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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14. 사람 없는 세계

- 타마스 발리크즈키, 자리나 빔지, 최병관, 이진영

서울살이 십사 년간 나만의 작은 화원을 갖고 싶어 틈틈이 화분을 텃밭 삼아 재미로 식물을 키운다. 호박이랑 토마토도 심고 오이도 심고 길러서 요리도 해봤고 장미, 찔레꽃, 국화 등 온갖 꽃도 다 키워봤다. 이것은 은근히 신비롭고 신기한 체험이라 올해도 씨를 뿌리고 식물을 키운다는 것에 가슴이 설렌다. 어느덧 화분들이 놓인 곳에 싱그런 봄기운이 수군대는 듯하다. 이 세계는 사람들이 없는 세계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마저 없을 때의 화분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내가 없는 세계와 사람들이 없는 세계를 가끔 생각한다. 사람 없는 들판을 보면 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떠올린다. 디킨슨도 자신이 없는 세계를 떠올리며, 사후 영적 세계를 무척 많이 고민했던 걸로 안다. 은둔의 시인으로 죽어서 유명해진 디킨슨이 살아생전 원예사로 더 많이 알려졌음을 어제 알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식물의 왕국을 경애했다. 숲속에 매혹된 그녀는 야생화를 말려서 라틴명으로 세례를 주어 식물에 관한 책을 만들기도 했다. 30대부터 디킨슨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상당히 큰 집 들판을 돌아다니며 보냈다. 디킨슨의 많은 시들은 그녀의 특별한 정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다른 하늘이 있어
 
언제나 고요하고 맑지,
그리고 또 다른 햇빛이 있어,
비록 그곳에서는 어둠일지라도 말이야ㅡ
시든 숲은 걱정 말아, 오스틴,
침묵하는 들판도 걱정 말아ㅡ
여기 자그마한 숲이 있어
그 숲의 잎사귀는 늘 푸르르지ㅡ
여기 더 밝은 뜰이 있어ㅡ
그곳은 여느 때와 같은 서리는 없어ㅡ
시들지 않는 꽃들 속에서
난 그 해맑은 벌이 콧노래 부르는 걸 듣지
부디, 나의 남동생아,
나의 뜰로 들어오거라!

 
디킨슨의 이 시는 사람들이 있는 정원이다. 남동생이든 누군가든 사람을 불러 함께 하고픈 시들지 않는 꽃들로 가득한 들판이라니 상상만 해도 기쁘다. 신선한 쾌감에 잠길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들판은 오래 못 있는다. 우리는 사람과 어우러져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봄 냄새를 맡으며 타마스 발리크즈키에 대해 살피겠다.
 
나는 컴퓨터로 한 작품에 커다란 매력을 못 느끼는데, 그의 작품은 왜 이렇게 했을까 궁금증을 준다. 살펴보니 그는 수년 동안 컴퓨터에 대해 연구하고 작업해온 미술가 중 한 명이다. 오래전에 유행되었지만 그 깊이는 그의 작품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새로운 컴퓨터 미적 공간에서의 중요한 부분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는 사람을 찍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없는 사람들 이미지 같다. 그들이 웃고 있지만, 그 웃음만 물결처럼 번져올 뿐, 사진 속의 사람들은 이미 기억 속에 산다. 그러면서도 타마스 발리크즈키의 사진은 사실 풍경과 가상의 풍경이 오버랩 되어 환상적인 기분도 든다. 그는 카메라와 가상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했다. 정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는 세계의 중심이 된다. 그가 움직이면 그를 중심으로 모든 풍경이 변한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물건도 어느 공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리고 사진가 자리나 빔지도 그녀 마음의 극장인 기억을 표현했다.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사진 작품에서 정원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기억을 비춰보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정원들, 그 아이디어는 유럽의 문화에 대한 은유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정원이 있듯, 유럽은 유럽만의 전통적인 정원이 잘 발달되어 있다. 정원에 대한 첫 경험과 경치의 색, 촉감, 냄새에 의해 만들어지는 로맨스의 아이디어를 섞는데 진실과 허구의 경계선에서 타오르는 기억의 공간이다. 자리나 빔지의 기억을 이해하는데, 그녀가 디아스포라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이산의 백성'을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아스포라 (Diaspora)에 속한다. 우리나라 경우는 재일조선인, 조선족, 고려인, 이주노동자, 국외 입양자들을 말할 수 있겠다. 자리나 빔지는 우간다에 살게 된 인도인의 자손이다. 부친은 1920년대에 인도에서 우간다로 건너갔다. 1960년대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독립국가의 수립이 이뤄질 때 우간다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사정에 따라 이용당하거나 제외당하며 농락당하는 인생. 2중의 디아스포라로서의 자리나 빔지의 경험. 상처와 인내의 기억으로 얼룩졌으리라.
 
