병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박모(34ㆍ여)씨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야근이나 회식을 하고 새벽 한두시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주말에 쉴 때도 힘들어서 누워만 있고 가사ㆍ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8살 딸, 5살 아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는 건 온전히 박 씨의 몫이다. 그는 "공부를 더 해서 공무원이 되거나 풀타임 근무 직장을 잡고 싶은데 현실적 제약 때문에 파트타임으로만 일한다. 남편이 조금만 도와주면 나도 사회생활을 잘할 거 같은데 주변 환경이 그렇지 못하고 여성 희생만 강요하는 거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자부터", 남성은 "대중매체부터" 뚜렷한 온도차
남성 가사ㆍ육아 참여 희망 높지만 여성은 반대 경우 많아
데이트ㆍ혼인 비용은 ‘남녀 균등’ 많아, 변화된 인식 보여
응답자 5명 중 1명만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낙제 수준

  양성평등에 대한 생각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적용될까. 박 씨처럼 여성은 양성평등을 실현하려면 '남성'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변화의 대상으로 지목된 남성은 '대중매체'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경우가 많아서 온도 차를 보였다. 여성가족부는 9일 이러한 내용의 '제1차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9~10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739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2015년 시행된 양성평등 기본법 제10조에 따라 처음 이뤄졌으며 앞으로 5년 간격으로 시행된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문제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남성의 가사ㆍ육아 참여 저조'가 23.4%로 가장 많았고 '성별 임금 격차' 문제가 22.7%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응답자를 성별로 나눠보면 시각차가 뚜렷하게 존재했다. 여성은 남성의 가사ㆍ육아 참여가 저조(27.4%)한 걸 제일 많이 지적했고 여성에 대한 폭력(15.4%)도 세 번째로 많이 꼽았다. 하지만 남성은 TVㆍ인터넷 등 대중매체에서의 성차별적 표현(21.3%)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다만 남성은 가사와 아이를 돌보는 데 쓰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 류기옥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장은 "현실에선 참여가 저조하지만 이를 개선하고 싶다는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성년 자녀를 둔 남성의 51.9%는 근로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밝혔다. 반면 여성은 그 절반 수준인 25%에 그쳤다. 돌봄ㆍ가사에 쓰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응답도 남성이 각 32%, 19.4%로 여성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여성은 돌봄ㆍ가사 시간을 앞으로 줄이고 싶다는 비율이 32%, 21.6%로 더 높게 나왔다. 남성은 가정일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여성은 지금 하고 있는 가정일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한 셈이다.
가사, 돌봄, 근로 시간에 대한 남녀 인식. [자료 여성가족부]

가사, 돌봄, 근로 시간에 대한 남녀 인식. [자료 여성가족부]

 
  한편 성역할의 고정관념과 관련해선 남성의 돌봄 활동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동의하는 비율이 남녀 모두 높았다. 고정관념은 특히 남성보다 여성, 60대 이상보다 20대 이하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남자가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에 여성은 33.2%, 남성은 47.3%가 동의했다. '가정의 중요한 결정은 남편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도 20대 이하는 16.5%만 동의했지만 60대 이상에선 60.7%가 공감했다. 다만 데이트와 혼인 비용(주택ㆍ혼수ㆍ예단) 부담은 '남녀 균등'이란 응답이 주를 이뤄 달라진 인식을 보여줬다. 특히 예단(85.5%)과 데이트 비용(73.9%)을 남녀가 같이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데이트, 혼인 비용에 대한 세대별 인식. [자료 여성가족부]

데이트, 혼인 비용에 대한 세대별 인식. [자료 여성가족부]

  한국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 상황에 대해선 '낙제점'이 내려졌다. 응답자 5명 중 4명(82.1%)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부부폭력ㆍ데이트폭력ㆍ성매매ㆍ직장 내 성희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대중매체의 성차별적 표현에 대해서도 심각하다는 비율이 60%를 넘었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여성 비하 표현이 심각하다는 응답자는 86.1%로 매우 많았다. '여혐'(여성혐오)이 만연한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단면을 드러내주는 셈이다. 직장 내 성차별도 채용 시 남성 선호(38.6%), 성별 임금 격차(33.1%), 여성 승진 차별(29.6%) 등이 여전하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이처럼 먹구름 낀 현실 속에 응답자 5명 중 1명(21%)만 현재 우리 사회가 양성평등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5년 뒤에 양성평등해질 것이란 응답은 38.5%로 대폭 늘어나는 ‘희망’도 비쳤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남성의 가사ㆍ육아 참여,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등을 통한 양성평등 실현은 저출산 해소를 위한 선결과제다. 앞으로 정부 정책의 양성평등성을 지속적으로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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