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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혼자 술 마시는 그녀 … 알코올 중독 위험 더 높아요

김모(52·여)씨는 3년 전 남편이 회사를 옮기면서 함께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산에 연고가 없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남편이 출근한 어느 날 김씨는 선물로 받아 집에 보관하던 와인을 따서 한잔 마셨다. 그런 날이 잦아져 이제 매일 한 병씩 마시게 됐다. 와인을 안 마시면 괜한 불안감이 생겨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씨는 최근 ‘키친(kitchen·부엌) 알코올 의존증’ 진단을 받았다. 알코올 중독을 의료계에선 ‘알코올 의존’이라고 부른다. 치료가 시급한 질환이라는 점을 강조한 용어다. 김씨는 “내가 알코올에 중독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혼자 마시면
심각한 지경 이르러서야 알아채
작년 술 의존환자 5명 중 1명 여성
여성은 알코올 분해 효소 덜 분비
간경화·간염 합병 가능성 훨씬 높아
정신질환 동반율도 남성 2배 넘어

서울 마포구에 사는 최모(25·여)씨는 술 취한 아빠가 엄마에게 손찌검하는 모습을 어린 시절 자주 목격했다. ‘때리는 아빠나 맞고 사는 엄마나 다 보기 싫어’ 가출도 여러 번 했다. 고등학생 때는 소위 ‘일진’이 돼 술과 담배를 했다. 고교 졸업 후엔 고시원에 혼자 살며 술집에서 일했다. 손님들과 일주일에 3~4번씩 술을 마시다 보니 한 번에 소주 3~4병을 마시고 정신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과음하고 손님과 다투는 일도 생겼다. 결국 술집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최씨는 지난해 9월 또 폭음으로 정신을 잃었다. 길거리에서 폭행과 강도를 당하고 쓰러진 채 행인에게 발견됐다.

남성에게나 심각한 것으로 여겨졌던 알코올 의존증이 빠르게 여성들에게 번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알코올 의존 치료를 받은 환자 7만2173명 중 여성은 21.2%였다. 환자 5명 중 1명이 여성이다.

주목할 점은 여성 환자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환자는 2013년 1만4056명에서 지난해 1만5311명으로 1200여 명 늘었다. 반면 남성은 같은 기간 5만9226명에서 5만6862명으로 2300여 명 줄었다. 일부 연령대는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많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2009년 30대 환자에서 여성이 남성을 처음 추월했다. 이후 남성이 더 많은 해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여성이 더 많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 번에 먹는 술이 많고 음주 횟수도 잦은, 이른바 ‘고위험 음주’도 여성에서 늘고 있다. 고위험 음주란 소주를 기준으로 한 번에 남성은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을 마시는 것을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반복하는 것을 일컫는다. 남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2011년 23.2%에서 2014년 20.7%로 감소했다. 하지만 여성은 같은 기간 4.9%에서 6.6%로 늘었다.

청소년의 음주 행태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여성의 알코올 의존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질병관리본부와 교육부가 2015년 중1~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험음주 비율을 조사했다. ‘최근 30일간’ 여학생이 소주 3잔(남학생은 소주 5잔)을 마시면 위험음주에 해당한다. 위험음주율이 남학생 9.6%, 여학생 7%로 성별 간에 차이가 크지 않았다. 15세 이전에 음주를 시작하면 알코올 의존에 빠질 위험이 네 배 높다는 연구가 있다.

알코올 의존증은 남녀 모두에게 위험하다. 하지만 여성에게 더욱 치명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이른바 ‘깔때기 효과’다.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알코올 의존이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술을 적게 마셔도 더 짧다는 것이다. 미국 톨레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알코올 의존이 처음 나타나기까지 0.9년이 걸린다. 남성은 2.3년이다. 시점을 음주에 대한 통제력을 처음 잃어본 시기로 바꾸면 기간이 다소 늘어난다. 하지만 이 역시 여성이 5.5년으로 남성(7.8년)보다 짧다.

둘째, 알코올 의존이 다른 정신과 질환을 동반하는 비율이 여성에서 더 높다. 2006년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알코올 의존으로 입원한 환자 270명(남녀 각각 135명) 중 다른 정신과 질환이 동반된 비율을 보자. 여성에선 63%(85명)나 돼 남성(25.1%·34명)의 두 배가 넘었다. 여성에게 흔히 동반되는 질환은 기분장애(51명), 인격장애(24명), 식이장애(16명) 등이었다. 이는 음주 동기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술 마시는 동기를 물었더니(복수 응답) 여성은 부부 문제(46명)가 가장 많았고 이어 가족 내 갈등(42명), 정신과적 문제(36명), 경제적 문제(22명) 등 순서였다. ‘습관적으로 마신다’는 사람은 16명(11.9%)에 불과했다. 반면 남성에게선 ‘습관적으로 마신다’는 사람이 60명(44.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업적 문제(24명), 정신과적 문제(24명), 부부 문제(18명) 순이었다. 자살을 시도한 경험도 여성(27.4%·37명)이 남성(13.3%)의 두 배나 됐다.

셋째, 최근 유행하는 ‘혼술’(혼자서 술 마시기)이 여성의 알코올 의존 위험을 높이고 있다. 혼술족은 ‘혼자’ ‘적은 양의 술’을 ‘정기적’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음주 유형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정모(34·여)씨가 이런 사례다. 정씨는 직장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추가 검사를 받아 보니 ‘알코올성 간염’을 앓고 있었다. 정씨는 성인이 된 후 술을 마시기 시작해 퇴근길에 거의 매일 혼자 소주를 반 병에서 한 병쯤 마셨다. 정씨는 ‘알코올 의존 환자’라는 진단에 수긍하지 않았다. “폭음한 적도 없고 주량에 맞춰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는데 내가 왜 알코올 중독이냐”며 의아해했다. 혼자 술을 마시면 본인은 물론 가족도 심각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알코올 의존을 눈치채기 힘들다. 반면 남성은 불규칙적으로 폭음하기 때문에 알코올 의존이 눈에 잘 띈다.

넷째, 알코올 의존이 신체에 미치는 위해는 여성에게 더욱 크다. 간경화나 알코올성 간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여성에서 더 높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게 분비된다. 체중이 덜 나가고 체액은 적은 반면에 지방은 남성보다 더 많다. 술을 적게 마셔도 알코올성 간질환이 생길 위험은 더 높다.

국내에서 알코올 의존은 대체로 남성에게 문제가 됐다. 여성은 알코올 의존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심해선 안 된다. 서구화·선진화가 진전된 사회일수록 여성의 알코올 의존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의 알코올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궁기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료원 미래발전추진위원장, 한국중독정신의학회 회장, 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이사,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이사, 학술연구진흥재단 학술연구심사평가위원

남궁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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