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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의 변방에서] 격리하고 배제하는 우리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지난 토요일 젊은 연구자들과의 모임이 있어 가는 길에 아는 선배가 보낸 단체문자를 받았다.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이 너무 괴롭네요. 잘 참고 모이도록 합시다” 하는 내용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하다가 그것이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기성(노인)세대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았다.
 
모임에 나온 30대 초반의 연구자는 “저 오늘 시청 앞에 갔다가 어르신들께 붙잡혔어요”라고 해서 주목을 받았다. 가방에 노란색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어르신들이 모여들어 언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단어와 함께 여럿이 그를 밀치고 들어서 건장한 남성인 그도 두려웠단다. 나를 비롯한 여럿이 폭행이라도 당했으려나 하고 걱정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여러분이 왜 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라고 하자 마치 마법처럼 몇몇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왜 집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젊은 세대에게 무엇이 서운한지, 그러한 말들을 앞다투어 했다고 해서 모두가 놀랐다.
 
태극기와 촛불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모습은 마치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선배의 문자에서처럼 우리는 지하철에서조차 굳이 노약자석을 양 극단으로 분리해 둔다. 노(약자)인들은 그 공간을 웬만해서는 벗어나지 않고 청년들 역시 잘 침범하지 않는다. 노인들이 일반 좌석으로 다가오면 ‘왜 노약자석으로 가지 않지’ 하고 의아해하고 청년들이 노약자석으로 가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보살핌이나 존중이 아닌 격리와 배제다.
 
우리 사회는 ‘소통’에 굶주려 있다. 지하철뿐 아니라 그 어느 일상의 공간에서는 세대, 직급, 성별에 따른 무수한 선이 존재한다. 직급에 따라 밥 먹는 공간을 분리해 두기도, 성별에 따라 사용해야 할 언어를 한정해 두기도 한다. 그런데 어르신들께 붙잡혔다던 젊은 연구자는 그것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그들’을 들어볼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고, 잘 큰 청년이 없다고 간단히 서로를규정하면서도 정작 목소리를 내거나 경청할 기회는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보살핌이나 격리, 배제의 선을 넘어 일상의 공간에서부터 함께 어울리고 싸워야 한다. 태극기와 촛불 이후에도 계속 만나야 할 광장이 광기의 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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