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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고픈 ‘대치동 키즈’ 세렝게티 초원을 가다

1년간 6대륙 18개국 떠돈, KAIST 졸업생 박성호씨
 
 
KAIST를 졸업한 박성호씨가 지난 2일 서울 개포동 자택 옥상에서 18개국 세계 여행을 회상하며 두 팔을 펼쳤다. 당시 들고 다녔던 카메라·렌즈도 꺼내 목에 걸었다. 박씨는 불과 1090만원으로 2015년에 1년간 세계를 일주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KAIST를 졸업한 박성호씨가 지난 2일 서울 개포동 자택 옥상에서 18개국 세계 여행을 회상하며 두 팔을 펼쳤다. 당시 들고 다녔던 카메라·렌즈도 꺼내 목에 걸었다. 박씨는 불과 1090만원으로 2015년에 1년간 세계를 일주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잔뜩 짊어진 배낭은 왜 또 이렇게 무거워 / 자꾸 배는 고프고 다리는 후들후들거리지만 / 그래도 즐겁다.”

학원 쳇바퀴 싫어 울산 고교 진학
혼자 공부해 KAIST 들어가 과 1위
행복이 뭔지 몰라 휴학 후 세계여행

호주 농장서 석달 일해 여행비 모아
기린·코뿔소 사이서 텐트 치고 야영
택시강도 당하고 고산병 걸리기도

대학원 진학, 취업 안 해 ‘자발적 백수’
여행 후 달라진 건 없어, 한여름 밤의 꿈
진정한 삶 더 고민하고 찾아보기로

 
2인조 밴드 노리플라이의 ‘낡은 배낭을 메고’ 가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하지만 막상 떠나보면 집이 그리워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께 ‘땡전 한 푼 달라고 손 벌리지 않을 테니 두고 보세요!’라고 호기롭게 말해 버린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지난달 17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박성호(25)씨가 그랬다. 사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았다. 서울 개포동에서 태어나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키즈’의 길을 걸었다. 영어·수학은 물론이고 배구 리시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배구 학원을, 음악 실기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단소 학원까지 다녔다.
 
이렇게 살다가는 숨이 막혀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 말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고교로 진학하겠다고 떼를 써 관철했다. 단지 ‘홈페이지가 그럴듯해 보여서’ 선택한 학교가 울산 현대청운고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즐겼다. 고교 첫 학기 성적은 충격적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상위 5%였던 박씨는 180명 중 135등을 했다. 대치동과 달리 울산에서는 아무도 최근 10년간의 기출 문제를 구해주거나 출제 가능성이 큰 지문을 찍어주지 않았다.
 
부모님은 ‘당장 다시 전학 와라’고 했다. 대치동 학원가를 또 전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성적을 끌어올려야 했다. 난생처음으로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교재를 요약하듯 공책에 전부 베껴 쓰는 ‘나만의 공부 방법’을 찾았다. 고3 때 전교 15등까지 성적을 올렸다.
 
‘KAIST에 입학하면 고난 끝 행복 시작이겠구나’ 했지만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일 뿐이었다. 당시 KAIST는 선행학습을 마치고 온 과학고 출신 학생들과 박씨 같은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갈등이 심하던 시기였다. 나름대로 ‘공부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자신 있는 물리 과목에서조차 KAIST 1학년 1000여 명 중 600등가량의 성적표를 받았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물리는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반에서 중간도 못 한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어요.”
 
쫓기듯 공군에 입대했다가 전역해 2014년 모든 삶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매달렸다. 학점 4.3 만점에 1학기 4.15점, 2학기 4.18점을 받았다. 산업디자인과 3학년 학생 중 가장 높은 학점이었다. 학점 목표는 이뤘지만 뭐가 행복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여행을 택한 것은 이정표를 잃어버린 삶에서 달리 어찌할 방도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2015년 1월 6일 출발해 같은 해 12월 28일 귀국. 357일간 6개 대륙 총 18개국을 돌았다. 부모님께 비행기삯 80만원을 받으면서 ‘앞으로 여행하는 동안 절대로 손 벌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50만원이 수중에 있는 돈의 전부였다. 돈을 벌면서 여행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우연히 시급 22호주달러(약 1만9300원)를 주는 바나나 농장이 호주 털리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캠핑장(캐러밴 파크)에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거주했다. 주당 70호주달러(약 6만1000원)를 지불하고 구한 이 집에서는 흙바닥에서 거미·개미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단열이 안 돼 낮에는 찜질방 수준으로 뜨거워지고, 밤에는 영하 5도까지 내려가 13벌의 옷을 껴입고 잤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버펄로와 누가 뛰어다니는 풍경. [사진 박성호]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버펄로와 누가 뛰어다니는 풍경. [사진 박성호]

아침은 굶고, 점심·저녁은 오직 파스타만 먹었다. 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파스타면을 사 프라이팬에 익힌 뒤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었다. 이렇게 100일 만에 1000만원을 모아 필리핀·태국·인도 등을 거쳐 아프리카로 들어갔다. 꿈에도 그리던 세렝게티 초원에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타고 1000㎞를 질주했다. 표범이 가젤을 물어뜯다가 하이에나가 다가오자 도망치는 모습을 코앞에서 목격했다. 거대한 기린과 코뿔소 사이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잠들기도 했다. 뉴질랜드 테카포 호수에서 아름다운 별을 봐도 행복했고, 100일간 파스타만 먹다가 처음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을 때도 행복했다.
 
