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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6080세대, 그들의 이유 있는 반란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강남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얼마 전 태극기집회에 다녀온 친구가 던진 말이다. ‘강남 사람’은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특정 지역의 계층을 지칭하기보다는 먹고살 만한 온건 보수층을 뜻했다. 태극기집회는 ‘계엄령 선포’를 외치는 노령층이거나 지방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박사모’ 등 열렬 회원을 연상시켰던 게 사실이다.
 

온건 장년층의 태극기 물결 가세
진영논리 떠나 분열 막는 게 어른

3·1절의 태극기 물결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숭례문에서 세종로까지 1.5㎞의 아스팔트를 가득 메운 군중은 지켜보던 필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어마어마한 숫자에만 놀란 게 아니다. 6080세대(1960~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를 아우르는 40~60대 후반의 장년층이 대거 참여한 광경은 더 놀라웠다. 부부, 가족, 친구, 동창회, 향우회 무리들이 인증샷을 찍고 박수 치며 환호하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의 촛불집회 때도, 2008년 ‘광우병’ 집회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다. 정치성 집회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항거하는 의식이 다. 탄핵 지지 촛불집회도 박근혜 대통령이 상징하는 구시대적 통치 방식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의식이 깔려 있다. 주축은 20~30대의 젊은 층이다. 6080세대의 등장이라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태극기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광장에 직접 나올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지금껏 침묵했던 이유다. 그들은 ‘무능한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 국정 농단’에 분노한 촛불민심에는 공감을 했다. 불의를 단죄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자는 촛불 담론은 지지했다. 그래서 태극기집회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나의 삶과 정체성이 부정당했다.” 그들은 이념적 진보와 보수를 지향하지 않는다. 수구 보수나, 종북 좌파도 아니다. 중간지대의 회색인(灰色人)에 더 가깝다고 했다. 촛불에서 쏟아지는 말에 드디어는 배신감을 느꼈다. ‘적폐 청산’ ‘기득권 물갈이’ ‘대청소’라는 구호는 그들의 불편한 감성을 자극했다. 자신들의 성취와 존재를 ‘적폐’와 ‘기득권’으로 몰아붙여 ‘물갈이’하려는 도발로 이해했다. 위기의식이 발동하고, 본능적인 자기방어에 나섰다. 내 땀과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게 다 누구의 덕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걸 외치기 위해 태극기 광장에 섰다.
 
“고리타분한 꼰대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벌어질 정치 지형의 변화, 즉 좌파의 집권을 우려한다. 시장경제주의가 퇴조하고, 반기업 정서의 광풍이 불 것이다. 숱한 시련과 고생을 딛고 쌓아온 안정과 번영이 무너질까 두렵다. ‘이석기를 석방하라’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선동엔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했다. ‘빨갱이는 대한민국 땅에서 사라져라’ 식의 진부한 색깔론은 경계한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만큼 기여했다.” 그들은 민주화 세력과 함께 오늘의 한국을 세운 두 바퀴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목숨을 걸고 독재에 저항해 민주화를 쟁취해낸 운동권 세력에겐 부채의식도 갖고 있다. 이젠 산업화 세력도 목소리를 내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헌법은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국민의 참여와 선택, 단결이 힘을 부여합니다.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이를 강제할 수 있는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퇴임 연설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늘도 6080세대는 아스팔트 위에 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유 있는 반란을 이제 멈춰야 하는 까닭을 오바마의 연설은 설명한다.
 
최후의 심판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헌재 결정에 불복종하려는 혁명(촛불)과 내전(태극기)의 충돌 위기 속에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 갈등의 골을 메우는 데 지혜와 경륜을 보태는 게 사회의 어른이자 6080세대의 책무다. 예수님도 “분열된 땅 위엔 아무것도 지을 수 없다”고 하셨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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