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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인 더 룸 #14

나는, 나는 돼지다.
 
내게 주어진 것은 쓰다 버려진 것들.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려진 것들.
 
내가 있을 자리는 버려진 공간.
 
남자에게 이용당하는 육체.
 
영화가 끝나도 어두운 극장 안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고,
어둠과 더러워진 의자가 편하다고,
시오는 생각했다.
 
두 번째 영화가 시작했다. 갑자기 공기가 역하게 느껴져 시오는 잠시 숨 쉬는 것을 멈췄다. 시오가 앉아있는 이 성인영화관 스크린 속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사건이 또 한 번 벌어지고 있다. 스크린에 노출된 남자의 나신이 보이자 갑작스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질색할 것 같아 서둘러 일어나 객석을 더듬었다. 목이 턱턱 막혔다. 남자의 성기가 세게 목젖을 누르는 듯했다. 의자를 더듬는 내내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눈앞은 어두웠다.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딜 때, 좌석 아래에서 갑자기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스크린을 주시하던 몇몇은 놀란 듯 시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리번거리던 시오는 출구의 불빛이 흔들리며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벽에서 출구 쪽으로 발을 옮기려다 다리가 풀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문틈으로 조금씩 새어 들어오던 빛에 눈이 부셨다. 최근 자주 극장 전기에 문제가 생겨 범구가 상영관 내부 히터를 점검하러 들어오던 중이었다. 쓰러져있는 있는 시오를 발견하곤 놀라 황급히 달려왔다.
 
"괜찮아요?"
 
범구는 시오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범구의 팔이 닿자 놀란 듯 몸을 움츠렸다. 범구는 시오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경계심을 푼 듯 보이자 천천히 시오의 팔을 다시 잡았다. 시오를 잡은 팔에서 범구는 젖은 새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한쪽 팔로는 시오를 부축하고 한쪽 팔로는 매표소 문을 천천히 열었다. 놀란 것은 범구도 마찬가지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창백했던 시오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자 범구는 침착한 말투로 시오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마실 것 좀 가져올게요."
 
시오는 범구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매표소 안을 둘러보았다. 신문지를 서너 장 깔아놓을 만한 공간과 의자 두 개, 마감을 대충 했는지 벽돌이 서너 군데 튀어나와 있었고 대충 바른 벽의 페인트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제목은 알지 못하지만 자주 들었던 클래식이 매표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시오는 머리가 빙빙 돌았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범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매표구를 통해 내다보는 세상은, 숨쉬기가 더 힘들게 느껴졌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이렇게 말을 했지만, 새로 드라이클리닝을 한 아껴뒀던 코트를 차려입고 범구를 보러 온 자신이 한심했다. 하얀 코트 밑단이 바닥에 끌려 검게 먼지가 묻어있었다. 마법이 풀린 재 투성이 신데렐라. 매표소 안은 너무도 초라했다. 끝이 헤진 스케치북과 라디오가 나오는 시디플레이어와 작은 금고, 그리고 관람객을 체크하는 손때 묻은 장부가 두서없이 놓여있었다. 아니, 오히려 변한 것은 시오의 모습이 아니라 마법이 풀린 범구의 모습이다. 여기까지 온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괜히 왔네요. 오지 말라고 할 때, 얘기 들을걸."
 
"... 혹시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범구의 질문에 시오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범구와 가까운 거리여서 더 불편했다. 시오는 좁은 매표소의 공기가 버티기 힘들어 겨우 기운을 내 몸을 일으켰다. 차갑게 들렸을 법한 톤으로 침착하게 말을 뱉었다.
 
"가볼게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출구를 지나 밤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범구는 복면을 갈아 끼운 듯한 시오의 두 얼굴에 대해 생각했다. '단호하게 오지 말라고 얘기할 걸 그랬나.' 갑작스레 감정이 변한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출구를 멍하니 한참 바라보았다. 네모진 출구엔 마주친 적 없는 낯선 얼굴들만 바쁘게 지나쳤다.
 
며칠이 지나자 진눈깨비가 제법 처량하게 떨어졌다. 극장 계단과 매표소 앞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쥐 행렬처럼 젖은 발자국으로 어수선했다. 시오가 극장에서 사라진 지 보름 정도 됐다. 여전히 고목나무 같은 사람들은 헐벗은 육체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찾아들었고 범구는 며칠 끼니를 걸렀다. 범구의 표정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누군가가 범구의 얼굴을 봤다면 어떤 변화도 읽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범구의 행동은 어느 것에도 애착이 실려 있지 않았다. 도시부터 보다 철저하게 타인이 된 듯 익숙해질 듯한 감정은 여전히 헛돌았다. 낯선 얼굴뿐이다. 담배를 챙겨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범구는 쓰러져가는 건물과 지나치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다가 후- 산속의 맑은 공기인 듯 깊게 폐부로 연기를 빨아들였다 뱉는다. 범구는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좋아했다. 다시 담배를 물었을 때 차가운 물방울이 톡. 톡. 하고 머리와 어깨 위로 떨어진다. 물고 있던 담배 위에도 굵은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담배가 치익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떨어질 듯 기울어진 간판, 붉은 꽃더미 위에 앉아 다리를 벌린 여자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낡은 것들의 냄새가 낯설었다. 바쁘게 뛰어가던 젊은 남자가 멍하니 서있는 범구의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가 인사도 하지 않고 다시 뛰어간다. 한참 뛰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속에서 욱하고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젖은 담배를 그대로 던져버리고 다시, 극장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치웠던 계단 옆 쓰레기들이 눈에 거슬렸다. 평평하던 마음이 말라가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범구의 마음을 본인 스스로 잘 해석하지 못했다. 다시 잊고 멍하니 출구를 바라보았다.
 
