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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이봐요 트럼프, 나사 조이는 일자리만 늘릴 건가요

1936년 개봉한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을 합성했다. 트럼프는 미국 밖으로 나간 일자리를 되찾겠다고 했지만 미국 밖으로 나간 일자리는 ‘모던 타임즈’에서 나사만 조이던 주인공의 일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것들이다.

1936년 개봉한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을 합성했다. 트럼프는 미국 밖으로 나간 일자리를 되찾겠다고 했지만 미국 밖으로 나간 일자리는 ‘모던 타임즈’에서 나사만 조이던 주인공의 일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것들이다.

“신이 창조한 이래 가장 위대한 일자리 창출자가 될 것이다(I will be the greatest jobs producer God ever created).”

“10년 내 일자리 2500만 개 만들겠다”
자동차 빅3 불러 공장 늘려라 압박

직업훈련·교육시스템 투자는 뒷전
단순조립 위주 저임금 노동만 늘어

포퓰리즘이 빚어낸 일자리 집착증
FT “부가가치 낮은 일은 오래 못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이후 연 첫 기자회견에서 10년 내 25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가 정조준하고 있는 일자리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자동차 제조업이다.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빅3’(포드·GM·피아트크라이슬러) 대표들을 백악관에 불러들여 미국에 공장을 더 지으라고 압박했다. 미국 대통령이 빅3 대표를 함께 만난 것은 2011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비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회동한 이후 처음이다.
취임 후 그의 적극적인 행보는 인상적이다. 영국의 산업전문지 머시너리(Machinery)는 “트럼프 대통령이 140자의 트위터로 기업의 리쇼어링을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열린 북미 최대 규모 자동차 전시회인 ‘시카고 오토쇼’의 화두는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도요타자동차 행사장 부스에는 ‘나는 미국의 도요타’ ‘미국에서 만드는 도요타자동차는 총 2500만 대’ 등의 홍보문구 일색”이라고 전했다. 닛산도 픽업트럭 ‘타이탄’ 발표회장에서 ‘아메리칸 타이탄’ 영상을 내보냈다. 영상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하고 미시간에서 시험했으며 미시시피에서 만든다”는 등 미국 6개 주의 이름이 나열될 뿐 차량 성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스무 살 임시직 레지나 엘시아의 비극
트럼프가 이런 식으로 한 달 만에 얻어 낸 일자리는 과연 좋을 일자리일까?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제조업 부흥의 이면을 집중 조명하며 앨라배마의 자동차 부품업체 아진USA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일하다 사망한 근로자 레지나 엘시아(20)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진USA는 현대·기아차 현지 공장에 프레임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다. 앨라배마 체임버카운티의 비상장기업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회사였다. 아진 공장은 쇠퇴하던 섬유산업을 대신해 세금 감면 등을 받아 세워졌다. 체임버카운티의 개발청 책임자인 브이 그레이에 따르면 아진USA의 유치는 섬유산업 침체로 쇠락하던 지역 경제를 활성화했고, 실업률도 2009년 19.4%에서 지난해 5.5%로 대폭 낮추는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결혼을 앞둔 엘시아는 이 공장에 취업했다. 새 차를 구입하고 약혼자와 살 집도 월세로 마련했다. 하지만 골라 놓은 4000달러 웨딩드레스는 결국 입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센서 오작동으로 장비 틈새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아진USA 공장의 작업환경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엘시아는 시간당 8.5달러를 받는 임시직이었다. 실제 소속은 아진USA가 아니라 ATS라는 인력 제공업체(파견업체)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아진USA는 한국 아진산업의 미국 현지 법인으로 자동차 부품과 의장, 차체 부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아진USA 공장에서 일하는 800여 명의 근로자 중 250명은 용역업체인 ATS와 조이너스 소속이다.

