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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운명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탄핵 무대의 막이 내려지고 있다. 대단원까지 열흘 정도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의 정치적 삶의 사활(死活)이 판가름 난다. 그의 삶은 부침(浮沈)과 파란이다. 영욕과 성쇄가 번갈아 그를 찾아왔다. 그의 19년 정치 풍광도 극단적으로 교차한다. 찬사와 멸시, 행운과 불운이 엇갈렸다.

파국 또는 회생, 사활 걸린 열흘
닉슨 하야, 불명예 씻지 못해
3·1절 광장, 불복 심리 고착화
"8대 0 인용으로 딴소리 막아야”
"박근혜 청렴, 특검 역설적 성과”
‘헌재 후’ 나라운명, 국민역량에

박 대통령은 “나의 생은 한마디로 투쟁”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 그의 일기다. 그는 자기 방식과 언어로 세파에 맞섰다. 하지만 그는 투쟁할 수 없다. 그는 심판 대상이다. 파국 아니면 기사회생의 극단적 처지다. 원망도 후회도 소용없는 상황이다.

그에게 선택지가 남아 있긴 하다. ‘탄핵심판 전 하야’다. 하지만 이젠 잠재 효력은 미미하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 닉슨의 방식이다. 1974년 닉슨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탄핵 결정 직전이다. 그 후 포드 대통령(부통령으로서 승계)은 닉슨을 사면했다. 닉슨은 정치적 명성의 복원에 나섰다. 그것은 자기 업적의 재평가 작업이다. 그것으로 하야의 불명예를 상쇄하려 했다.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LA 인근)에 닉슨박물관이 있다. 중국과 외교관계 정상화, 아폴로 11호 달 착륙은 그의 성취다. 전시장에 가면 그 증거물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어둠의 원죄는 씻어지지 않는다. 닉슨은 권력 남용과 술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할리우드 감독들은 그 집단기억을 영화로 끊임없이 재생한다. 닉슨의 하야는 사즉생(死卽生)의 시도였다. 하지만 그 묘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의 사후 23년이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문재인의 야당은 ‘탄핵 결정 전 하야’를 꼼수라고 규정했다. 파면을 회피하려는 술책으로 못 박는다. 청와대도 하야설을 부인한다. 그 카드는 타이밍을 놓쳤다. 한국의 대통령 문화는 척박하다. 지금의 하야는 사정 변경을 이끌기 힘들다. 그 방안은 헌재 인용(認容)의 파면과 비슷하다. 인용은 광화문광장을 촛불의 환호로 덮을 것이다. 뇌물 피의자 ‘민간인 박근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질 것이다. 3·1절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 인용 만세!’의 대형 구호판이 눈에 띈다.

박 대통령은 설 연휴에 현충원의 부모 묘소를 찾았다. 올해는 ‘박정희 탄생(1917년 11월 14일) 100주년’이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1979년 10·26 후 ‘박정희 장례식’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연주됐다. 니체의 초인(超人) 이야기와 같은 제목의 교향시다. 김종필은 “그 장엄한 선율 속에서 근대화 혁명가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JP 구상은 사라졌다. 딸의 실패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었다. 광화문광장은 박정희·박근혜를 묶어 적폐 청산을 외친다. 태극기집회에는 박정희 업적 수호의 깃발도 흩날린다.

3·1절의 서울은 갈라졌다. 광화문과 서울광장 사이는 적대적이다. 촛불과 태극기의 탄핵 찬반 전선은 험악하다. 그 풍광은 해방 공간의 갈등을 떠올린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1928년생)은 이렇게 기억한다. “해방 후 첫 3·1절 행사(1946년)는 좌우로 갈라졌다. 신탁통치 찬반 문제 때문이다. 좌익은 반탁에서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으로 돌변하면서 분열은 격화됐다.”

진실은 하나다. 진실은 쪼개지면서 둘이 된다. “탄핵 이유는 차고 넘친다. 박근혜는 최순실과 짜고 뇌물을 받은 공범이다.”(촛불), “박 대통령이 1원도 받지 않은 청렴함이 밝혀진 게 특검 수사의 역설적 결론이다. 탄핵은 조작이다.”(태극기) 많은 원로들은 ‘승복’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 말의 영향력은 작다. 다수 정치인들도 승복을 다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광장에 나간다. 광장에는 배타적인 이념과 역사관이 배어 있다. ‘보수 적폐 청산’ ‘종북 음모 타도’라는 소리가 퍼진다. 광장은 불복 의 심리를 강화한다.

대립의 광장 속에도 갈등 해법이 있다. 촛불 쪽에서 ‘헌법재판관 8대 0 찬성’을 거론한다. “분열을 막기 위해선 전원합의의 8대 0 찬성이 돼야 한다. 만장일치 결정이 불평의 딴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 태극기의 한쪽에선 ‘헌재 각하(却下) 후 대통령 퇴진’을 말한다. 각하는 인용, 기각 이전의 판단이다. 국회 탄핵소추 절차가 원천적으로 미흡하다는 것이다. “각하 후 박 대통령이 자진 퇴진해 대선 정국을 열어주면 촛불의 불만은 수그러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은 상대편에선 보면 교란술이다.

운명의 주사위는 대기 상태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한다. ‘혁명’과 ‘참극’의 충돌하는 외침 속에서 대면한다. 인용이든 기각, 각하든 승리와 절망이 교차할 것이다. 사회적 기량으로 그 상황을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 힘은 관용과 통합이다. ‘헌재 이후’에 그런 지도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나라의 운명은 국민 역량에 달려 있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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