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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불복은 왕조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보수·진보 원로들, 헌재 결정 승복 한목소리 …
탄핵문제 지적 광고 낸 이시윤 전 재판관도 “불복은 문명의 후퇴”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이었던 25일 서울 중구 세종로 일대에서는 시민 수백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왼쪽 사진)와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이었던 25일 서울 중구 세종로 일대에서는 시민 수백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왼쪽 사진)와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태극동지들이여 싸우자.”

대선 주자부터 승복 선언해야
결정 후 갈등·대립 봉합 필요

광장 정치로 문제 해결 곤란
“개헌 등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촛불이 국민 명령’ 인식 위험
정치인 편가르기 방식은 잘못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 도로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백발이 성성한 참가자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지른 뒤 “탄핵 각하, 국회 해산” 구호를 외쳤다. 3시간여 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란 슬로건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탄핵 인용 결정을 주장하며 “조기 탄핵, 특검 연장”을 외쳤다. 두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은 정반대였지만 원치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입장은 같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이었던 이날 서울 도심은 탄핵 찬반 입장의 단체들이 총동원돼 시위를 벌이는 극한 대립의 장이 됐다. 27일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을 열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이 28일 만료되는 등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시점이 임박함에 따라 두 세력 간 대결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SUNDAY는 보수·진보 양 진영의 원로학자와 법조인 등 9명에게 심각한 국론 분열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해법과 ‘탄핵심판’ 이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 물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원로들은 ‘승복’을 핵심 키워드로 언급했다. 송복(80)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가 해방 이후 발전시켜 온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다. 헌재 결정에 대해 따르지 않겠다는 주장은 왕조시대 사람에 의한 지배(rule of man)로 돌아가겠다는 주장과 같다. 어느 쪽이든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탄핵심판 진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성명서 형식의 광고를 낸 이시윤(82) 전 헌법재판관도 승복을 언급했다. 그는 “헌재가 결정을 내린 뒤에는 당연히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거기에 불복하고 난동을 부린다면 문명의 후퇴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진보 성향 경제학자인 장상환(66) 경상대 명예교수도 “원치 않는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끌어내릴 수 방안이 없는 만큼 개헌 등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탄핵심판을 둘러싼 갈등의 해소방안으론 정치권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한 이가 많았다. 김종대(69) 전 헌법재판관은 “최소한 당사자들은 승복할 의무가 있다. 정치적 해결을 못해 사법적 해결을 선택해 놓고 국회에서 불복 얘기가 나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럴 거면 자신들이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어야 한다. 최소한 현직 국회의원과 피소추인들은 승복해야 한다. 정치가 나라를 망쳐서야 되겠느냐”고 강조했다. 하창우(63)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대선주자들이 앞장서 승복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촛불이든 태극기든 다 잠잠해지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대선주자들부터 무조건 승복을 선언해야 한다. 정국을 수습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원로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탄핵심판 선고 이후 격화될 대립상황이었다. 이영작(75) 서경대 석좌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정치인들이다. 4·19혁명 등 과거 국가적 혼란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은 오히려 침착했고 정치인들이 혼란을 부추겼다. 이번에도 탄핵심판이 인용되면 여당에서, 기각되면 야당에서 혁명을 일으키자고 외칠 것이다. 거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홍길(75) 전남대 명예교수는 “헌재 결정 전까진 ‘참고 견디자’는 정서가 있었지만 결정 이후엔 갈등이 커질 것이다. 양 세력 간 싸움이 격화될 텐데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의 심적 고통을 언론이 나누고 어루만져 준다면 갈등 양상이 극한에 이르진 않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갈등 완화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예외적인 ‘광장정치’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했지만 이런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장희(67)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법을 통한 개혁이 실효성을 갖게 하는 방안을 주문했다. 그는 “법치국가에서 혁명을 하지 않는 한 법을 통해 개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껏 법안을 만들어도 여의도에만 가면 물거품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촛불집회까지 이어졌다. 앞으로는 정치권이 나서지 않으면 국민이 서명해 법안을 발의하는 제도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에 모두 참석한 조성환(56)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정치인들의 각성을 주문했다. “촛불이 이뤄 낸 것도 많지만 ‘촛불이 국민의 명령이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촛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불의’로 보는 전체주의적 시각이다. 태극기집회 참석자는 국민이 아니라는 것인가.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무능과 부패에 대한 고발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치인들이 촛불을 성역으로 보고 편가르기 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정치권은 대의제의 헌법적 책임을 느끼고 시민들의 세력 대결에 기대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
 
 
박민제 기자, 나영인·조수영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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