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7인의 작가전] 붕괴 #15. 전투 (1)

붕괴 후 일곱 시간 육 분 경과, 지하 4층 진입.
 
유리 난간을 열고 지하 4층의 중앙정원으로 발을 디디기 직전 이대백이 내게 열한 시 육 분이라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발을 내디디는 순간부터 나는 지나치게 긴장해 있어서 그가 말한 시간을 느끼지 못했다. 불과 한층 차이일 뿐이었고, 어둠의 농도 역시 비슷했지만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는 전혀라고 할 정도로 달랐다. 높은 천정을 타고 흐르는 바람에서조차 숨 막히는 증오심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위층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위층처럼 방들을 뒤지면 되는 거지요?”
 
이빨을 드러내며 웃은 이무생이 묻자 차재경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다들 마음 굳건하게 드시고 따라들 오세요.”
 
차재경은 남쪽 통로로 움직였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랐다. 우리 네 명 역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다. 좁은 통로에 굴절된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희뿌연 잔해들을 남겨두었다.

“그 안내장이라는 걸 받아보셨습니까?”
 
나는 틈을 봐서 이대백에게 물었다.


“아니, 난 아들의 죽음을 조사하다가 이번 일을 알게 되었네. 병원장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따졌더니 어제 우리들이 만난 장소를 알려주더군.”

“전 받아봤어요.”
 
이대백에 이어 김승리가 대답했다. 김원섭도 약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병원이 붕괴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나요?”
 
내 물음에 김승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나쁜 꿈을 꾸고 일어났다가 봐서 그런지 기분이 엄청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냥 잊어버렸는데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세화병원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마침 일이 있어서 병원 근처에 있어서 생각난 김에 약속 장소라고 쓰여 있던 곳에 온 거죠. 제가 오고 5분쯤 있다가 아저씨가 온 거고요.”

“자기 병원이 무너진다고 안내장을 보낸 거나, 아무리 가족들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허가도 받지 않는 실험에 선뜻 동의한 가족들의 태도 모두 수상쩍은 구석이 많은 것 같은데요.”

“가족들이 아닌 사람들도 끼어있어. 나도 그렇고, 저 두 조폭들도 두목과는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내 말에 이대백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고, 김승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저도 희우 씨와 혈연관계는 아니에요.”

“아까 그러는데 동의서 어쩌고 했는데 그건 무슨 얘기였습니까?”

“희우 씨가 죽고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데 차재경 씨가 그러더군요. 희우 씨 시신을 가지고 모종의 실험을 해야 하는데 동의가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전 가족이 아니라서 못하겠다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다시 찾아와서는 희우 씨 장례식 비용을 안 받을 테니 서명해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희우 씨 집안 형편이 안 좋을 때였고, 부모님들은 동의서에 이미 사인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냥 서명을 해버렸죠. 물론 만만치 않은 액수의 돈을 제시한 것도 이유였고요.”

“왜 가족도 아닌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을까요?”
 
빠르게 움직이던 통로의 불빛들이 문 앞에서 일제히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건, 우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죠.”
 
활짝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들어서던 나는 문에 걸린 황금색 명판의 글씨를 볼 수 있었다.

[ 제2배양실 ]
 
맨 처음 나타난 것은 사우나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라커실이었다. 벽을 빼곡히 채운 철제 라커들이 스쳐 지나가는 헤드램프의 불빛들을 고스란히 토해냈다.

“여긴 어딥니까?”
 
조심스럽게 천장 쪽을 올려다보던 김길수가 앞장선 차재경에게 물었다.

“글자 그대로 추출된 엑토플라즘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객체에 배양하는 실험을 하는 배양실입니다. 완전 무균된 살균실이라서 안에 들어갈 때는 샤워를 하고 무균복과 장화를 신어야 하죠. 이쪽으로 오시죠.”
 
차재경은 둥근 유리창이 달린 문 앞에 섰다. 그 문은 다른 문처럼 가운데 밀어서 여는 검은 바가 없었고,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 두 개만 있었다. 그 구멍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은 차재경의 눈동자가 잠시 멈췄다.

“저기, 오희섭 씨랑 김길수 씨랑 창을 들고 저 문 쪽을 지켜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안에서 뭔가 바깥으로 나간 모양인데요.”
 
그리고는 딸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른 문들과는 달리 두껍고 무거운 재질로 만든 듯 문은 천천히 열렸다. 안으로 빨려 들어간 불빛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심하게 요동쳐댔다. 투덜대는 김길수와 오희섭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선 나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여긴 제2배양실입니다. 다양한 생명체에게 엑토플라즘을 주입시키는 실험을 실시하던 곳이죠.”
 
차재경의 다음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학교 때 실험실 안에서 해부된 동물들이 잠겨져 있던 거대한 유리병 같은 것들이 더 정교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실험실 안을 가득 채웠다. 비록 배가 갈라지고 내장들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찌꺼기 같은 것이 떠다니는 푸른 용액 안에 잠겨있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모습들이었다. 아까 3층에서 봤던 고양이만한 쥐들과 털이 몽땅 빠지고 살이 짓뭉개진 모습의 원숭이들, 그리고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갖춘 기괴한 괴물들, 그리고...

