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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16. 희망등불을 켜 들고 간다

<내가 참여한 국제 사진 페스티벌>
 
- 올렉 도우, 토마스 드보, 르네뜨 뉴엘,
김미루, 가오 브라더스, 커스티 미첼, 성남훈,
 
그리고 신현림
 
봄볕은 내 몸 위로 부드럽게 주황빛으로 너울거렸다. 햇빛으로 사랑받는 것 같아 따스했다. 그리고 인터뷰하러 온 기자의 질문도 기분 좋았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내게 물어왔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누가 묻지 않으면 생각지 못할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한두 개가 아닌데, 무엇부터 말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최근 가장 뿌듯했던 일은 제 시 2편이 작곡된 노래를 듣고 잠을 못 잤던 일과, 내가 쓴 책을 독자들이 찾고, 페이스북에서 귀한 댓글을 남겨주실 때요. 그리고 만 삼 년 전 울산사진페스티벌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대받았을 때 솔직히 통쾌했죠. 통섭의 개념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나쁜 고정관념 하나를 넘었다는 점,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어지는구나, 실감하며 아주 흐뭇했어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질문들이 뻔하기도 한데, 이렇게 느닷없는 질문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이렇게 나를 일깨우고 흔들어놓는 기자를 만나면 참 즐겁다. 다시 나를 돌아보니 어느덧 사진 시작한 지 23년이 흘렀다. 원하는 미술대학 낙방과 2차 합격과 자퇴, 유턴하여 국문과, 대학원에서 파인아트 전공 등 복잡하고 힘든 시절들이 굽이쳤다. 나를 뽑아준 편견 없는 큐레이터 김이삭 씨에 대해 감사한다. 전시를 마쳤어도 <사과밭 사진관> 사진집이 남아 채택이 된 것이다. 


그런 공정한 기획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요즘 같은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는 그저 마을 회관을 만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다. 자기와 관계된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놀다 가는 게 인생인가? 질문한다. 사진 쪽, 시 쪽 등 어디든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작품만 좋으면 되는 서구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터부도 많고 경계 담장이나, 인맥, 학맥 등에 휘둘린다. 


두 가지 작업을 함께 한다는 건 운명이다. 오랜 세월 힘들었으나, 처음 예감대로 통섭과 남다른 상상력이어야만 하는 미래가 펼쳐져, 내심 반갑기도 하다.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 작품이 좋으면 된다. 여전히 편견이 많고, 제멋대로인 세상에서 오직 우직하게 창작 밭을 가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나의 뜻을 대신할 프란시스 잠의 시 <사람의 위대한 일이란>처럼.
 
사람의 위대한 일이란
나무통에 우유를 부어 담고
뾰족하고 뻣뻣한 밀 이삭을 따는 일
오리나무 그늘 아래서 암소를 지키고
숲속에서 자작나무껍질을 벗기는 일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서 버들잎으로 바구니를 짜는 일
침침한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행복해하는 아이들 곁에서
낡아빠진 신발을 깁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덜거덕거리며 베를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담고
텃밭에 배추와 마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러고는 따스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시간이 갈수록 위 시가 맘에 든다. 많이 알려진 시이기도 하고, 도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상상으로나마 전원생활을 맛보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의 위대한 일이란 자신이 맡은 일을 그저 우직하게 해낼 뿐이란 내용이 가슴을 잔잔히 울린다. 말에 인터뷰 온 후배가 다음 말을 하였다. 그 꾸준함이 별거 아닌듯해도 굉장히 어렵단 사실을 30년 만에 알았다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꾸준한 열정이 곧 능력이요 천재성 같다니까요.”
 
“뭐 천재성이나 열정보다도 헝그리 정신 같아. 지독한 실패, 상처가 먼 미래로 이끄는 힘이라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말하면서 지독한 실패나 죽음에 가까운 상처에 지지 않고 살아있음이 신기했다. 또한, 앞으로 그보다 어떤 독한 실패도 못 만날 거란 생각이다. 그러나 저러나 당시 페스티벌에 함께 걸린 러시아의 젊은 작가 올렉 도우의 작품을 바라보면 내 체험과는 달리 그는 지독한 실패나 상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국가의 문화 수준이 작가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수업시간에 박영택 선생님의 러시아 기행 체험담이 기억난다. 러시아인들의 문화사랑은 대단해서, 체홉의 연극을 보기 위해 노동자와 그 가족들까지 무대 앞을 가득 메운다는 이야기가 몹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런 문화 사랑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아닐까. 물론 사회주의 국가라 당연히 우리나라와 다르긴 하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70~80%란 말이 기억 속에서 물결친다. 러시아인들의 문화 사랑을 떠올리며 올렉 도우의 작품을 마주하였다. 너도나도 디지털 작업이 많다 보니 뻔하고 더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올렉 도우의 초상에는 빨려드는 나를 느꼈다. 섬뜩한 존재감 표현은 디지털 사진술의 극치였다.

