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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충전소] 연주회에 리처드 기어 초대하니 … 이날 걷힌 후원금만 54억원

이런 상상을 해 보자. 당신은 뉴요커다. 눈앞 무대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뉴욕필)가 연주하고 있다. 당신은 이 오케스트라 음악을 좋아한다. 뉴욕필의 1년 치 연주 목록을 미리 살펴보곤 한다. 그런데 뉴욕필이 제안을 한다. 한 해 1000달러(약 113만원) 이상을 내면 오케스트라의 주요 결정에 참여시켜 주겠다고 말이다. 돈을 내고 ‘프레지던트 카운슬(President’s Council)’이라는 클럽에 가입하면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뉴욕필의 마케팅 전략을 조언하거나 연주회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뉴욕필이 지난해 6월 실제로 내놨다. 첫 모임도 심상치 않았다. 미국의 수퍼스타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슈아 벨의 집에 초대된 회원들은 만찬과 음악회를 즐겼다.
 

예술단체, 그들이 돈 모으는 방법
뉴욕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등
개인·기업 후원금 비중 40% 넘어
만찬·특별레슨·경조사까지 관리
연회비 9만~1억원, 등급별 혜택
국내는 정부 보조금에 많이 의존
“재원 조성 전문화·체계화 나서야”

만일 오페라 팬이라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하 메트 오페라단)의 제안에 솔깃할 것이다. 메트 오페라단은 매년 12월 뉴욕의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만찬을 연다. 플라시도 도밍고, 안나 네트렙코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함께 식사를 한 뒤 후원자들과 사진을 찍는다. 여기에 초청되는 이들 중엔 매해 최대 10만 달러(1억1300만원)을 내는 후원자도 있다.
 
"뉴욕필 사무국 중 돈 끌어오는 팀이 최강”
 
메트 오페라단이 매년 말 고액 후원자들을 초대하는 만찬. [사진 메트 오페라단]

메트 오페라단이 매년 말 고액 후원자들을 초대하는 만찬. [사진 메트 오페라단]

오케스트라·오페라단·공연장 등 미국의 예술단체들은 돈을 그러모은다. 그것도 치열하게 모은다. 특히 미국의 비영리 예술단체·법인은 후원금에 의존한다. 그중에서도 공격적인 재원 조성(fundraising)으로 유명한 뉴욕의 3대 예술법인을 중심으로 ‘돈 모으는 기법’을 알아봤다. 뉴욕필, 메트 오페라단, 카네기홀을 대상으로 했다. 우선 이 세 곳의 수입 중 정부에서 받는 돈은 10%를 넘지 않는다. 미국 국세청 자료를 기반으로 비영리 단체·법인의 재정을 분석하는 가이드스타에 따르면 2014년 뉴욕필의 총예산(7000만 달러·약 793억원) 중 정부 지원금은 약 0.3%(31만 달러·약 3억원)에 불과했다. 메트는 0.1%, 카네기홀은 8.2%다. 개인 후원자와 기업에서 받는 돈이 살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뉴욕필은 후원금이 2992만 달러(약 339억원)로 한 해 수입의 42%였다. 메트는 44%, 카네기홀은 32%다. 메트 오페라단의 언론 담당자인 샘 뉴먼은 “특히 유럽의 오페라단과 비교하면 정부 지원금이 아주 적다”고 e메일로 전했다.
 
