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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속물스러움의 밑바닥 후벼 파 … 늘 깜짝 놀래키는 그, 홍상수

영화평론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오동진

배우 김민희의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은 홍상수 감독이라는 ‘영화 세계’가 뒷받침한 결과다. 배우가 영화의 꽃이라면 감독은 꽃을 피우는 토양, 꽃을 키우는 원예사다. 홍상수의 작품 세계를 영화평론가 오동진(사진)씨가 짚었다.


홍상수는 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홍상수 같은 ‘마에스트로’급 작가주의 감독에게 ‘재주’라는 말은 다소 어폐가 있어 보이지만 뭐, 말인즉슨 그렇다는 얘기다. 돌이켜 보자. 1996년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어땠던가.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한국영화에도 이런 기형적(?)일만큼 일탈(逸脫)스러운 영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며 놀라워했다. 홍상수는 이후에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향성을 엿보이는, 이른바 ‘코리안 뉴 시네마’의 대표격 작품들을 쏟아 냈다. 그것도 끊이지 않고.

작품 외적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기린아’적인 공적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장편영화 19편을 만들어 오면서 채택했던 독립영화적 방식은 상업영화에 늘 경종을 울려 왔다. 그는 놀라우리만큼 ‘싸게(편당 8000~9000만원)’ 찍는다. 무엇보다 제작의 속도(그는 1년에 두 편을 찍을 때가 많다)가 너무나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지고 영화적으로 진화한다. 그러니 어찌 그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홍상수 감독의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한 장면. [중앙포토]

홍상수 감독의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한 장면. [중앙포토]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가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기이하게 현실적인 영화 제목들이 그렇다. 예컨대 ‘강원도의 힘’에서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유의 언덕’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등등까지. 그의 영화들을 일람하고 있으면 이상한 제목들의 나열이라고 여기면서도 곰곰히 들여다 보면 꽤나 주옥 같은 언어의 마술들이 펼쳐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홍상수는 늘 일상 속에서 조용한 파격을 일으켜 왔던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우리가 대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현실의 부조리함과 위악스러움, 사람들이 이중 삼중으로 얽히는 관계와 거기에 따르는 허위로 가득 차고 속물스러운 이야기들을 보란 듯이 그려 나간다. 홍상수 영화를 사람들은 선뜻 좋아 하지 못한다. 그의 영화에 수십만 수백만의 관객이 몰리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는 그 누구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못한다. 폄훼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홍상수만큼 우리들 자신의 저열한 의식 밑바닥을 후벼 팔 수 있는 감독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위한 순교자인 셈이다. 한 마디로 홍상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점을 안다. 한국의 관객들이 소수인 척, 마니아의 형태로 지난 시절 오랜 기간 홍상수와 그의 영화를 존경하고 사랑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은 놀랍게도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홍상수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탄 김민희의 수상 소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해할 것 없다. 그와 그녀가,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 마냥 ‘어울리지 않는’ 바람과 혼외정사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아프게 했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던져 줬다 한들 홍상수를 향한 ‘존경’과 ‘사랑’은 김민희가 독점하는 수사(修辭)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작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중앙포토]

2016년 작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중앙포토]

홍상수는 요즘 부쩍 ‘자기 얘기’를 한다. 그건 그의 영화의 오랜 특징이기도 하다.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관심있는 것 외에 그가 영화로 말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여러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것과 차이가 없음을 강조(혹은 강변)하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이번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여배우 얘기다. 둘 다 최근 그가 경험했던 얘기처럼 느껴진다. 매우 사적인 경험과 공간을 그는 영화를 통해 공유함으로써 그런 사건들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임을 보여 주려 애쓴다. 그의 특수(特殊)는 이상하게도 영화화만 되면 보편(普遍)이 된다. 특수가 보편이 되면 보통 그 안에서 벌어진 잘못은 용서가 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영화를 통해 자기 얘기를 하거나 혹은 해왔던 것은 스스로 용서받고 구원받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역설적으로 홍상수만큼 ‘정치적’ 영화를 찍는 감독도 없다. 그는 지난 21년간 19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단 한 번도 정치를 논한 적이 없다. 그가 정치를 몰라서일까. 그보다는 정치란 논할 가치가 없다는 식의, 철저하게 탈정치적 사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를 싹 다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정치가 수준 이하임을 고발하고 비판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고 하면 그의 영화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이번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국내에서는 아직 공개되기 전이다. 이 영화로 과연 그는 면죄부를 받을까. 김민희는 또 어떨까. 아마도 전혀 상관없을 것이다. 관객도 그럴 것이고 특히 홍상수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홍상수는 홍상수이고 김민희는 김민희이기 때문이다. 이건 다음 홍상수 영화의 제목으로 쓰이면 좋을 말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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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