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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 “늦게 깨웠다고, 반찬 맛없다고 짜증내는 아이에게 화나요”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를 시작합니다. 분노, 질투, 외로움, 조바심… . 나를 스스로 괴롭히며 상처를 주는 내 마음속 몬스터들입니다.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를 통해 내 안의 몬스터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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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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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지 못한다 느껴 속상하겠지만아이는 엄마가 편해 무심코 한 행동솔직하게 대화 나누며 감정 털어내길  오늘도 또 아이에게 화를 냈다. 정연씨는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오늘도 아이는 늦게 일어났다. 깨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7시부터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더니 뒤늦게 일어나서 늦었다고 짜증을 낸다. 늦었지만 간단하게라도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밥을 차리려고 정연씨는 6시부터 일어났다. 그리고 여기서 일이 터졌다. 아이는 먹을 반찬이 없다고 투정했다. 매일매일 자기 좋아하는 것은 안 해준다며 심통을 부렸다. 노릇하게 구운 생선은 분명 맛날 텐데 아이는 생선살에 젓가락을 꽂고 헤집을 뿐 먹지는 않는다. 이미 나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릇에 담긴 밥은 그대로다. 정연씨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세게 내려놓고 아이의 젓가락도 뺏었다. “뭐 하는 거야. 그만 먹어. 너 같은 애는 먹을 자격도 없어.”

아이가 겁을 먹었다면 좀 나았을까? 그래서 주춤대며 잘못했다고 말했다면, 그랬다면 아이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고 퍼부었겠지. 정연씨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 놀란 것은 예상 밖의 아이의 반응이었다. 젓가락을 빼앗긴 아이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냉큼 방으로 가버렸다. 당황한 쪽은 정연씨였다. 어찌 해야 할까? 그저 멍하게 있을 뿐인데 아이는 한 발 앞서 나갔다. 방에서 나온 아이는 외투를 입고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쌩하니 현관으로 나갔다. 이게 뭐지? 정연씨는 당황했다. 현관문이 닫히고서야 이게 아니다 싶었다. 얼른 뛰어 나가며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외쳤다.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뭐? 그만 먹으라며. 학교나 가야지.” 승강기 문이 닫히고 아이는 사라졌다.
정연씨는 한참을 서있었다. 아랫집에서 누군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활짝 열린 현관문 앞에 헐렁한 티셔츠와 막 입는 바지만 걸치고 멍하니 서 있는 여자가 나라니. 마음이 휑했다. 화가 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창피하고, 억울하고, 울고 싶었다. 마음속엔 여러 목소리가 싸우고 있다. 화낼 만해서 낸 것이고 잘못한 건 없다는 목소리와 그때 좀 참지 화내서 뭐가 좋아졌냐는 목소리가 다퉜다. 자기 변호와 자기 비난이 뒤엉켰고 거기에 불안이 얹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정연씨는 왜 아이에게 화가 났을까? 아이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일어나서 깨우는 노력에도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애써 차린 밥상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지 못하면 화가 난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다. 상대를 위한 나의 노력을 상대가 하찮게 취급할 때 우리는 화가 난다. 이건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야. 그 느낌에 분노의 감정이 점화된다. 노력은 인정받으면 기쁨으로 돌아오지만 인정받지 못할 때는 분노의 땔감이 된다.

안타까운 점은 아이는 엄마를 무시할 의도는 없었다는 데 있다. 아이는 그저 더 자고 싶었고,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날 사랑하고 아껴주니 엄마 앞에선 함부로 행동했다. 조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를 무시한 것이 아니다. 긴장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는 매일 아침이 힘들다. 그때는 더 한심하게 행동한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우니 남을 생각할 여력은 없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선) 난데없는 엄마의 잔소리에 울컥해 화를 내며 학교로 떠났다. 자신의 짜증과 피곤함, 이런 불편한 감정을 엄마가 무시하고 하찮게 여긴다고 느끼니 화가 났다. 내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다. 막 올라오기 시작한 사춘기 호르몬도 아이를 부추겼을 것이다.

한집에 살며 서로를 잘 아는 듯해도, 심지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너무나 다른 생각을 한다.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종종 말한다. ‘사람하고 산다는 게 다 피곤한 일이야. 난 인간이 지긋지긋해.’ 물론 그래도 인간이 없으면 살기 어렵다. 괴로울 일도 없지만 즐겁지도 않다. 우리는 괴롭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기 위해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무미건조한 삶을 오래 견디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정연씨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자주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정연씨가 느끼기엔 그렇다. 원래 아이란 자기중심적이고, 아이에 대한 사랑은 내리사랑으로 보상받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말로 당장 올라오는 분노를 틀어막긴 어렵다. 아이는 내게 소중한 존재고, 내가 많은 것을 주는 존재다. 사랑하고 있기에 사랑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은데, 그런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다니 견디기 어렵다.

정연씨는 노력한다. 공짜로 존중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존중받으려고 노력한다. 힘들지만 일찍 일어나서 여러 번 좋은 말로 아이를 깨우고, 맛있는 반찬을 애써 만들어 아이 앞에 내놓는다. 나는 존중받고 싶어. 나도 노력할 테니 날 존중해줘. 정연씨는 좋은 사람이다. 늘 이렇게 노력하고 살았다. 노력도 적당히 하고, 기대도 적당히 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 자신의 몫은 다 해야 속이 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몫을 다 하려고 하면 할수록 화는 더 많이 난다는 데 있다.

아이가 컸다면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감정은 묻어두면 오해를 키운다. 엄마의 감정은 이렇다고, 네가 날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고 말해보자. 그러면 아이도 이야기할 것이다. 무시하려는 마음은 아니었다고. 아이의 마음에 더 귀 기울인다면 듣기 어려운 말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엄마가 사랑해서 좋은데 난 엄마가 바라는 대로 다 맞춰서 행동하긴 어려워요.’ 어른인 우리도 그렇듯 아이는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매사 긴장하며 엄마를 대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만들 능력은 있다. 매사 눈치 보는 아이로 키우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마음에서 사랑을 내려놓고 관계를 내 맘대로 끌고 가면 된다. 그것이 정말 바라는 것이라면 말이다.

정연씨는 잘 하고 있다. 화를 내지만 사랑도 주고 있다. 아이도 다 느끼고 있다. 엄마에게 불만도 갖겠지만 스며든 사랑이 자신을 키웠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화를 낼 수 있다.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은 화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화는 오래 간직할 감정은 아니다. 과거로 보내야 한다. 잊고 보내고 또 사랑을 주면 된다. 다만 무리하지 말고, 자기를 아끼면서 주는 편이 낫다. 아이는 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겠지만, 나는 나를 존중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존중은 남에게서 충분히 받을 수 없다. 내 배를 채우려면 내 손을 이용해 밥을 먹어야 하듯 존중도 결국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 삶이 쓸쓸한 이유의 대부분은 거기에 있다.  

글 서천석
정리=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서천석

 

1969년생.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마음의 병의 뿌리는 어린 시절에 있다’ 는 걸 깨닫고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가 됐다. 그림 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우리 아이 괜찮아요』 등 육아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서울신경 정신과 원장이자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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