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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사즉시공(私卽是公) 공즉시사(公卽是私) 디지털 시대

흔히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 유머처럼 0과 4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公(공)과 私(개인)를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갈수록 공과 사의 구분이 혼란스러운 것은 현대인들이 조상들에 비해 더 탐욕스럽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공과 사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소유의 종말(Age of access)』에서 이런 예를 하나 들었다. 북미 최대의 쇼핑몰인 캐나다의 웨스턴 에드먼턴몰. 축구장 100개보다 넓은 공간에 세계 최대 실내 놀이시설공원, 실내 해양공원이 있고 800개의 상점, 11개의 백화점, 110개의 레스토랑, 예배당, 나이트클럽, 영화관 등이 들어가 있다.

이 쇼핑몰의 광장에는 가로수와 보도, 벤치도 있는데 잠깐, 이 광장에 서 있다면 그것은 공유지에 서 있는 것일까? 사유지에 서 있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사유지이지만 이 광장은 공유지처럼 쓰이고 있다. 쇼핑몰 주인은 언제든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 땅에서 나가라고 할 권리가 있다.

다른 예. 아파트 주차장에 그어진 차선은 사유지에 임의로 그은 선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도로교통법상의 공공 도로 차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인식한다. 심지어 대형 아파트 단지에는 횡단보도도 있고 신호등도 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런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BYOD(Bring Your Own Device)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휴대전화로 거래처와 연락도 하고 업무도 보는데, 그 휴대전화는 본인이 돈을 주고 산 것이다. 회사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 직원들에게 휴대전화를 하나씩 사준다고 해도 업무용으로만 사용하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면 휴대전화를 2개 들고 다녀야 한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과 통신은 완전히 서로 다른 영역이었다. 방송은 1대 다수의 일방향 서비스로서 공공의 영역이었다. 전화는 일대일의 양방향 서비스로 개인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가지가 섞여 있다.

TV를 보며 채팅을 하는가 하면, 휴대전화로 전 세계의 친구들에게 방송을 할 수도 있다. 가끔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 두 사람이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당장 “사적인 대화는 둘이 딴 방에서 해!”라는 핀잔을 듣는다. 단체 채팅방은 공적 장소인가? 사적 장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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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군중은 서로 아무 관계없이 무작위로 모인 과거의 군중(群衆)과 다르다. 서로 연결된, 말을 새로 만들자면 결중(結衆)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서로 모르는 얼굴들이 촛불시위 광장에 모여 있다고 해도 이들은 카카오톡·페이스북·커뮤니티 등으로 연결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시위를 단 한 건의 폭력행위 입건자도 없이 깨끗하게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지피셜(知+official)이라는 말이 있는데 ‘지인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이라는 뜻이다. 지인은 사적인 사람이다. 오피셜은 공식적인 것으로 공적인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묶였다.

‘엄친아’ 역시 엄마 친구의 아들이니 사적인 관계의 사람이지만 이미 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진 공적인 인물인 셈이다.

지피셜은 ‘카더라’ 통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카더라’에 비해 “아는 사람이 알려줬으니 더 믿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사적인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공적인 메시지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디지털 세상이 아무리 연결되고 융합돼 간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그때는 사달이 난다. “친한 사이에 연설문 정도 미리 보여줄 수 있고 교정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나랏일 하면서 기업 오너의 개인적인 부탁 좀 들어준 것”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잘 모른다. 심지어 적반하장격으로 ‘민주주의’를 주창하기도 한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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