'다 때려치워?......'
 
지금 시오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시오가 걷고 있는 다리 위엔 햇살이 가득했다. 오늘은 이어폰을 꽂지 않았다. 다리 반대편에 통통한 동물의 뒤태가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꼬리다. 뭐지? 강아지인가? '귀여워라' 이렇게 혼잣말을 하곤 천천히 동물 쪽으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하얀 새끼 돼지다. 시오가 쳐다보자 돼지는 시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왠지 슬퍼 보이는 돼지의 표정에 시오는 잠깐 갸우뚱거린다. 너무 작고 귀여워 손을 뻗어 품에 안았다. 돼지를 안자 두 손이 따뜻해졌다. 통통한 배가 푹신해 기분이 좋아졌고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다리 위에 올라와 있던 돼지는 갑자기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고 시오는 돼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털썩 주저앉았다. 눈을 깜박이자 주위가 컴컴해졌다. 다시 들린다. 미칠 듯 벗어나고 싶은 악몽. 꾸웩 꾸웩 꿱 꿱, 꾸웩 꾸웩 꿱 꿱, 돼지가 노래를 한다. 울타리 안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돼지가 울타리를 넘네. 어렸을 적 꿈에 나왔던 돼지들이 갑자기 주변으로 몰려와 시오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오가 우리 아기를 안았네! 시오가 돼지를 안았네! 하얀 새끼 돼지를 안았네!"
 
점점 커진 돼지는 갑자기 시오를 눕히곤 올라타 치마 밑으로 거칠게 손을 집어넣는다. 커다랗게 변한 돼지는 팔 한쪽이 없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칠 때 돼지는 귀가 터질 듯한 소리로 시오의 귀에 꽥꽥거렸고 갑자기 치마 밑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황홀감이 느껴져 몸이 부르르 떨렸다. 황홀감에 정신을 잃어 신음을 지르며 입이 벌어진 순간, 돼지의 얼굴이 범구의 얼굴로 갑작스레 돌변했다. 시오는 소리를 지르다 경기를 일으키며 잠에서 깼다.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아직 짙은 새벽이었다. 눈앞에서 돌변한 범구의 얼굴이 떠오르자 시오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극장과 매표소 남자... 돼지는 꿈속에 더 자주 나타났다.
 
'왜?'
 
혐오하면서도 혐오하는 것을 원했다. 남자의 몸에 구역질을 느끼면서도, 밤이 되면 스크린 속 정사를 상상하며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고 자위를 서너 번 해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위가 끝나고 나면, 클리토리스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차오르는 성욕보다 차라리 아픈 것을 받아들이는 쪽을 밤마다 시오는 선택했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눈을 천천히 몇 번 깜박이다 시오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시오는 창가에서 스민 빛 때문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벽돌로 마감한 볼품없는 화단에서 올라온 나무가 시오의 창가에 앙상했지만, 오늘은 새의 노랫소리가 제법 좋게 느껴졌다. 겨울엔 도통 보이지 않던 새들이 어디선가 하나둘씩 날아와 아침마다 노래했지만 이제야 들리기 시작한다. 간밤의 숙면으로 컨디션이 좋았다.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밥을 지었다. 빨리 일자리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외출해야지. 시장에도 가고 서점에도 들러야지. 그러다가 극장에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소리가 들리자 거실로 뛰어나갔다.
 
