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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취재 후기 4편] 기세등등한 영어권 외신기자들, 북한대사관 앞에선 "방금 뭐래요?"

말레이시아에 온지 열흘간 새삼 확인한 것은 영어의 위력이다. 기자회견은 온통 영어로 진행됐다. 게다가 매체 파워가 있는 현지 외신 기자들은 꼴불견에 가까운 텃세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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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기자는 뭐만 하면 “CNN! CNN!”이라고 외치며 우선권을 가져갔다. AFP통신 사진기자는 기자회견 등록 대기 줄에 뒤늦게 도착해놓고선 “전부 해산하고 이따가 다시 줄서라.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이 덩치 크고 목소리 큰 AFP 사진기자는 이후에도 행패를 부리는 게 목격됐다. 경찰청 기자회견 때도 뒤늦게 와놓고선 일찌감치 입장해 ‘명당’을 차지한 한국 카메라 기자들에게 딴 곳으로 가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깡패'가 따로 없었다.
 
말레이시아 경찰 등 당국자들은 현지 기자들 아니면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경찰청장ㆍ경찰서장ㆍ범죄수사국장 등에게 수백번 전화를 돌렸지만 통화가 된 건 단 두차례. 그때도 그들은 제대로 된 답변은 하지 않았다.  
 
 
23일 북한 대사관 직원이 조간 신문을 가지러 나왔다. 철창틈에 있어서 그냥 가져가도 되는데 굳이 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간다. 기자들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아저씨는 대사관 직원 중 가장 출입이 잦으신 분인데 자주 보니 정들 것 같다. 김준영 기자

23일 북한 대사관 직원이 조간 신문을 가지러 나왔다. 철창틈에 있어서 그냥 가져가도 되는데 굳이 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간다. 기자들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아저씨는 대사관 직원 중 가장 출입이 잦으신 분인데 자주 보니 정들 것 같다. 김준영 기자

 이런 상황은 북한 대사관 앞에만 가면 역전이 됐다. 대사관을 오가는 북한 사람들을 볼때마다 기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북한 직원들은 공식 성명서 발표 때 외엔 영어를 전혀 쓰지 않았다. CNN 등 외신기자는 ‘꿀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대사관에 진입하는 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조선이 이 사건과 관련된 게 사실입니까” “사건 연루자 현광성씨가 여기 직원 맞습니까” 등의 질문을 던졌다. 대사관 직원은 약속이나 한 듯 대답이 “모릅니다”였다. 직원이 떠나고 나면 외신기자들은 한국 기자들에게 달려 붙었다. “방금 한국인들이 뭐라고 질문한 건가요? 대사관 직원 답변은 뭐래요?” 등등. 나는 들은 대로 전해줬다. “I don't Know."
 
 
 
23일 현지 언론 더스타 신문이 북한 대사관 철창에 끼여 있다. 1면 사진은 전날 찍힌 북한 대사관 앞 사진. 이런 걸 액자식 구성이라 해야 하나 싶다. 김준영 기자

23일 현지 언론 더스타 신문이 북한 대사관 철창에 끼여 있다. 1면 사진은 전날 찍힌 북한 대사관 앞 사진. 이런 걸 액자식 구성이라 해야 하나 싶다. 김준영 기자

#드디어 한국으로
이 글을 쓰고 있던 24일 저녁 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복귀 지시다. 이미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이 귀국했거나 금명간 돌아갈 예정이다. 찾아보니 가장 빠른 비행기는 25일 밤 11시 59분. 말레이시아 취재 12일만의 복귀다.
 
전날 아침엔 공항 청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시내로 나오던 중 기자회견장에 맡겨 놓은 여권을 깜빡한 게 생각나 다시 돌아갔다. 여권을 찾고 시내 북한 대사관으로 향하던 중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김정남 암살에 현존하는 최강 독극물질인 VX가 쓰인 게 밝혀졌다는 경찰 발표였다. 공항청사에서 만약을 대비해 소독 작업이 이뤄진다고 해서 취재를 위해 다시 택시를 돌렸다. 공항과 시내를 2번 왕복한 셈. 오늘 저녁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어떨까.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쿠알라룸푸르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위타워. 시내 어디서든 보이는 초고층 빌딩이지만 여기저기 취재 쫓아다니느라 이곳에 온지 3일만에 처음 제대로 봤다. 말레이여 안녕. 김준영 기자

쿠알라룸푸르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위타워. 시내 어디서든 보이는 초고층 빌딩이지만 여기저기 취재 쫓아다니느라 이곳에 온지 3일만에 처음 제대로 봤다. 말레이여 안녕. 김준영 기자

김준영 중앙일보 기자

김준영 중앙일보 기자

 
<쿠알라룸푸르에서>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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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