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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성희롱을 막는 것은 좋은 주변인들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예민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다.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여 이긴 후 37세 나이에 로스쿨에 들어가 성희롱, 갑질 피해 전문 변호사가 된 여성이다. 변호사가 된 후에도 성희롱은 멈추지 않았단다. 악수하다가 손가락을 뻗어 손목 안쪽을 꼭 누르며 손을 놓지 않아 쳐다봤는데 그래도 바로 놓지 않고 씩 웃더니 겨우 놓는 유부남, 술에 취해 강제로 안고 입을 맞추려 하면서 ‘변호사님 너무 예쁘신 것 같아요. 같이 자고 싶어요’라는 법조계 선배 유부남, 여성 변호사를 회식 자리에 초대해 놓고는 ‘불렀는데, 괜찮죠?’하며 접대부를 부르는 남자 변호사… 수컷의 욕망이란 자기보호 본능을 압도하는 듯하다. 앞뒤 안 가리고 덤벼대는 좀비떼 같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성희롱 사건 처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 대부분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확률보다 그들의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 존중과 배려가 살아 있는 세상을 꿈꾼다면 좋은 주변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맞다. 본능적 충동이야 어느 사회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의 정도가 차이를 낳는다.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질색하며 나무라는 분위기만 조성돼도 가해자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반응의 즉각성이 중요하다. 개 키울 때도 똥을 엉뚱한 곳에 싸자마자 즉시 콧잔등을 때리며 “안 돼!”하고 호되게 혼내야 겨우 버릇을 고친다. 뭐, 그다지 아이큐가 높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구절도 있다. ‘내겐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순종적인 여직원이 되거나 되바라진 여직원이 되는 것. 일은 잘하는데 말을 안 듣는다는 평가를 듣고 다녔는데,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그걸 통해서 나는 내 마음 안에 똑똑한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이 있음을 알게 됐다. 더 정확히는 똑똑해서 쓸데없이 순종적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가오’를 욕망했다.’ 이 말이 어찌나 통쾌한지. 성희롱에 문제 제기를 했더니 인사부장이 무능한 사원으로 몰길래 ‘내가 다 이기고, 이걸로 책도 쓰고, 잘 먹고 잘사는 꼴을 보여줄 테다’라고 끊임없이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다 이루었다. 잘났다, 정말. 잘나서 멋지다. 이렇게 잘난 사람이 곳곳에 많아져서 사람을 보자기·가마니로 함부로 보지 못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한쪽만 편한 사회보다는 서로 불편한 사회가 낫다.

문유석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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