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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② '양보따위 없는 무법천지?' 규칙과 매너가 넘치는 곳, 서킷

공공도로에서 위험천만하게 차선을 마구잡이로 바꾸며 달리는 차량을 향해 흔히 '칼치기'를 한다고 일컫는다. 사람들은 이런 칼치기 장면을 보며 "여기가 서킷이라도 되느냐", "카레이싱 하느냐"며 혀를 찬다. 
 
카레이싱은 이렇게 또 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카레이싱은 과연 그런 것일까. 서킷에선 그래도 되는걸까. 
 
'1차로 정속주행'이 운전자들 사이에 큰 논란으로 떠오른 일이 있다. 정확히는 '1차로에서 계속 주행하는 것'이 문제다.
 
'1차로=추월차로'라는 규칙은 단순했다. 하지만 '1차로에서는 과속을 해도 된다는 것이냐', '제한속도가 정해져 있는데, 그 속도에 맞춰 1차로를 달리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 JTBC 뉴스]

[사진 JTBC 뉴스]

 
최근 한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 '○배드림'에서는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재연됐다. 다만, 장소가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도로가 아닌 '서킷'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쟁점은 '자신보다 빠른 후미 차량에 양보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서로가 경쟁하는 서킷에서 양보가 웬 말이냐', '실력으로 추월하면 될 것을 왜 앞차를 나무라느냐'는 의견과 '경기도 아니고 다 같이 즐기러 왔으면 비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 '느린 차 1대 때문에 돈 내고 들어온 다른 차까지 다 방해를 받아야 하느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오늘 모터스포츠 다이어리의 키워드는 안전과 규칙, 
"Manners Make The Man"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카레이싱도 마찬가지다. [사진 영화 킹스맨]

"Manners Make The Man"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카레이싱도 마찬가지다. [사진 영화 킹스맨]

그리고 매너다.
 
운전면허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서킷에서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킷을 주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서킷이 발급하는 '서킷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서킷 라이선스의 교육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전'과 '규칙'이다. 여러 사람이 최소 1톤이 넘는 쇳덩이를 최고 200km/h 안팎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장소인 만큼, 안전과 규칙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규칙은 개인의 운전 실력보다 중요하고, 차량의 성능보다 중요하다.
 
서킷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바로 신호(깃발)를 준수하는 일이다. 이는 드라이버의 안전·재산과 직결된다. 때문에 각 서킷에서는 라이선스 취득 과정에서 '10색기(서킷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10개의 깃발)'의 숙지 여부를 꼭 확인한다. 
모터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깃발 신호. 총 10가지다.

모터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깃발 신호. 총 10가지다.

 
그리고, 이 '10색기' 가운데 위의 논란에 답이 될 수 있는 깃발이 존재한다. 바로, 청색기(Blue flag)다.
 
청색기는 '뒤에 자신보다 더 빠른 차량에 길을 비켜줘야 한다'는 의미다. F1과 같은 경기에선 뒤에 자신보다 1바퀴 이상 앞서고 있는 차량이 쫓아오는 경우 청색기가 발령된다. 이를 무시할 경우 페널티가 부여된다.
 
지난 2016년 시즌, F1 드라이버 중에서도 이러한 청색기의 중요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인물이 있다. 청색기에도 불구하고 앞선 차량이 비켜주지 않자 분노한 세바스티안 베텔이 그 주인공이다.
 
청색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추월엔 규칙이 있다. 막무가내로 추월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치열한 프로 카레이싱에서는 특히나 이를 명문화된 규정으로 다루고, 위반시엔 엄격하게 페널티가 부여된다.
 
F1은 추월과 추월의 방어에 있어서 "다른 드라이버에게 잠재적 위험을 가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막무가내로 상대방의 안전은 안중에 없이 추월하거나 후속 차량을 막아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대회인 슈퍼레이스 및 슈퍼챌린지의 규정에 따르면, 2대의 차량이 코너를 탈출할 때 코너 안쪽의 차량은 바깥쪽에 위치한 차량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코스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는 금지된다. 또, 코스 밖으로 벗어난 차량의 경우 정상 주행 중인 후속 차량을 보낸 이후에 코스로 복귀해야 한다. 복귀할 때에 다른 차량의 주행을 방해하는 경우 페널티가 부여될 수 있다.
 
하물며, 경기가 아닌 일반 '스포츠 주행'에서는 어떨까.
서킷에는 소위 '레코드라인' 또는 '레이싱라인'이라 부르는 가상의 '차선'이 있다. 이는 가장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고속도로와 비교하자면 '1차로'와도 같은 셈이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빠른 후미 차량에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1차로에서 제한속도보다 느린 속도로 계속 주행을 하는 사람과도 같다.
 
이상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서킷 라이선스 소지자는 10가지 깃발의 의미를 다 알고 있다.
서킷 운영자는 언제나 서킷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깃발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지속적인 느린 주행으로 후미 차량들에 영향을 미치는 차량에 청색기를 발령한다.
청색기를 본 차량은 후미 차량에 자리를 양보한다.
청색기를 무시한 경우 흑백반기 또는 흑기를 발령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인력난 등을 이유로 대회가 아닌 일반 '스포츠 주행'에선 서킷 상황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상황에 적절한 깃발을 발령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면, 양보와 매너는 드라이버를 만든다. [사진 영화 킹스맨 포스터]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면, 양보와 매너는 드라이버를 만든다. [사진 영화 킹스맨 포스터]

 
누구나 서킷에 들어서면 자신의 최고 기록을 뽑아내기 위해 '어택(최대한의 능력으로 주행하는 것을 일컫는 표현)'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택을 한 만큼 '쿨링(차량의 열을 식히기 위해 서행하는 것을 일컫는 표현)'도 한다. 서로 다른 실력의 운전자와 서로 다른 성능의 자동차가 서로 다른 템포로 달리는 것이다.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주행하는 동안 전방뿐 아니라 뒤와 좌우 상황을 항상 살펴볼 의무가 있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건강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어택을 하는 사이 후미 차량이 더 빠르게 접근을 한다면, 그리고 1랩 동안 열심히 떨어뜨리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비켜주는 것이 옳다.
'내가 빨라서 추월도 못하네'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서킷 운영자가 청색기를 발령했을 것이다. 후미 차량도 앞선 차량이 어택 중이라는 것을 인지했다면, 1랩 정도는 이해할 것이다.
'내가 빨라서 추월도 못한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후미 차량을 보내주고 다시 따라가보면 된다. 코너 2~3개만 지나보면 상황 판단이 될 것이다.
쿨링을 할 때 레코드라인을 피해서 주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여기에 매너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추월의 매너'는 무엇일까. 비켜주는 차량은 방향지시등이나 비상등 등을 통해 추월을 허용하겠다고 알리고, 추월하는 차량은 비상등 등을 통해 그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무슨 비상등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운전면허 시험을 다시 보길 권장한다. 운전면허를 소지한 사람이라면, 장내 기능시험 당시 '돌발' 상황에서 긴급히 비상등을 켰을 것이다. 당신이 '돌발'을 통과하지 못하고 감점(-15점) 당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보다 느리다는 사실에 속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보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도리어 후미 차량에 자리를 내어주고, '어떻게 달리길래 나보다 빠른 것일까' 뒤따라가며 배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모두가 안전하게 오래오래 모터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필수인 것이 양보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과 양보, 매너는 서킷에서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이유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양보는 숱하게 했지만, 아직 따라가지 못 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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