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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살짝 바꾸니 … 화장품 업계가 모두 웃는군요

한국개발연구원 리포트
 
한국콜마는 연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술력을 확보했다. [사진 한국콜마]

한국콜마는 연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술력을 확보했다. [사진 한국콜마]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규제를 잘 정비하면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기업의 자유로운 영리활동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규제개혁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서로 상충될 수 있는 이 두 가지 역할이 잘 조율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2년 ‘화장품법’ 개정은 합리적인 규제개혁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 자율성 강화
2012년 ‘화장품법’ 개정 성공사례
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
공장 없이도 자기 브랜드로 영업
세계 1위 제조사 코스맥스 등
OEM·ODM 업체도 덩달아 성장

 
화장품법 개정의 주된 내용은 네거티브·사후규제 전환을 통해 업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규정하여 기업의 책무성을 높인 것인데, 이러한 법 개정의 내용과 그에 따라 발생한 경제적 성과는 합리적인 규제개혁의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법 개정에서 첫 번째로 주목할 점은 원료 관리와 관련한 규제 체계의 전환이다. 기존에는 화장품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의 목록이 지정돼 있었으나, 개정을 통해 국민보건에 위해가 우려되는 원료들만 배합금지 원료로 지정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즉, 가능한 활동만을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에서 모든 활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특정 사항에 대해서만 금지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원료와 관련한 정부 관리가 최소화되고 기업의 자율적인 연구개발 활동이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업계의 책무성도 강화됐다. 품질·안전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업체에는 실험자료 제시 등 소명의 책임이 부과된다. 소명을 하지 못할 경우 위반 업체는 정도에 따라 제조·판매금지 혹은 업무정지나 등록취소의 처분을 받게 된다. 이러한 규제체계의 전환으로 인해 화장품업계는 신원료의 개발과 더불어 안전성 확보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벌이게 됐다.
 
두 번째는 제조 판매업의 신설이다. 기존에는 화장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중심으로 제조업자만을 관리해 왔다. 개정 이후로는 직접 생산을 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사용하여 판매업을 영위할 수 있는 제조판매업을 구분하여 관리하게 됐다.
 
이는 업계의 주요 행위자가 제조판매업자로 전환되었음을 뜻하며, 이제 누구든 아이디어만 있으면 공장 없이도 자기 브랜드로 영업이 가능하게 됐다. 예컨대 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등의 브랜드 판매점들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책임소재가 명확하게 정리돼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조판매업자가 전반적인 책임을 지게 됐다. 이에 따라 제조판매업자에게는 화장품의 품질관리 및 판매 후 안전관리와 실적보고 등의 의무가 부과되었고 이를 관리하는 제조판매관리자를 고용하도록 했다.
 
세 번째는 표시광고 실증제의 도입이다. 업체의 표시광고 중 사실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실증할 수 있는 자료를 구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얼핏 일방적인 규제의 강화로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입증 책임을 업체에게 부과하는 대신에 사전금지의 범위를 축소한 것이다.
 
즉,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전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에는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시나 광고는 사전에 금지되었으나 이제는 실증자료가 있을 경우 사전허가 없이 자유롭게 표시, 광고가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기존의 규제 하에서는 ‘여드름’이라는 표시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개정 후에는 실증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표시가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규제개혁에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2012년 법 개정에서는 합리적인 규제개혁이 가져가야 할 ‘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되 책임소재는 더욱 확실하게’라는 원칙이 잘 반영됐다.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함과 동시에 책무성을 강화함으로써 산업의 발전과 소비자의 안전 등 대립할 수 있는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한 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규제체계 변화는 기업의 신제품 제조 및 연구개발 활동, 그리고 유통 및 마케팅 활동을 더욱 자유롭고 활발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제조기술의 발달로 화장품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고 의약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중간단계의 물질을 이용하여 화장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원료관리의 네거티브 규제 전환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해줄 수 있다. 여기에 표시광고 실증제가 도입됨으로써 효과성에 대한 광고가 가능해지면 그에 대한 연구개발 유인이 증가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제조판매업의 도입은 경제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업화의 원칙이 반영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화장품산업의 경쟁력이 제품의 품질 수준과 더불어 브랜드 파워에서 나온다고 할 때, 제품의 품질은 우수한 제조업자에게 맡기고 제조판매업은 브랜드 및 마케팅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각자 강점을 가진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제조판매업자, 즉 브랜드 판매점들은 글로벌 브랜드사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신속한 신제품 출시와 독특한 마케팅 기법으로 국내외에서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한국콜마와 한국코스맥스 같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들도 함께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코스맥스의 경우 2015년 매출기준으로 세계 1위 제조사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법 개정이 실제로 화장품 업계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생산실적 자료를 활용해 법 개정의 경제효과를 추정한 결과, 평균적으로 생산금액이 27% 증가하고 생산량이 19%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보건산업진흥원의 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법 개정 이후 평균적으로 약 32%의 고용증대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류 효과로 인한 수출증가분을 통제하고 법 개정의 순수효과만을 본 것으로, 네거티브 규제 및 사후규제 전환이 산업의 발전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동욱한국개발연구원(KDI)규제연구센터 분석평가실연구위원

최동욱한국개발연구원(KDI)규제연구센터 분석평가실연구위원

이상의 화장품법 개정 사례는 적절한 규제 정비가 얼마나 큰 경제적 편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 구조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규제개혁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품질,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무성을 강화하면서도 기업의 자율성은 보장해줄 수 있는 규제개선작업이 어느 때보다 시급히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최동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분석평가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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