그 기억의 얼룩이 구체적인 사건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녀의 <사람들 없는 세상 (Zarina Bhimji's world without people)>을 보면 서늘하고 놀랍다. 내가 사라진 세상, 사람들이 사라진 세계가 어떨지 자극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덧없고, 슬픈 인생이다. 그렇다고 덧없다고만 탓하고 살 것인가? 하는 질문도 나는 본다. 이미지들마다 얼마 전까지, 혹은 오래전에 사람들이 살다간 흔적은 아프지만, 진정 이것이 사실이 될 것이므로 오래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드리운다.
 
사진가 최병관의 사진들도 사람들이 없는 세계다. 그러나 사진 속에는 사람이 없으나, 사진 너머에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사진 속에는 수많은 세월의 농축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연과 숨결을 나누는 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고요 속의 따스한 온기가 스며난다. 그리고 그가 다루는 사물이 대나무와 물이어서 인지, 조선 선비의 지조 있는 삶과 궁극의 지혜를 떠올리고 만다. 대나무에 맺힌 물방울. 그 미세한 흔들림이나 거기에 부는 바람까지도 느낄 수 있는데, 마치 사진으로 빚은 동양화 같다. 복잡하고 답답한 현대사회에서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은자의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 그 미세한 울림이 크고 그립게 다가갈 것이다.
 
또 한 명의 사진가 이진영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의 기억이 쌓이고 쌓인 오래된 얼룩이다. 그녀는 느린 시간 속에서 우연히 만난 사소한 것들의 흔적을 찾아 담고 있다. 얇고, 투명하고 젖은 기억들이 쌓인 틈새에서 이름을 갖지 않은 것들을 습판 인화술의 하나인 암브로타입의 재해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본문 작품 <앵프라맹스>는 마르셀 뒤샹이 만든 단어로 ‘초박의 아주 미세한 겹겹의 상태’를 뜻한다. 유리 언판 네거티브 스스로 여러 층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의 여러 개 투명한 아크릴판 사이의 원판을 끼워 겹쳐 보이는 수많은 이미지가 인간의 기억 같다. 그 흐릿함이 회화적으로, 보통 사진의 매끄러움 대신에 두툼한 질감이 회화의 매혹을 준다. 사람의 세계는 결국 기억, 추억이 남고 그리고 예술은 기록이 남는다. 그 기록은 무슨 빛깔일까? 문득 오가타 가메노스케의 시 <白에 대하여>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짧은 시라서. 시의 뜻이 무엇일까? 자꾸 생각하게 만들어서.

솔밭 속에는 물고기 뼈가 떨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세 번이나 본 적이 있다)

 
결국은 모든 살들은 바람이 먹어치우든, 흩어져 가든 하얗게 되어버리니, 포기할 건 포기하고 미니멀리스트로 살라는 자기계발적인 지혜로 나는 읽어본다. 사진과 시는 단 한 순간의 이미지를 잡아챈다는 면에서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 사진과 시와 닮고 싶은 글들로 가득한 페이스북 등, SNS의 공간이 저마다의 솔밭. 혹은 정원과 뜰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써놓은 편지를 닮았다. 그 편지를 읽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SNS에서 멀어질 줄도 알아야 자기 성장을 한다. 그 뜰에서 매일 정신이 팔려 있으면 정원사도 못 된다. 사람 없는 자기만의 고독한 세계를 즐겨야 한다. 진짜 정원은 고요 속에서 타오르기 때문이다.
작가소개
시인. 사진가. 미대 디자인과 수학, 국문학과와 디자인대학원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로 다양한 매니아층이 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냈다.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의 미술에서 읽은 시』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 2권 『사랑은 시처럼 온다』 등
동시집으로 초등 교과서에 동시가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 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와
역서로는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Love That Dog』 등이 있다.
 
사진가로 사진가로는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삶의 관점을 보여준 첫 전시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전 이래 사과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성찰'을 펼쳐,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 4명중에 선정된 바 있다. 4번째 사진전 <사과여행>사진집은 일본 교토 게이분샤 서점과 갤러리에 채택되어 선보이고 있다
 
최근 <사과, 날다- 사과여행 #2>전을 열고, 사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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