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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가 불량음식? 유럽에선 파인다이닝 식당의 고급 메뉴

순대를 찾아 국내뿐 아니라 세계 20개국을 다녀온 '순대실록' 육경희 대표. 신인섭 기자

순대를 찾아 국내뿐 아니라 세계 20개국을 다녀온 '순대실록' 육경희 대표. 신인섭 기자

바르셀로나·마드리드·런던·피렌체·프라하·울란바토르·치앙마이. 여행 전문가의 여행지 리스트가 아니다. 순대 전문점 '순대실록'을 운영하는 육경희(54·여) 희스토리푸드 대표가 '순대'를 찾아 다녀온 세계의 도시들이다. 2011년 초 대학로의 순대 전문점을 인수해 '순대실록(2013년 상호 변경)'을 열고 제대로 된 순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국내외 유명한 순대를 찾아다닌 게 시작이다.  
 

-3억원 들여 세계 20개국 답사 후 『순대실록』 펴낸 육경희 대표
-스페인에선 '모르시야', 영국에선 '블랙푸딩'...이름은 달라도 맛은 같아

"한국의 전통 순대를 찾아 직접 문헌을 찾아가며 공부를 하던 중 외국에도 순대와 같은 음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스페인에 한국의 순대와 흡사한 ‘모르시야(Morcilla·선지가 들어간 순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호기심으로 가슴이 뛰었다. “바쁜데 어디를 가냐”는 직원들의 만류도 소용 없었다. 그대로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순대를 찾아 세계 20개국 40여개 도시를 찾아 다녔다. 비행깃값에 식비, 체류 비용까지 합하면 3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지난 2월 27일 출간한 『순대실록』(BR미디어)은 이러한 경험을 모아 국내외 순대를 소개한 책이다. '맛있는 순대 기행을 떠나다'라는 부제처럼 순대의 어원, 문헌 속 순대 등 순대에 대한 각종 정보와 전국 27개 지역의 소문난 순대집 37곳 답사기, 직접 가서 먹어본 세계 8개국 순대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전통주 명인 조정형 선생은 축사에서 "이 책은 발로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세계 곳곳을 발로 뛰어다니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공부한 육 대표의 열정에 대한 칭찬의 의미다. 
 
육 대표는 "스페인에선 '모르시야', 영국에선 '블랙푸딩black pudding)' 또는 '블러드 소시지(blood sausage)'라고 불릴 뿐 돼지 내장에 피를 넣고 만드는 과정부터 길다란 모양까지 세계의 순대가 모두 똑같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다만 순대를 대하는 시각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선 순대가 길거리·시장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유럽에선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의 애피타이저나 브런치 메뉴로 사랑받는다. 육 대표는 "70년대 초 일본에 고기를 수출하고 남은 돼지 부속에 당면을 넣어 만든 게 지금의 당면 순대"라며 "시장에서 싼 값에 팔리면서 홀대받는 메뉴가 됐지만 순대는 오래 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먹어온 전통있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레스토랑 '보틴'의 주방을 찾아 현지 셰프에게 이탈리아 순대 모르시야를 배우고 있는 육경희 대표 [사진 희스토리푸드]

스페인 마드리드 레스토랑 '보틴'의 주방을 찾아 현지 셰프에게 이탈리아 순대 모르시야를 배우고 있는 육경희 대표 [사진 희스토리푸드]

지금은 세계 곳곳을 누빈 순대 전문가가 됐지만 사실 육 대표는 자신이 순대집 사장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교수인 남편을 내조하던 평범한 주부는 부업으로 2003년 아이스크림 사업을 시작하면서 외식업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사업이 뭔지도 몰랐으니 당연히 실패를 거듭했고, 마침내 2011년 정착한 곳이 바로 순대 전문점이다. 평소 꿈꿨던 테라스가 달린 예쁜 가게를 얻기는 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더미 때문에 인테리어는 엄두도 못냈다. 임대료라도 벌자는 생각에 밤새 청소하고 순대 전문점이었던 그대로 가게를 오픈했다. 
 
"순대를 만들줄 몰라 3개월 동안 인근 시장에서 순대를 사다 팔았어요. 그런데 그 '맛없는' 순대를 사람들이 돈주고 사 먹는 걸 보고 관심이 생겼죠. 비위가 약한 내가 사 먹을 만큼 냄새나지 않고 맛있는 건강한 순대를 만들면 누구나 좋아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생겼어요."
 
서울을 비롯해 전국 유명 순대집을 찾아다녔고, '어떤 순대를 만들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레 '언제부터 순대를 먹었을까'로 이어졌다. '기본에 충실하자'. 육 대표가 생각하는 요리·경영 철학이다. 궁중요리를 계승한 유명 요리연구가에게 연락해 순대의 기원을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답변 뿐. 중앙도서관을 찾아가 '돼지'와 '피'가 나오는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고, 조선 말기 편찬된 『시의전서』에서 '도야지(돼지) 슌대(순대)'와 '돼지의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씻고 숙주·미나리·무를 데쳐서 배추김치와 같이 다져 두부를 섞어 파·생강·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깨소금·기름·고춧가루·후춧가루 각색 양념을 섞어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고 부리 동여 삶아 쓴다"고 적은 기록을 찾아냈다. 
 
육 대표는 도야지 순대 조리법에 부추와 새우젓 등을 추가해 지금 순대실록에서 판매하는 '전통슌대'를 만들었다. 순대실록에서 순대를 '슌대'라고 부르는 것도 옛 문헌을 따른 것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시의전서』 그대로 도야지 순대를 복원하는데도 성공해 곧 판매할 계획이다. 육 대표는 "처음엔 선지와 재료를 반반 섞었는데 너무 질척거려 먹을 수 없었다"며 "반복하다보니 선지의 양은 10%가 적당하고 삶는 대신 80~90도에서 2시간 30분 이상 익혀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견과류 등 2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순대를 소시지처럼 팬에 구워내는 '순대스테이크' [사진 희스토리푸드]

견과류 등 2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순대를 소시지처럼 팬에 구워내는 '순대스테이크' [사진 희스토리푸드]

전통 순대에 관한 기본을 알고 난 후, 육 대표가 집중한 것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순대실록의 인기메뉴 '순대스테이크'가 대표적이다. 견과류 등 28가지 재료를 넣고 팬에 구워내는 순대다. 조리 실장 조차 "소시지도 아닌 순대를 왜 굽냐"고 반대했지만 육 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음식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뉴를 개발하는데 더 자유로웠죠."
 
제대로 된 순대를 알리고 싶어 만든 책 '순대실록' [사진 BR미디어]

제대로 된 순대를 알리고 싶어 만든 책 '순대실록' [사진 BR미디어]

순대를 만들고 공부할수록 불량식품·길거리 음식이라는 오명을 쓴 순대를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순대를 주제로 책을 내겠다" 결심한 이유다. 또 다시 전 세계 순대집을 찾아 나섰다. 강원도 속초 아바이 마을은 4번, 프랑스는 3번이나 다녀왔다. 이번 책에 다 소개하지 못한 일본·중국·미국 등 다른 나라의 순대는 2권에 담아낼 계획이다. 


"전통 순대 복원도 계속할 겁니다. 문헌에 있는 어류 순대나 개·양 순대는 물론 프랑스 등 외국에서 맛본 순대도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새 순대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육 대표는 순대를 '무엇을 채워도 가능한 마법의 자루'라고 정의했다. 내장에 채우는 속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음식 만이 아니에요. 제 인생도 순대 안에 함께 채워갈 겁니다."
 
글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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