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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공갈 또는 뇌물,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이상언사회2부장

이상언사회2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별검사팀 공소장에는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은 피고인 이재용에게 요구하여 뇌물을 수수하기로 공모했다’는 표현이 여섯 차례 등장한다.
 

특검, “2014년 9월에 삼성과 대통령 문제 시작” 판단
정권 초기 CJ 수사에 이 사건 복선 깔려 있었을 수도

이에 따르면 두 사람의 공모 행위는 네 차례 있었다. 최초는 2014년 9월 초순의 일이었다. ‘이 부회장에게 삼성그룹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해 달라고 요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적혀 있다. 공소장에는 그달 15일에 대구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주고 승마 유망주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 부회장이 수락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 뒤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두 차례 독대(2015년 7월 25일, 2016년 2월 15일) 직전에 정유라씨 지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출연 요청 등을 대통령과 최씨가 공모했다는 내용이 공소장에 나온다.
 
훗날 누군가가 박영수 특검팀 수사 기록을 토대로 역사책을 쓴다면 그 시작은 2014년 9월 대통령과 최씨가 삼성 돈에 욕심을 내는 장면일 가능성이 있다. 삼성과 대통령이 얽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실한 책이 되려면 출발점을 16개월 정도 앞당길 필요가 있다.
 
2013년 5월 초 박 대통령의 방미 때 경제사절단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제외됐다. 그리고 그달 2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CJ를 압수수색했다. 41일 뒤인 7월 1일 이재현 회장은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그 다음달에는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CJ 측에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을 퇴진시키라고 요구했다. 9월에는 국세청 조사4국이 CJ 특별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버티던 이 부회장은 외국으로 떠났다. 당시 재계에서는 이재현 회장의 이명박 정부 실세들과의 친분, CJ가 투자한 영화나 계열 방송사 오락프로그램의 삐딱함 때문에 ‘대통령에게 찍혔다’는 얘기가 돌았다. 특검팀의 ‘블랙리스트’ 수사에서 “대통령이 ‘CJ그룹의 영화 및 방송 사업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말을 했다”는 관련자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CJ가 정권의 표적이 된 이유가 진정 이전 정권과의 문제나 영화·방송 때문이었을까. 검찰과 특검팀의 수사에서 이런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 3일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기자단과의 오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을 조사하게 됐다면 왜 그토록 CJ를 미워했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3년 봄 검찰 특수부의 이재현 회장 수사는 갑작스럽게 시작됐다. 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특수2부가 CJ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대검 중수부가 해체될 때 보관해 놓은 수사자료가 있다고 했다.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는 내켜 하지 않았다. 4대 강 수사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에 특수2부 검사까지 투입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 달이면 끝낼 수 있다’며 고집을 부리는 통에 결국 총장이 승인했다”고 말했다. 정권 차원에서의 하명 수사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특수2부가 누군가를 통해 정권의 의중을 읽었거나, 아니면 특수부 검사의 수사 욕심이 발동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CJ 수사팀은 특이한 책 한 권을 갖고 있었다. 『묻어둔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맹희 전 CJ 명예회장(2015년 작고) 회고록이었다. 1993년에 출간된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 비판에 할애돼 있다.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에서는 “박 대통령이 예전에 이 책을 읽고 격노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수사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손자다. 사촌 형 이재현 회장과 사촌 누나 이미경 부회장이 겪은 일을 지켜봤다. 만약 내가 그였다면 청와대나 최순실씨가 금전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 같다. 뇌물인지 공갈(강요)에 의한 편취인지는 이제 법정에서 판가름 날 일이 됐지만 ‘공포 정치’가 있었던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상언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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