여행을 시작할 땐 좋은 기억만 가득히 채워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택시 강도를 당하고, 고산병에 걸리고, 불법 체류자 취급을 받는 힘든 여정이었다.
 
 
마을 뒷산에서 촬영한 호주 털리 마을의 전경. [사진 박성호]

마을 뒷산에서 촬영한 호주 털리 마을의 전경. [사진 박성호]

KAIST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한다. 박씨와 함께 졸업한 30여 명도 박씨를 제외한 전원이 취직이나 진학을 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건 불안감 때문이다.
 
“KAIST에선 휴학만 해도 이상한 눈으로 봐요. 1년이라도 빨리 진학해야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요. 99점을 받으면 놓친 1점을 아쉬워하고, 성적이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낙오자로 느껴요. 2년이나 뒤처진 내가 이상해 보이기도 하겠네요.”
 
하지만 박씨가 만난 세상은 넓었고, 박씨는 의지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다. “랜드크루저는 내가 모는 대로 움직였고, 버팔로는 마음만 먹으면 쓰다듬을 수도 있었어요. 돌고래·악어와 수영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고요.”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알게 됐다. 대학원에 가서 교수가 된다거나 대기업 연구원을 거쳐 임원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낙오하는 건 아니었다.
 
 
캐나다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직접 촬영한 야경 사진. [사진 박성호]

캐나다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직접 촬영한 야경 사진. [사진 박성호]

6개 대륙 18개국 여행을 마치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들렀다.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뭐가 달라졌는지.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다른 사람의 여행 수기를 읽어 보면 여행 후 가치관이 달라지고 시야가 넓어지는등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냥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지네요.” 하지만 후회는 없고 그 자체만으로 만족한다. 맥가이버 칼로 과일을 깎거나 물건을 조각하는 능력이나 농장에서 바나나가 망가지지 않게 짊어지고 나르는 능력은 약간의 덤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4학년 학업을 마치고, 드디어 졸업을 했다. 하기야 박씨가 30여 명의 동기 졸업생들과는 전혀 다른 ‘자발적 백수’의 삶을 선택한 것도 여행이 박씨를 바꿔 놨기 때문이다. 두렵긴 하지만 백수를 스스로 택한 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1년 동안 여행기를 쓰면서 여행 경험을 뒤돌아보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뭔지 고민하고 찾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 그렇게 돌아오기 싫어한 대치동 학원가에서 ‘책 쓰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건 좀 아이러니하긴 하다.
 
[S BOX] 여행비 1090만원 … 프로모션 항공권, 값싼 방 구해 돈 아껴
박성호씨의 세계여행 경비는 바나나 농장에서 번 1000만원과 한국에서 가져온 50만원, 부모님이 결제한 항공료 80만원이 전부였다. 그가 1130만원으로 1년 동안 18개국 여행을 마쳤을 때 그의 수중에는 40만원이 남아 있었다.
 
일단 항공비를 아꼈다. 구글플라이트·스카이스캐너 등 항공권 비교 웹사이트는 물론 항공사 웹사이트에만 나오는 프로모션도 꼼꼼히 살폈다. 필리핀~태국행 티켓을 3만5000원에 구매하고, 미국~한국 티켓을 40만원에 건지는 등 30개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데 350만원을 썼다. 박씨는 “일정을 세우고 비행기 표를 산 게 아니라 프로모션 항공권에 여행 일정을 맞췄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현지인들의 이동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탄자니아공항에서는 마을버스(30원)를, 인도 뭄바이에서는 툭툭이(100원)를 타는 식이다.
 
숙소는 관광지와 비관광지를 구분했다. 비관광지는 노숙도 불사한다는 생각으로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당일 오후 6시쯤 싼 값에 나오는 빈방을 찾아 묵었다. 숙박객이 몰리는 관광지에선 12인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면서 비용을 아꼈다.
 
화폐는 모든 돈을 미국달러로만 환전했다. 아프리카·남미 일부 국가는 현지 화폐보다 고액권 달러화 가치를 더 높이 쳐 준다.
 
워킹 홀리데이도 잘 활용하면 좋다는 게 박씨의 조언. 박씨는 “설거지·청소 등 영어를 잘 못 해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며 “다만 한국인들끼리 몰려다니며 유흥을 즐기는 무리에 동참하면 돈을 모으기는커녕 소비만 잔뜩 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경고했다.
 
글=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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