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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경영권 승계, 상법 개정에 발목 잡히나] 지주사 전환 노리는 삼성·롯데·현대중공업 긴장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국의 재벌은 얼마나 견고할까, 혹은 스스로 견고해지려 하고 있을까. 

후계자들 지배력 강화에 사활 … “편법 동원한 부당 승계” vs “경영권 방어 수단 필요”


재계를 대표하는 국내 10대 그룹의 경영권 승계 현황을 짚어보면 알 수 있다. 기업 경영 성과 평가업체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자산 규모 기준 국내 10대 그룹은 순서대로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 그리고 순위권 안에 새로 진입한 신세계(10위)다. 재벌 그룹이 아닌 포스코를 제외하면 9곳이 경영권 승계 이슈와 맞물려 있다.
 
삼성의 경우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지난해 말 터진 ‘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 악재로 새 국면을 맞았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 일가에 거액을 지원한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 조사를 받았다. 
 
자신의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삼성물산-제일모직 간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도움을 받기 위해 대가성 뇌물을 줬다는 의혹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청와대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압력 행사 등을 지원받았다며 2월 14일 구속 영장을 재차 청구했다. 법원은 17일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애초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이 부회장이 전자·금융부문을 가져가고 두 여동생(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이 각각 호텔·건설 부문과 패션·미디어 부문을 책임지는 구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고 이 부회장이 그 최대주주로 자리 잡으면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은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이 여론의 강한 압박 속에 통과돼,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진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말 열린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행법상 기업 인적분할 과정에서는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이 부활할 수 있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자사주에 분할회사의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유예기간 없이 시행되면 자사주를 활용한 의결권 확대는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으로서는 경영권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지분을 더 많이 추가로 매입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2월 현재 시가총액이 280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지분 확대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현대차, 순환출자 구조 해소가 승계 열쇠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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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정 부회장은 1남 3녀를 둔 정 회장의 유일한 아들이다.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는 그룹 경영 일선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정 부회장은 현대·기아차의 사업 전반을 이끌고 있다. 그는 2월 현재 현대차(2.3%), 기아차(1.7%), 현대글로비스(23.3%), 현대엔지니어링(11.7%) 등의 계열사 지분율을 확보했다. 아직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분율이 낮아 삼성과 달리 승계 작업이 표면적으로 진행되진 않고 있다. 
 
추가적인 지분 확대와 함께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가 경영권 승계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룹 측이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한 뒤 정 부회장이 추가 지분을 취득하는 식으로 지배력 강화를 모색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현대차로서도 상법 개정안 통과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 부회장이 많은 지분을 확보한 현대엔지니어링을 상장해 그가 다른 계열사 지분 취득 재원을 확보하도록 돕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SK는 최태원 회장의 자녀들 모두 나이가 적고 경영 수업을 받고 있지 않아, 경영권 승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장녀 윤정(28)씨는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다니다가 올 초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녀 민정(25)씨는 해군 장교로 복무 중이다. 복무 연장 신청을 하지 않는다면 오는 9월에 전역한다. 장남 인근(22)씨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수학 중이다. 
 
일각에선 이들 3세 중 장녀 윤정씨가 먼저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같은 핵심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컨설팅업체에서 일할 때 석유화학과 정보기술(IT) 등 SK의 주력 사업부문과 연관된 팀에 있었기 때문이다.
 
LG는 구본무 회장의 장남(장자 승계 전통을 위해 양자로 입적)이자 가문의 4세인 구광모(39) ㈜LG 상무가 지주회사에서 일하면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승계 움직임은 없다. 일단은 구 회장의 친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모양새다. LG는 지난해 말 그룹 인사를 단행하면서 구 부회장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구 상무는 승진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LG에 대한 지분율이 2013년 4.84%에서 지난해 말 6.24%로 올랐다. 같은 기간 구 회장의 지분율은 11%에서 11.28%로 변동했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젊은 구 상무에 앞서 구 부회장이 구 회장의 뒤를 이으면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그 뒤를 구 상무가 잇는 식으로 경영권이 우회·점진적으로 승계될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 신동주-신동빈 경영권 분쟁 현재진행형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 회장.

롯데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 롯데를 장악한 차남 신동빈 회장의 승리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도 만만찮아 귀추가 주목된다. 신 전 부회장은 최근 신 총괄회장과의 ‘임의 후견계약’ 체결 사실을 공표하는 한편, 부친에게 부과된 증여세 2126억원을 대납하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 회장은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롯데제과 주식 매입으로 응수했다.
 