점심때쯤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 계단을 통통거리며 내려온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옷은 아주 가벼워져 있었다. 시오는 서점을 두어 시간 둘러봤지만, 선뜻 마음이 가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람을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걷다가, 창이 커다란 카페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꽤 오랫동안 카페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사람들은 무표정했고, 강물처럼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다시 카페를 나와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범구는 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담배는 늘었고 상영시간이 남아있어도 '내부 수리 중' 간판을 붙여놓고 극장 셔터를 내렸다. 범구에게 성인 극장은 커다란 관과 같다.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고 스스로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곳에 있으면 타인의 불만도 없었고 칭찬도 없었다. 교류하지 않았고 벗어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범구는 생각을 깊게 하려 하지 않았다. 매표소 안은 꽤 오래전 유행했던 대중가요가 출렁거렸고 아무런 감정 없이 범구는 가사를 흥얼거렸다. 음악이 페이드아웃 되자 디제이가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오늘 날씨는 왠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먼저 연락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시큰둥하게 멘트를 듣고 시계를 한번 본다. 네 시다. 담배를 피울까 생각했지만, 내려가기가 귀찮았다. 앉아있던 의자가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얼마 전에 손을 봤는데... 고칠까? 고민한다. 하지만. 귀찮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누가 또 오는구나. 귀찮다. 셔터를 내릴까. 무표정하게 출구를 내다보았다. 낯익은 얼굴이 다가온다.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여자다. 가면을 쓴 여자. 밝게 웃다가, 쓰러졌다가 쏜살같이 달아난 여자.
 
시오가 천천히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놀란 눈이 점점 커졌다. 범구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영화 시작하려면 30분 정도 남았는데, 어디 다녀오시겠어요?"
 
"오랜만... 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극장을 떠나던 시오의 표정과는 많이 달랐다. 환한 코트를 입고 표를 가져가던 모습처럼 친절함이 선명했다.
 
"그냥 똑같죠. 여기는."
 
시오는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았지만, 머리와는 다르게 몸이 극장으로 향했다. 범구를 쳐다보다가 입구 쪽으로 몸을 틀더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다시 범구 쪽으로 몸을 틀어 말을 이어갔다.
 
"저, 사실 영화에 별로 흥미 없어요."
 
"네?"
 
"그냥 왔어요. 극장에 그동안."
 
용기를 냈지만, 범구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아, 네."
 
시오는 매표구 쪽에 놓인 범구의 손가락을 본다. 어젯밤에 치마 속으로 들어왔던 돼지의 팔과 범구의 얼굴이 떠올라 말을 머뭇거렸다.
 
매표구로 범구가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날 죄송했어요.”
 
범구와 노닥거릴 생각으로 극장으로 온 것은 아니었지만, 침묵이 의미 없는 말을 하나둘씩 끄집어냈다.
 
"아까 서점에 갔었는데 책 사다 드릴 걸 그랬나 봐요. 서점 다녀오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저는... 여기서 한 15분 걸려요. 가까워요. 집까지."
 
범구는 시오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집까지 15분 걸린다고? 무슨 뜻일까.’
 
시오에게 살짝 기분이 상했던 범구는 알듯 모를 듯했지만, 한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며 대답했다.
 
"저는 15초 걸려요. 집까지."
 
"네? 진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시오, 범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시오는 범구의 손짓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극장이 집? 상영관에 이불을 펴놓고 자는 걸까, 아니면 매표소가 집이라는 뜻?'
 
극장 바깥에서 갑자기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시오와 범구는 서로 눈을 마주친 후 소리가 났던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있던 간판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인도에 고꾸라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고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범구와 시오는 둘 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인 듯 주변 상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떨어질 때 충격으로 간판 모서리가 심하게 구겨지긴 했지만, 벽을 긁은 자국 외엔 큰 이상은 없었다.
 
텅 빈 매표소에서는 라디오 디제이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말을 이어갔다.
 
"마음의 상념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가끔 도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 작은 골칫거리가 생겼다면, 그건 시간이 준 뜻밖의 선물일 수도 있어요."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범구와 시오는 떨어진 간판을 한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매표소로 돌아왔다. 범구는 간판 업체와 사다리 업체에 바쁘게 전화를 했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범구를 쳐다보니 시오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뒤돌아 서있다. 전화 통화가 끝난 범구는 뒤돌아 서 있는 시오를 발견한다. 매표구를 똑똑- 두드린다. 시오가 자신을 쳐다보자 범구는 밝은 표정으로 영화 표를 내밀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다른 건 없고... 일단 이거라도 받아요.”
 
시오는 도리도리 고개를 돌리고 상냥하게 얘기한다.
 
"오늘은 영화 안 볼래요."
 
그냥 보내기엔 섭섭했다.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잠깐 생각한다.
 
"음. 그럼 간판 정리할 건데 도와줄래요? 도와주시면 제가 밥 살게요."
 
시오는 순진한 소녀라도 된 듯 범구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는 자꾸 미소 지었다. 며칠을 괴롭히던 불안감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왠지 모를 허전함 대신 마음을 채운 설렘에 자꾸 미소가 자꾸 새어 나왔다.
 
 

 
작가 소개
조금 어린 나이의 결혼 그리고 빠른 나이의 이혼, 통신회사, 콜센터, 어학원 운영 중 경영악화로 빈털터리가 됨. 2년간 낙오자라는 패배감으로 자폐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무작정 세계 여행을 시작. 1년 정도 해외 여행 중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 성을 사회적, 문화적으로 조망하는 시와 수필을 SNS에 연재 중이다.
 
<아스팔트에 핀 꽃> 동인 시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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