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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롯데의 비명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국 중심의 평화, 팍스 시니카(Pax Sinica)에 대해 미국 최고의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스티븐 모셔는 지극히 냉소적이다. 그는 “중국인들은 지난 2000여 년 동안 자신들이 조직했던 바로 그 질서대로 세계를, 특히 동아시아를 재편하고 싶어한다. 중국이 중심에 있고 굽실거리는 위성국들이 그 주변을 둘러싼 형태다.(『헤게몬』)”라고 적고 있다.
 

중국 보복보다 무서운 건
한국 정부·시위대의 냉대

이런 큰 그림에서 보면 롯데가 지금 중국에서 겪고 있는 봉변은 다 팍스 시니카 때문이다. 빌미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용 부지 제공이지만 속내는 팍스 시니카를 위한 ‘길들이기’란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러니 중국의 롯데 때리기에는 민·관이 따로 없는 것이다. 관은 중국 내 롯데마트 55곳을 나흘새 영업정지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불문곡직 “롯데는 중국을 떠나라”고 외친다. 롯데 물건을 매장에서 빼내고 던지고 부수는 건 예사다. 이렇게 손발이 잘 맞을 수 없다.
 
사실 남 길들이기는 중국의 오랜 취미다. 팍스 시니카를 중국말로 옮기면 중화(中華)주의다. 중화주의는 주변국을 오랑캐로 본다. 오랑캐는 길들이기의 대상이다. 일찍이 맹자부터 말했다. “나는 중국이 오랑캐를 변화시킨다는 말은 들었으나 오랑캐가 중국을 바꿨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吾聞用夏變夷者, 未聞變於夷者也)” (중국 길들일 건가, 길들여질 건가. 이정재의 시시각각, 2010년). G2 반열에 오른 경제력이 잠자던 중국의 중화 DNA를 깨운 지는 꽤 됐다. 10여 년 동안 프랑스·일본·필리핀·대만·베트남…. 안 당한 나라가 없다. 마침내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었을 뿐이다. 전혀 대비하지 않은 우리 정부의 순진함이 놀라울 뿐이다.
 
제대로 대응하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 10여 년 내공이 쌓인 중국의 보복은 한층 교묘해졌다. 특징은 세 가지다. ①하나만 골라 팬다. 다른 이들에게 ‘말만 잘 들으면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롯데만 두들기는 이유다. 중국의 예비역 육군 소장이 사드 부지를 ‘골라 타격(surgical strike)’하자고 외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만 골라 때릴 테니, 주변국은 안심하라는 메시지다. ②빌미를 주지 않는다. 롯데 세무조사는 중국의 조세주권 행사요, 위생·소방 규제 역시 국내법에 따른 것이다. 한류를 금하는 금한령(禁韓令)은 서비스업은 개방 안 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걸리지 않는다. ③민·관이 찰떡 궁합이다. 정부는 어르고 빠진다. 현대차 파괴범을 찾아 구금하고 ‘한국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라’고 말하는 식이다. 대신 민간이 알아서 거국적 불매운동을 펼친다.
 
우리의 대응도 정교해야 한다. ②③은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정공법으로 맞서야 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의 보복은 유치한 비관세 장벽이다. 중국에 당한 나라들을 움직여 이를 금지하는 새 규범을 만들도록 국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진짜 문제는 ①이다. 우리도 민·관이 협력,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기대난망이다. 되레 민·관이 앞장 서 롯데의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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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롯데가 적극 나서야 하는데, 총수부터 발이 묶였다. 특검이 끝났음에도 검찰이 출국 금지를 풀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로선 그나마 신동빈 회장이 직접 중국을 찾아 호소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본다. 센카쿠 사태 때 일본은 외무장관과 게이단렌 회장들이 직접 중국을 찾았다. 신 회장은 계란 세례마저 각오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출국 금지를 해제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마저 “확전 자제”라며 몸 사리기 바쁘다.
 
민은 또 어떤가. 중국민의 불매 운동에 맞서 ‘롯데 사주기 운동’까지는 기대도 안 한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에 몰려가 “사드 부지 제공한 롯데는 각성하라”고 외치는 시위대는 뭔가. 팍스 시니카에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조공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 롯데 이사회는 “기업 이익이 국가 이익에 우선할 수는 없다”며 사드 부지 제공을 결정했다고 한다. 애국 기업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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