지난해 12월 OSHA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아진USA와 인력 파견업체 ATS·조이너스에 관리 의무이행 소홀 등을 이유로 256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전원이 켜진 상태에서 근로자가 자동화기기에 접근하는 것을 방치하는 등 23가지 안전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2016년에만 12건의 신체 절단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사망사고의 최종 책임은 생산 목표치를 너무 높게 설정한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에 있다고 밝혔다. 근로자는 주당 6~7일을 일해야 할 만큼 높은 생산 목표를 요구받았으며 목표 완수를 위해 납품업체들은 작업장 안전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엘시아가 사고당하기 약 1년 전, OSHA의 미국 노동부 부책임자(Assistant US Labor Secretary)였던 데이비드 마이클 박사는 2015년 한국을 방문해 현대·기아차의 임직원에게 부품 제조업체의 (작업)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FT 인터뷰에서 “공장 일자리는 ▶저임금 ▶위험한 작업환경 ▶임시직(temporary) 등 방글라데시 (국가 등에서 발생하는) 공급망(supply-chain) 문제와 다르지 않다”며 원청업체에서 가하는 강한 압력이 하청회사 근로자의 사고 발생을 높인다고 말했다.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시대 자동차 공장의 회귀는 포디즘(일관된 작업 과정으로 노동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편해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체제)의 귀환일 뿐”이라고 전했다. 포디즘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컨베이어벨트 위의 생산라인, 몰려오는 작업 대상, 노동자는 나사를 조이는 단순 공정에 점점 피폐해진다.
일자리 전망도 밝지 않다. 미국 비영리기관인 리쇼어링이니셔티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2015년 미국으로 가장 많이 복귀한 국가 1, 2위는 중국(2만7694개)·독일(2만6995개)이다. 리쇼어링이니셔티브는 “미국에 고급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직업교육과 더불어 엔지니어와 기술 전문가들을 길러 내는 교육시스템이 우선 갖춰져야 한다”며 “현재 독일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은 그러한 수준에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단순조립 위주의 저임금 일자리와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의 파급효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FT의 수석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의 표현에 따르면 트럼프의 제조업 일자리는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아 생긴 단편적인 보호주의의 결합”이다. 오늘날 제조업에서 커다란 부가가치를 낳는 부분은 디자인과 공급망 관리, 정보기술(IT) 서비스 등이다. 중국·멕시코 등으로 이전했던 제조업 일자리는 상당 부분 최종 조립으로 부가가치가 낮다. 국제과학·기술정책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저부가가치 일자리가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며 “선진국에 적합한 제조업 일자리는 과거 스타일의 조립 공정이 아니라 기술 혁신의 핵심인 연구개발(R&D)과 결합된 제조업 일자리”라고 말했다. 리쇼어링의 좋은 예는 중국계 전기차 제조업체 패러데이퓨처다. 2014년 제조공장을 네바다주에 건설하기로 했다. 패러데이퓨처는 10억 달러가 들어가는 대규모 제조공장 건설을 위해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네바다·조지아·루이지애나주로부터 유치조건(세금 감면 혜택 등의 인센티브)을 받아 검토를 해 왔다. 저렴한 인건비와 넓은 시장을 놔두고 중국계 자본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패러데이퓨처는 “미국의 풍부한 전기차 소비시장과 함께 자동화기술 등 생산 경쟁력이 투자 결정의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자동화가 좋은 일자리 쓸모없게 만들 것”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자문위원을 지낸 리처드 볼드윈은 “21세기의 현실(세계화와 기술 발전)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일자리정책 방향을 ‘일자리(고용)’보다는 직업 훈련 같은 지원을 통한 ‘근로자 보호’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뉴욕 호텔 청소를 과테말라에 앉아 있는 노동자가 원격 조종하는 로봇이 담당할 수 있다”며 고급 일자리도 임금이 낮은 외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제2차 세계화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팩토리(자동화와 빅데이터 분석을 접목한 지능형 생산공장)를 강조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사에서 “경제적 혼란의 다음 물결은 해외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며 “수그러들지 않는 자동화의 속도가 다수의 좋은 일자리를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남겨진 과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동차 제조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정치주간지 더 네이션은 “트럼프는 일자리보다는 포퓰리즘 때문에 제조업 일자리에 집착한다”며 “자동차업계가 쇠퇴할수록 건재하고 강한 미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것”이라고 전했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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