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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도 못한 걸 해내다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를 서울 강남구 'WOOYOUNGMI' 플래그십 스토어 맨메이드에서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를 서울 강남구 'WOOYOUNGMI' 플래그십 스토어 맨메이드에서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58)는 가장 글로벌한 한국인 디자이너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세계 4대 패션위크(파리ㆍ밀라노ㆍ런던ㆍ뉴욕)에서 가장 오랜 기간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둘째는 세계 주요 도시 고급 백화점 매장에 가장 많이 입점해 있는 디자이너다.그의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는 합리적 가격대를 설정한 대중적인 제품도 아니다. 콧대 높은 파리지엥, 그것도 패션ㆍ명품업계 고위인사들이 우영미의 옷을 찾아 입는다. 시릴 비네론 까르띠에 최고경영자(CEO)같은 사람이 단골이다. 우영미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파리 남성 패션위크에서 2017년 가을ㆍ겨울(FW) 컬렉션을 선보이고 돌아온 그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맨메이드에서 만났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우영미, 파리ㆍ런던ㆍ뉴욕의 고급 백화점 최다 입점
2002년 파리패션위크 진출 후 31번째 컬렉션
"창의적인 일은 나로부터 시작, 일을 하는 이유를 먼저 정해야"

파리 패션쇼를 마치고 돌아온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벌써 활기가 넘쳤다. 1년에 두 번씩 파리에서 컬렉션을 발표한 게 올해로 15년째다. 오랜 기간 몸에 익은 일정 덕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파리에서 날아온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파리 쁘렝땅백화점이 남성관 리노베이션 후 재개관했는데, 우영미가 단독 매장을 열었어요. 오늘(1월 31일) 프랑스 기자들을 초청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어요.”
화려한 외관과 역사적 가치(1865년 설립)로 유명한 쁘렝땅백화점은 럭셔리 패션의 중심이다. 남성관 내 럭셔리 존을 만들어 12개의 브랜드를 들였는데, 우영미 브랜드가 디올ㆍ발렌티노ㆍ버버리ㆍ구찌ㆍ랑방ㆍ아크네스튜디오와 함께 선택 받았다. 이밖에 파리 봉마르셰, 런던의 헤롯ㆍ셀프리지 등 세계 17개국 40여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6월에는 뉴욕의 삭스피프스애비뉴백화점에 새로 들어간다.  
-프랑스 남자들이 왜 ‘우영미’를 좋아할까.
“(우영미 브랜드가 가진) 섬세함을 좋아하는 남성들이 파리에 많은 것 같다. 자기 안에 있는 섬세함을 닫아놓았거나 미처 모르고 있던 남자들이 ‘우영미’ 남성복의 섬세함을 알아봤을 때 고객이 된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놓은 디테일, 드러나지 않지만 입었을 때 느끼는 편안함 같은 거다.”
우영미 2017년 봄·여름 컬렉션.

우영미 2017년 봄·여름 컬렉션.

-여성 디자이너로서 그런 포인트를 어떻게 찾나.
“관찰을 많이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뜯어본다. 오해도 많이 받았다. 몸의 비율을 보는 편이다. 움질일 때 어떤 모양이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게 포장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여성이 남성복을 디자인할 때 장점은. 
“내가 여성복을 디자인할 때는 오히려 나 자신이라는 한계에 갇힐 수 있다. ‘짧은 치마는 싫어’ 같은 편견이 입력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남성복은 남자를 바라보고, 남자의 바디를 가장 아름다운 오브제로 만들 생각만 한다. 브랜드가 디자이너 따라 같이 늙지 않는 장점도 있다. 여자가 바라보는 가장 이상적인 남성이라는 지점에 늘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
-처음부터 남성복을 한 건 아니었는데.
“대학(성균관대 의류학과) 졸업 후 대기업 패션회사에 입사해 여성복을 맡았다. 중년 부인을 고객으로 하는 브랜드였는데 당시 20대였던 나와는 잘 안 맞았다. 또 당시 한국 여성복 시장은 귀엽거나 섹시하거나 두 가지뿐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중간쯤 어딘가에 있던 내 패션 성향은 주류에서 열외였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도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으로선 상당히 용감했는데.
“창조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엄청 클 때였다. 안락한 것에 대한 추구는 별로 없었다. 1년 쯤 다니다 그만두고 미국계 남성복 회사의 한국 디자인 사무소에 들어갔다. 한국보다 앞서있던 외국 패션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남성복의 기초부터 배웠는데, 남성복 디자인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사업을 하면 더 재미있겠다 싶었다.”
-초기 사업 자금을 시아버지에게 빌렸다고 했다.
“꼭 하고 싶다고 조르니까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오라고 했다. 한 두 시즌 해보다 말겠지, 라고 생각한 것 같다. 빌린 돈은 꼭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지원 받았다. 1988년 10월 서울 압구정동에 '솔리드 옴므' 매장을 열었다.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많이 눈에 띄길래 이곳을 선택했다. 오렌지족이 막 생겨날 때였다. 올림픽 건설 특수로 유리를 못 구해 매장 윈도우에 투명 비닐을 치고 개업식을 했다.”
-빌린 자금은 언제쯤 갚았나.
“3000만원을 빌려 창업했는데 1년만에 모두 갚았다. 너무 빨리 갚아서 아버님이 당황하셨던 기억이 난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취향을 보여주고 싶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옷이 당시 별로 없었다. 이승철·신승훈·윤상·이승환·이문세 등 발라드 가수들이 단골이었다.”
-지금은 그런 남자들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남성상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사회는 남자를 마초나 파워로 봤다면 요즘은 힘이 세고 권위적인 남자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변화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에 브랜드가 점점 더 힘을 얻은 것 같다. 젠더 개념이 없어지고 남녀를 나누는 게 의미가 없는 시대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른 세그먼테이션(구분)이 있을 뿐이다. 여자도 터프한 여자가 있고, 남자도 델리케이트(섬세한) 남자가 있듯이.”
이번 시즌 '우영미'가 그린 남자는 부드럽지만 독특하며, 무엇보다 성별이 뚜렷하지 않다.  [사진 우영미]

