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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김준영 특파원 말레이시아 르포] 강철 “한 북한 시민이 자연사” 기자회견 열어 모르쇠 작전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왼쪽 사진)가 20일 쿠알라룸푸르의 한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라작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오른쪽)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북한을 거짓 매도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AP=뉴시스, 로이터=뉴스1]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왼쪽 사진)가 20일 쿠알라룸푸르의 한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라작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오른쪽)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북한을 거짓 매도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AP=뉴시스, 로이터=뉴스1]

김정남 암살 사건을 둘러싸고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20일 정면 충돌했다. 지난 13일 사건 발생 이후 양측의 갈등은 강도를 더하는 형국이다. 자칫 수교관계까지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3시 쿠알라룸푸르 시내 북한 대사관 앞에 잔뜩 굳은 표정의 강철 북한 대사가 나타났다. 200여 명에 이르는 내외신 취재진을 향해 강 대사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조사를 믿을 수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사건 발생 7일이 지났지만 사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제한 강 대사는 숨진 인물이 자연사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자회견 중 김정남이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피살자가 ‘김철’이라는 이름의 북한 여권 소지자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 “만일 김철이란 이름의 북한 시민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면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것이니 말레이시아가 우리 국민의 살인 사건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억지 주장을 이어갔다.

전날 현지 경찰이 사건 발생 후 첫 기자회견을 열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북한을 배후로 지목한 데 대한 반발이다. 공항 폐쇄회로TV(CCTV) 등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강 대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되레 “거짓 주장” “불공정한 행위” 등 거친 표현을 써 가며 “누군가가 수사에 개입하고 있다. 수사가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나지브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경찰 수사는 객관적”이라며 북측 주장을 일축했다. 또 “북한을 음해할 이유가 없다. 우리 법 적용을 북한이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표현은 점잖았지만 북측의 억지에 대한 경고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이날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종일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항의 표시로 오전 외교부 청사로 강 대사를 불렀다. 지난 17일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강행과 시신 인도 거부를 트집 잡아 강 대사가 한밤중에 돌발 기자회견을 한 지 사흘 만이다. 면담을 마친 강 대사는 외교부 건물을 나설 때 취재진의 질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오후 회견’을 예고했다. 회견 때 언론에 배포한 성명서는 지난 17일과 달리 북한 문장이 찍힌 공식 노란색 A4 공문서를 사용했다. ‘공식적인 외교 행위’라는 의미다.

말레이시아 역시 이날 강철 대사를 초치한 데 이어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다.

북한이 ‘모르쇠’에 이어 ‘적반하장’식 반발을 하는 것은 이번 사건의 북한 배후설을 부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강 대사는 “출국한 용의자가 평양에 갔다는 보도가 나온다”는 기자 질문에 “같은 시간에 출국한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 사람만 문제시하느냐”며 직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배후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렸다.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정치적 혼란에 빠진 한국”이라며 “한국은 미국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체포된 이정철(47)은 경찰 진술에서 “암살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철이 사건 당일 용의자를 태우고 공항에 간 사실은 CCTV와 승용차 번호판 대조를 통해 확인됐다. 하지만 주요 용의자가 도주함에 따라 이정철과 북한 공작원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입증하는 수사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신경진·김준영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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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