미국의 예술단체들은 재원 조성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고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65년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NEA)이 설립돼 국고 지원이 시작됐지만 90년대 들어 예산이 줄고 95년엔 총예산 절반이 삭감됐다(『문화예술단체의 재원 조성』, 용호성·이은옥 지음). 이 때문에 미국 예술법인의 재원 조성 기법은 20년 동안 발전하고 전문화됐다. 무엇보다 돈을 모으는 데 사람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뉴욕필은 사무국 직원 총 88명 중 18명이 재원 조성 파트에서 일한다. 개발(development)부서 아래 기업 담당, 개인 후원 관리, 기관 관리 파트가 따로 있다. 또 ‘스페셜 이벤트’라는 팀에는 3명이 배치돼 있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후원자들을 위한 특별 공연을 진행하는 것, 식사 코스를 정하는 것 등이다. 야외 무료 콘서트를 열 때 VIP 후원회원이 즐길 만찬 코스를 5성급 호텔에서 들여오는 일 등을 하는 인력만 따로 있는 셈이다. 2004~2008년 뉴욕필의 공연기획팀에서 근무했던 박선민씨는 “뉴욕필 사무국 모든 부서 중에 돈 끌어오는 팀의 힘이 가장 세다. 공연기획팀은 그 실행만 하는 부서로 생각됐을 정도”라고 전했다. 돈 모으는 데는 돈도 필요하다. 뉴욕필은 지난해 예산 지출 중 펀드레이징에 467만9000달러(약 52억원)를 썼다. 이 중 인건비가 244만 달러(약 27억원)다. 강은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후원자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조차 감정노동 정도가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일이라는 인식이 미국에선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뉴욕필이 매년 여는 센트럴 파크 무료 공연엔 후원 기업이 필요하다. [사진 뉴욕필]

뉴욕필이 매년 여는 센트럴 파크 무료 공연엔 후원 기업이 필요하다. [사진 뉴욕필]

후원 유치 방법은 전문화되고, 후원자가 단체에 접근하는 문은 다채롭게 한다. 메트 오페라단의 후원회는 총 22등급으로 구분된다. 연 85달러(약 9만원)에서 시작해 많게는 10만 달러를 내는 회원까지 있다. 뉴욕필 후원회는 11등급, 카네기홀은 21단계다. 후원자에게 주는 혜택도 가지각색이다. 티켓을 먼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특별히 기획된 음악회와 리허설 초대는 기본이다. 오페라단 소속 성악 코치들에게 노래 레슨을 받을 기회를 주고, 젊은 후원자들만 모아 파티도 열어 준다. 메트 오페라단에선 원하는 혜택을 후원자가 직접 설계할 수도 있다. 또 유산을 오페라단에 남기겠다고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다. 사무국 직원들의 월급을 주도록 후원금 용도를 지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재원 조성을 위한 아이디어는 인력과 돈을 바탕으로 끝없이 업그레이드된다. 5년째 메트 오페라단의 후원회원인 황지원 음악칼럼니스트는 “2주에 한 번 e메일로 오페라단 소식을 보내 주는데 여기엔 수퍼스타 성악가의 친필사인이 들어 있다”며 “후원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충성심을 심어 주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재원 조성 아이디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이를 한국의 예술단체와 곧바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국내 대표적 예술단체라 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서울시립교향악단·국립오페라단은 공공기관이다. 예술의전당과 서울시향은 특수법인으로 독립돼 있지만 정부의 예산을 받는다. 살림살이 중 나랏돈이 절대적이다. 예술의전당은 2016년 예산 수입(505억원) 중 25.6%(129억4000만원)가 국고다. 같은 해 서울시향 수입 187억5099만원 중 서울시 출연금은 117억원으로 62.3%다. 협찬·후원금액은 26억7556만원으로 14.2%에 불과하다. 국립오페라단의 2016년 수입 중에도 국고 지원이 80억원으로 80%를 차지한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사적인 기업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상당하기 때문에 재원 조성 방향도 거의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 후원을 끌어낼 가능성은 더 줄어들었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예술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은 두 가지 문제와 맞닥뜨린다. ‘지원해야 하는가’와 ‘지원할 수 있는가’다”고 말했다. 예술 지원의 당위성을 인정하더라도 국가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낸 김용배 추계예대 교수 또한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최대한 다양한 개인과 기관으로부터 많은 재원을 확보하되 예술단체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최근의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국고 지원에는 정치적 편향의 위협이 있고, 한정된 후원자에 의존할 경우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또한 “미국에선 비영리 분야가 전체 경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정도기 때문에 후원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잘돼 있다”며 “국내의 현실적 사정을 당장 개선할 수는 없더라도 국내 예술단체들이 돈을 끌어오는 방법을 전문화·체계화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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