2월 현재 신 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9.06%로 신 전 부회장(3.96%)보다 높지만,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지분 6.83%를 넘겨받으면 10.79%가 돼 역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롯데는 지주회사 전환도 검토 중이라 삼성처럼 상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GS는 허창수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38) GS건설 전무가 일단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꼽힌다. 다만 전통적인 ‘일가 경영’ 과정에서 다른 그룹들에 비해 매우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돼 있어 관심이 모인다. 3세 중에서는 막내인 허용수 GS EPS 대표의 ㈜GS 지분율이 최근 허 회장을 앞지르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허 전무를 비롯해 허준홍 GS칼텍스 전무, 허세홍 GS글로벌 대표 등 4세들도 경쟁적으로 ㈜GS 지분 매입에 나서고 있다. 향후 경영권 승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4) 한화큐셀 전무의 승계가 유력하다. 김 전무는 김 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소기의 성과까지 거둬 김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2011년부터 2015년 1분기까지 만성 적자에 시달렸던 한화큐셀은 이후 흑자 전환했고, 태양광 셀 생산량이 연간 5.2기가와트(GW, 지난해 기준)로 2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랐다. 한화는 지난해 11월 유상증자로 김 전무의 승계에 힘을 실어줬다. 
 
핵심 계열사인 한화종합화학이 한화큐셀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2500억원을 출자, 지분율 50.15%를 확보했다. 한화종합화학은 최대주주가 한화에너지(39.1%)인데 이 회사는 최대주주가 한화S&C(100%)다. 김 전무는 한화S&C의 지분 50%를 갖고 있다. 한화S&C→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큐셀이라는 지배구조의 중심에 김 전무가 있게 됐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비조선 부문을 독립회사들로 분할하기로 결정한 이후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던 차였다. 올 4월 그룹을 현대중공업(조선·해양) 외에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로보틱스(로봇) 등으로 분사하면서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세우기로 했다. 
 
그룹 측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노조 측은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36) 현대중공업 전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이를 준비 중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법 개정안 통과가 변수다.
 
이밖에 신세계는 정용진 이마트 부회장과 그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남매 경영’ 시대가 본격화한 분위기다. 정 부회장이 이마트를, 정 사장이 백화점을 각각 맡아 분리 경영하는 구도다. 앞서 신세계는 2011년 백화점 부문과 대형마트 부문의 인적분할로 그 서막을 열었다. 
 
지난해 4월엔 두 오너가 각자 가진 신세계와 이마트의 주식을 맞교환하면서 본격적인 분리 경영에 나설 채비를 했다. 정 부회장은 올 1월 4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동생도 맡은 분야, 잘하는 분야에서 책임감을 갖고 해보라는 어머니(이명희 회장) 지시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를 공식화했다.
 
시민단체 “일감 몰아주기로 물밑 승계 작업” 비난 
그룹 내에서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구광모 ㈜LG 상무,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왼쪽부터).

그룹 내에서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구광모 ㈜LG 상무,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왼쪽부터).

이들 그룹은 대부분 최근 5년간 자산 승계율(오너 가족 전체 자산 중 자녀 자산 비율)을 끌어올리면서 경영권 승계 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지난해 10월 기준 삼성은 2011년 초보다 19.4%포인트 상승했다. 현대차(16.4%포인트↑), GS(7.3%포인트↑), 한화(6.5%포인트↑), LG(4.7%포인트↑)도 같은 기간 자산 승계율을 끌어올렸다. 후계자들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실탄 마련에 그만큼 분주했다. 
 
증여세 부담에다 관련 세제 보완으로 쉽지 않아진 여건 속에서도 승계에 대한 오너 가문의 의지는 확고하다. 이를 두고 “경제 발전과 오너들의 ‘책임 경영’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론과 “주주 권익을 침해하는, 편법을 동원한 부당(不當) 승계”라는 비판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재벌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나 차명주식 활용 같은 편법으로 물밑 승계 작업을 펼치면서 오너 가문의 자산을 늘리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국은 산업화와 경제 민주화라는 두 가지의 가치가 불완전하게 타협되는 바람에 위기에 처했다”며 “지배구조 개선으로 재벌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수 일가라도 무능하면 경영에서 배제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재벌 계열사 투자 한도를 늘려 의결권을 높이는 방안을 대안으로 언급했다.
 
반면 재벌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에 제동을 걸었다가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무리한 법 개정(상법 개정안 통과)은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를 뒤흔들어 장악하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안팎으로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했다. 
 
자칫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 실장은 “오히려 경영권 방어 수단이 대등하게 제공돼야 한다”며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의 적극적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포이즌필(poison pill):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 중 하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에 신주를 사들일 권리를 주는 제도.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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