1983년생인 올렉 도우는 자신의 나라와 세계에서 주목받는 사진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처음 읽은 책에서 무서운 초상화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불가사의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는 낡은 걸 누구보다도 거부한다. “무섭게 생긴 수녀일 수도 있으며 소리치며 우는 사람들, 또는 불행한 아이들 등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모든 것이다. 


나는 상반되는 것들을- 삶과 죽음, 매력적인 것과 관심 없는 것, 아름다움과 추함을 통해 아름다운 강력한 이미지 창조가 최종 목적이다.” 이런 분명한 개념이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들이 많아서 간단히 핵심만 짚고 가야겠다. 

토마스 드보는 프랑스 작가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사진에는 반전이 있다. 초점을 인간의 이중성에 맞춘다. 알 수 없이 깊고 어둡고, 기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그녀의 매혹에 나도 사로잡히고 말았다. 

르네뜨 뉴엘은 동물 수의사였던 아버지를 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대농장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친구는 소 떼와 말, 공작새, 애완용 스컹크, 새끼 사슴 등이었다니, 완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이다. 그녀의 애니 휴먼시리즈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담기 힘든 코끼리, 뱀, 치타, 사자, 호랑이 등 맹수와의 교감 속에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이미지를 건져 올린다. 마치 낚시처럼. 문명사 속에서처럼 심리적으로 사람이 동물에 예속되는 장면을 펼치는 것이라 한다.

김미루의 작품을 미국 도심 속의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셀프 포트레이트로 표현한 작품을 나는 신문에서 인상 깊게 보았다. 페스티벌 출품작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인간중심주의에 저항하며 그녀는 “생명에 대한 감각의 회복”을 꿈꾼다. 돼지우리 속의 돼지들과 사는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저명한 김용옥 선생님의 딸이기도 하다. 

가오 브라더스를 보면서 현대는 파트너십으로 작업을 펼친 작가들이 꽤 있다. “허그 허그”를 통해 예술이 곧 인생임을 보여주는 형제 작가는 세계가 주목받았었으며 북경에서 활동한다.

커스티 미첼의 작품을 보고 나는 놀랐다. 나처럼 숲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 설치 촬영을 하여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도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읽어준 동화에서 작품이 시작된다. 현실도피와 아름다움 속으로 이끌면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성남훈 작가하면 루마니아 집시 사진들로 기억된다. 그의 전시를 류가헌 갤러리와 스페이스 22에서 본 적이 있다. 가을바람 속을 떠돌 듯 흩날리는 집시들 모습이 어둡고 시적 이미지가 기억난다. 


최근 시리아 난민들의 행렬을 카메라에 담는 등 행동하는 사진가로서 다큐의 힘을 보여주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사진들은 2007년 삼성중공업 유조선 충돌로 충남 태안군에 엄청난 기름유출 현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검은 눈물>로 국민의 고통을 함께할 정부는 있는가, 물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괴로움을 함께 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음이 참 부끄럽고 슬프다. 


요즘은 문 닫은 가게가 자주 눈에 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인 거 같다. 이 어둠 속에 타오르는 등불은 희망의 등불이다. 저마다 희망의 등불을 켜 들고 산다. 등불들마다 다른 사연이 있고, 다른 꿈을 갖겠지만,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감을 느낀다. 

신현림, 나는 KBS 출연자로 사과밭을 갔다가 사과꽃과 사과 알이 주렁주렁 달린 풍경을 처음으로 보고 황홀감을 맛보았다. 사과꽃 필 때와 빨간 사과들이 등불같이 열린 모습이 경이로워 깊이 빠져들었다. 지난 10여 년간 나는 사과꽃 피는 봄부터 계절마다 사과밭을 집 수시로 오가며 설치 퍼포먼스의 작업을 했다. 


사과밭이 지구의 상징이었다면, 그 지구를 돌며 찍은 것이 <사과여행>이다. 또한 <사과, 날다>전을 열었다. 만물은 한 몸이란 동양적 생태적 세계관은 사람과 자연을 나누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과 내면적으로 깊이 이어져 있다. 


첫 전시 때부터 이 같은 철학 개념과 기이한 인생의 맥 속에서 사진을 계속 찍어왔다. 그 사과밭에서 나는 시를 많이 쓰게 되었다, 그중 <사과밭에서 온 불빛>을 흐르는 시간 위에 놓아두겠다.
 
 
사과밭에서 온 불빛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어
월말, 연말, 종말이 온다는 한계도 생각 못 할 때
여기에 내가 있기에 저기는 갈 수 없고
불빛 하나둘을 가지면 다른 불빛을 포기해야 함을 알았네
애를 가졌고 혼자 키워야 했기에
포기한 일과 포기한 만남들이 늘어남을 받아들였어
말하면 가뭇없이 사라지니까 다 말할 수도 없어
이제 상복 입은 나날을 애도하고
시커먼 눈발이 쏟아지도록
아픈 시간 앞에 묵념할 수 있네
 
나는 천천히 흘러가겠네
괴로워야 할 시간은 충분하고
아파야 할 시간이 허다하고
사랑해야 할 시간이 아직도 많으니
  
 
* 그동안 함께 해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신현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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