“사람도 그 다양한 생명체에 들어가는 겁니까?”
 
거대한 유리관 앞에 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차재경에게 소리쳤다. 푸른 용액이 채워진 유리관 안에는 50대로 보이는 키 작은 남자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옆에 놓인 거대한 기계들이 쉴 새 없이 규칙적인 기계음을 토해내면서 유리관 안에 산소와 다른 것들을 공급해주는 것 같았다.


“무연고 시신들입니다. 주로 노숙자나 범죄에 관련된 사람들이죠. 원래 그런 시신들은 카데바로 쓰이니까 원래의 목적에서는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여기 당신을 따라온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도 이런 식으로 유리관 안에 개구리처럼 집어넣고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 내 아들도?”

“당신 아들이나 여기 들어온 분들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런 실험들을 반복한 겁니다. 여기 있는 걸 보세요. 여러분들의 가족처럼 완벽한 존재는 없습니다. 당신 앞에 있는 시신은 종각역에서 죽은 노숙자입니다. 신장은 어디 떼어다가 팔아먹었고, 간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죠. 원래 신분도 아마 돈 몇만 원에 브로커에게 넘겼을 겁니다. 시신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카데바로 쓰지도 못할 걸 가지고 실험을 한 겁니다. 그자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남들에게 한 줌의 도움도 못 되었던 것이죠. 당신 아들을 그런 존재와 비교하다니, 부인께서 몹시 서운해할 겁니다.”

“뭐라고요? 부모 중 한쪽의 동의만 가지고 이런 실험에 내 아들을 쓴 건 절대 용서 못 합니다. 아들을 데리고 나가면 당신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오호, 나 역시 당신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부인의 부탁을 거절했었죠. 그랬더니 부인께서는 남편은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이런 일에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난 당신 같은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해놓고서는 주변 탓으로 돌려버리곤 하죠. 상처 입은 자존심을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두고 두고두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그런 타입 말입니다.”
 
발끈한 나는 그에게 덤벼들려고 했지만 사제 권총을 움켜쥔 이무생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따, 쪼까 진정 좀 하시지. 선상님 말씀이 좀 심허기는 혀도 틀린 말은 아니니께.”

“이 실험체들은 모두 폐기해야 합니다. 그냥 유리관과 연결된 선들을 자르고 기계들만 부수면 됩니다. 어서들 서두르세요.”
 
흩어진 사람들은 유리관과 연결된 창으로 유리관과 연결된 선들을 자르거나 기계를 발로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선이 끊어진 유리관에서는 좀 더 세찬 기계음이 울리면서 푸른 물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선생님, 여기 이건 깨져있는데요.”
 
일렬로 늘어선 제일 큰 유리관을 따라서 제일 끝까지 갔던 박금봉의 말에 차재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그의 표정을 따라 움직인 나는 사람이 들어갔음직한 거대한 유리관이 깨져있는 광경을 보았다. 한쪽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있는 유리관 주변은 깨진 유리조각과 안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푸른 용액에 얼룩져있었다.

“모두 물러서 봐요. 비켜보란 말입니다.”
 
사람들을 밀쳐낸 차재경이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들을 눈길로 더듬었다. 점점이 뿌려진 물방울들은 문까지 길게 이어졌다.

“멀리 못 갔을 겁니다. 어서 뒤쫓으세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는 여러분들의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차재경의 말에 두 덩치를 선두로 사람들이 바깥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뒤에 남은 차재경은 실험체들이 들어있는 유리관들의 선들을 차례로 잘라내고는 문 옆에 도어록 같이 생긴 번호판을 눌렀다.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어록이 위쪽으로 열리자 안쪽에 작은 레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재경이 레버를 아래로 당기자 천정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꾸르륵거리는 소리는 잠시 멈추더니 유리관으로 연결된 파란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후 푸른 용액이 빠져나간 유리관 천정에서 스프링클러처럼 물들이 흩뿌려졌다. 한 가지 차이점은 물에 닿은 실험체들이 지독한 연기를 내면서 녹아내렸다는 것이다. 물기 때문에 유리관의 벽면에 달라 붙어있던 원숭이의 얼굴이 지글거리며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염산입니다. 이렇게 하면 굳이 유리관 안을 청소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나는 이죽거리던 차재경이 바깥으로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가슴 한구석이 심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통증이 박혀있는 옆구리를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바깥으로 나가려던 나는 문 옆에 여전히 서 있는 사제를 보았다. 나는 무심한 눈길로 실험체들이 사라진 유리관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툭 말을 던졌다.

“여기 있는 것들에게는 기도 안 해주십니까?”

“영혼을 느낄 수가 없군요. 흐릿한 흔적은 느낄 수 있지만 말입니다.”
 
나를 흘끔 바라본 사제는 둥근 유리창이 달린 실험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 역시 염산에 녹아버린 실험체들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배양실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은 라커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라커실 바깥에 모여 있었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