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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의 시시각각] 위기의 여론조사, 100배 즐기기

홍승일 논설위원

홍승일 논설위원

2002년 12월 19일의 우리나라 16대 대통령 선거 때 나는 미국의 한 대학에 연수 중이었다. 선거 열흘쯤 전이던가. 한국인 방문학자 10여 명과의 송년모임에서 대선이 화제에 오른 김에 모의투표로 이어졌다. 결과는 노무현 당선이었다. 당시로는 의외의 결과였다. 나비효과인가. 이역만리의 사소한 민심이라 ‘글쎄…’ 했는데 결국 대이변은 일어나고 말았다.

어차피 힘든 선거예측, 목매지 말아야
지지율 방향 감잡고 현장정보로 보완

심심풀이 모의투표도 이따금 이런 신통력을 발휘하는데, 빅데이터와 인터넷·SNS 시대에 첨단 통계기법으로 무장한 여론조사 산업은 오히려 고전하고 있다. 도도한 고립주의의 물줄기, 영국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을 맞히지 못한 죄과를 글로벌 유명 리서치 회사들이 온통 뒤집어썼다. 우리 리서치 업계는 지난해 4·13 총선의 야당 압승을 예측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파리지앵-오주르디라는 언론사는 선거 예측이 하도 자주 틀려 대선 여론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여론을 측정하지 못하는 여론조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영세 리서치 업체가 많은 우리 업계는 저가 날림조사, 의뢰자 입맛에 맞추는 편파조사의 폐해가 심하다.

여론조사가 직업인 분석가와 학자들조차 “지지율 수치에 너무 목매지 말라”고 조언하기 시작했다. 대신 “느긋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여론조사를 참고하시라(신창운 덕성여대 교수)” “여론조사는 국민적 오락이 되어 버렸다(강준만 전북대 교수)”고 말한다. 잡지 기사의 ‘휴가 함께 떠나고 싶은 연예인’ 순위를 보고 “왜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뺐느냐”고 정색하지 않듯이 지지율을 표심의 향배를 가늠하는 참고자료 정도로 간주하라는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내리막인 건 분명한데 그 영향력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커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처럼 가볍지 않은 잠룡들을 대선후보 리스트에서 끌어낸 건 결국 지지율 성적표였다. 지지율 등락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치고 돈과 사람이 밀물 썰물처럼 들락날락한다. 한편 지지율 2%도 안 되는 후보들은 찬밥 신세다. 한 여당 후보 보좌관은 “지지율 리스트에서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일간지에 동정 기사 한 줄 내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그러니 선거철만 되면 죽기살기의 ‘여론조사 공화국’이 된다. 이런 나라는 우리 말고, 자유민주선거 전통이 짧은 대만 정도다.

무응답·거짓응답이 일상사인 여론조사의 속성상, ‘주저하는(Shy) 표심’이 큰 난관이다. 자유한국당 주최로 22일 열린 ‘샤이 보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기울어진 운동장’ 토론회는 10~15%의 ‘샤이 보수’가 빠진 목하 여론조사의 맹점(기울어진 운동장)을 부각하려고 했지만 은연중에 여론조사 집착증을 드러냈다. 최순실 사태로 꽁꽁 숨어버린 ‘샤이 보수’층이 양지로 나오게 되면 보수 지지율을 높여 절망적인 판세를 뒤흔들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일찍이 1992년 영국 총선 때, 꺼져가던 보수당 불씨를 되살린 ‘샤이 토리(Shy Tory)’처럼, 그리고 지난해 막판 승리의 숨은 원동력 ‘샤이 트럼프’ ‘샤이 브렉시트’처럼 ‘샤이 박근혜’ 지지자의 이적(異蹟)이 이번에 벌어질 수 있다는 소망이다. 물론 시간이 답이다. ‘샤이 보수’를 과대평가해 상심만 키우는 ‘희망 고문’으로 결판 날지, 아니면 보수 대반격의 디딤돌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50개 주(州)의 투표 결과를 모두 예측해 냄으로써 오바마 연임을 자신있게 예언한 네이트 실버라는 통계학자가 있다. 이런 비결 등을 담은 그의 베스트셀러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에는 ‘움직이는 과녁을 맞혀라’ ‘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예측을 거듭 수정하라’ ‘(고정된) 숫자에 속지 말라’ 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부지런한 리서치 요원들은 탁상의 수치에 안주하지 않고 선거운동 현장에 나가 지지율을 몸소 검증한다. 사실 실버 같은 여론조사의 달인도 이번 트럼프 당선을 맞히지 못했다니 보통 사람들은 분발이 필요하다. 

홍승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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