이번 시즌 '우영미'가 그린 남자는 부드럽지만 독특하며, 무엇보다 성별이 뚜렷하지 않다. [사진 우영미]

-한국 남자의 패션을 평가하면. 
“기성 세대는 패션에 대한 감각과 관심이 평균 이하이다. 반면 젊은 세대는 패션 관심도나 수용도가 지나치다고도 볼 수 있을만큼 높다. 세계 1~2위 수준은 된다. 두 그룹 간 간극이 매우 넓다. 꽃미남, 초식남, 남성용 BB크림 등 패션에 대한 관심이 인터넷과 아이돌 스타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일본도 비슷하지만 한국 남자의 바디가 패션에 더 최적화 돼 있다. 아무래도 북방혈통이 더 많이 섞여 있으니. ”
-2002년 파리 패션위크에 진출했다.
“최고의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결심했다. 파리를 선택했을 때 주위로부터 무모하다는 말을 들었다. 패션 변방인 한국에서 어떻게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로 직행하느냐고 걱정했다. 중국을 먼저 뚫어라, 대기업도 못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중국 시장은 럭셔리 브랜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파리에서 검증 받으면 다른 시장은 당연히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 럭셔리 브랜드 '우영미'로 파리에 갔다.”
-국내에서도 잘 나가는데 굳이 해외에 도전한 이유는.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의 판단이었다. 한국은 시장이 작아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만 할 수 없는 구조였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니 매출을 올려야 하고, 때때로 다른 브랜드와 비교당하며 압력도 받았다. 글로벌로 시장을 넓히면 내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내가 안 흔들리고 디자인을 계속 하려면 그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해외 명품 브랜드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입지가 좁아졌다. 브랜드를 지속하려면 작은 시장에서 복닥거릴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해야 한다고 느꼈다.”
우영미 2017 FW 컬렉션 [사진 우영미]

우영미 2017 FW 컬렉션 [사진 우영미]

-처음엔 텃세도 있었을텐데.
“한국에도 디자이너 브랜드가 있냐고 물어서 충격을 받았다. ‘온 캘린더’ 쇼(패션위크의 공식 일정 쇼)를 하기 위해서는 파리의상조합으로부터 정식으로 스케줄을 배정받는데, 처음엔 일요일 오전 10시를 받았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기피하는 시간대다. 토요일 밤늦게까지 파티에 참석한 VIP 패션 피플들이 일요일 첫 쇼는 거의 참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의 노력 끝에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됐다. 10여년 전부터는 파리 컬렉션에서 토요일 오후 디올 다음, 랑방 전 시간을 배정받았다. ”
-패션 디자이너를 포함,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해달라.
“지금은 어떤 분야든 한국 시장만 볼 수는 없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기술이 좋아져서 좋은 콘텐트가 있으면 세계에 알릴 방법은 많다. 콘텐트가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어떤 콘텐트를 만들것인지에 집중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한다. 다른 일은 남과 해야하지만 창의적인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먼저 정해라. 돈을 벌고 싶은지, 유명해지고 싶은지, 그냥 옷을 만들고 싶은지. 그에 맞춰 방법을 찾는다. 보통은 주변만 두드리다가 이걸 놓친다. 나도 그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우영미 2017 FW 컬렉션 [사진 우영미]

우영미 2017 FW 컬렉션 [사진 우영미]

-앞으로 목표는.
“많은 곳에 노출되기 보다는 주요 도시 핵심 백화점에 더 많이 들어가는 게 목표다. 그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려는 전략이다. 처음엔 소규모 편집숍에도 많이 들어갔는데, 3년 전 전략을 바꿨다. 옷 한 두 벌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외형이 줄더라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다. 세계가 인정하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로 가기 위한 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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