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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vs 금융투자업계 ‘신탁업’ 놓고 신경전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좌),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우)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좌),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우)

“은행에 비해 금융투자업계는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6일 기자간담회)
 
“운동장이 다른 것이지 기울어진 게 아니다. ‘종합운동장’에서 경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하영구 은행연합회장, 20일 기자간담회)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주간의 시차를 두고 양측을 대표하는 협회의 회장이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핵심은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신탁업법이다. 금융위원회 등은 10월까지 신탁업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최근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신탁(信託, trust)’은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고객이 자신의 특정한 재산을 맡기면 신탁회사가 일정 기간 운용ㆍ관리해주는 서비스다. 저금리ㆍ고령화 시대에 종합 자산관리를 책임질 주역으로 신탁이 떠오르면서 자산가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9월 말 481조원던 시장규모가 3년 새 708조원으로 불어났다.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는 739조원까지 늘었다.
 
지금 시장은 은행이 절반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348조97억원(49%)이다. 이어 증권사가 197조1791억원(28%), 부동산 신탁회사 154조6278억원(22%) 등 순이다. 국내 신탁업은 ‘자본시장법’의 규율을 받고 있다. 2009년 증권거래법ㆍ선물거래법ㆍ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ㆍ신탁업법 등이 ‘통합 자본시장법’으로 묶이면서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선 “진정한 의미의 신탁업 발전이 더디다”는 게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김진홍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신탁이 ‘신탁스럽게’ 운용돼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고령화와 같은 사회ㆍ경제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신탁의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탁업법을 분리해 제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신탁업법이 제정되면 최근 인기를 끈 케이블 드라마 ‘도깨비’의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 분)은 딴마음을 품는 이모에 시달리며 궁핍한 생활을 안 해도 된다. 드라마에서 이모는 지은탁의 엄마가 남겨 놓은 보험금을 내놓으라고 지은탁을 구박한다. 현재 사망보험금은 상속인이 미성년자일 경우 법정대리인이 관리를 맡는다. 

그런데 새 신탁업법에 따라 지은탁 엄마가 ‘딸이 25세가 될 때까지 A보험사가 보험금을 관리하며 수익을 내 매달 200만원을 딸에게 생활비로 지급하고, 25세가 되면 남은 보험금을 모두 주도록 한다’고 신탁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걸 가능하게 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이 올해 추진하는 5대 중점 금융개혁과제의 하나인 ‘신탁업 활성화’다.이 과정에서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는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은행권은 “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로 가야 한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겸업주의는 금융회사 간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하영구 회장은 20일 “신탁업법 제정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 지지 않기 위해서는 겸업주의가 필요하다”며 “겸업주의를 하면 금융사의 대형화가 쉬워지고 고객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저금리로 은행의 주 수익원인 예대마진이 줄어든 터라 은행으로선 겸업주의를 통해 새로운 수익 발굴이 절실한 사정도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하 회장이 이참에 “불특정금전신탁을 부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특정금전신탁은 금융사가 여러 고객으로부터 돈을 모아 운용한 뒤 수익을 되돌려 주는 실적배당상품이다. 운용만 놓고 보면 펀드와 유사하다. 그런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2004년 폐지됐다.
 
금융투자업계는 신탁업법 제정을 핑계로 자본을 앞세운 은행이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황영기 회장은 6일 간담회에서 “증권사가 예금 받겠다고 하지 않듯이 은행도 자산운용업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간담회 사흘 뒤 금융투자협회는 '국내 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은 세계 최저'라는 자료를 냈다. 

황 회장은 “국내에서 금융의 골드만삭스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균형잡힌 운동장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증권사에 기업 지급결제를 허용해 주는 등 불합리한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홍 금융위 과장은 “신탁업법을 두고 양측이 서로의 유ㆍ불리만 따지고 있다”며 “신탁의 기본 취지를 살리면서 업권의 고른 이해가 반영되도록 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지금 갈등이) 금융의 전업주의냐, 겸업주의냐의 문제일 텐데 근본적인 고민 없이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어떤 방향이 좋을지 큰 틀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애란ㆍ고란ㆍ심새롬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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