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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지문으로 아이 공부법 알려드려요"…학부모들 솔깃

초등 3학년, 유치원생인 두 딸을 둔 박지영(40ㆍ서울 옥수동)은 지난해 말 사설 학습심리상담업체에 예약했다. 열 손가락 끝의 지문(指紋)으로 소질과 적성을 파악해 진로와 학습법을 컨설팅한다는‘지문적성검사’를 신청한 것이다. 박씨는 “1인당 10만원이라는 말에 망설였지만, ‘도움될 것’이라는 엄마들의 말에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문 패턴으로 지능 파악”…진로, 학교, 사교육까지 추천
학계 “과학적 근거 없어” vs 업체들 “충분한 데이터 축척”
진로 전문가 “선천적 재능 보다 환경ㆍ교육 중요, 맹신 금물”

업체 직원이 두 딸의 열 손가락 지문과 손금을 노트북에 연결된 장치로 스캔해간 뒤 열흘 만에‘상담사’가 방문했다. 10여장의 평가서를 펼쳐놓고 상담을 시작됐다. 상담사는 초3 첫째에 대해“10가지 다중지능 중 언어 지능은 탁월하고 수리 지능은 낮은 편”“분위기를 많이 타는 모범생 타입이니 자사고, 외고 같은‘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둘째에 대해선“공간 지능이 뛰어나고 고집이 센 예술가 타입이어서 미술, 특히 조형에 관심을 둬야한다”며 강남의 몇몇 미술학원을 알려줬다. 40여분의 상담은 자녀 성향에 맞는 진로와 공부법, 관련 학원 등을 설명하며 끝났다. 박씨는 “워낙 상세해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생겼지만, 지문만 보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건지 의심도 들었다”고 말했다.

10여년 전부터 국내에 등장했던 지문적성검사가 유치원생, 초ㆍ중ㆍ고 학부모는 물론 취업준비생(취준생)에게 파고들고 있다. 초기 5~6곳에 그쳤던 사설업체가 현재 30여곳으로 늘었다. 개인 상담의 경우 간단한 검사는 1~3만원, 구체적인 성향과 진로를 컨설팅한다는 고급 검사는 8만~13만원 선에 성업 중이다. 각종 채용ㆍ취업상담회, 건설업체의 아파트 분양 홍보관에선 무료 체험 행사, 각종 평생교육원에선 관련 강좌도 진행된다.

검사료가 가장 비싼 건 서울 강남, 목동 등 ‘교육특구’ 학부모 사이에 유행하는 형태다. 자녀의 적성과 함께 중ㆍ고교, 대학 진학 방향, 공부법, 사교육까지 추천하는 식이다. 학부모 커뮤니티 사이트엔 “단체로 받아 할인을 받자” 식의 제안글도 종종 오른다. 사립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모(38)씨는“5명이 함께 신청하니 1인당 2만원 깎아 8만원에 받았다. 대신‘검사 결과를 자녀와 비교하면 도움된다’는 말에 엄마들도 받았다”고 밝혔다. 학부모 이모(35)씨는 “검사기로 지문과 손바닥만 대면 끝이라 간편했다, 혈액형ㆍ사주 보다 훨씬 설명이 자세해 재미 있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열 손가락 끝 융선의 유형 등을 통해 지능ㆍ재능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태아가 13~19주 무렵 형성되는 지문 배열은 유전자로 인해 결정된다’(A유전자적성연구소)‘심리학과 통계학을 토대로 한 과학적 검사’(B다중지능연구원)라는 설명이다. C연구원의 이모 원장은“태아의 지문 형성과 뇌의 발달 시기가 일치한다. 지문엔 태아 때 뇌 발달과 관련이 깊어 패턴을 분석하면 재능 판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계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는 물론 해외 학계에서도 지문과 소질ㆍ적성의 관계를 다룬 논문이 공인된 학회의 학술지에 게재된 걸 본 적 없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공인된 다양한 적성검사 중 지문을 이용한 방식은 전무하다”고 밝혔다. 박종연 한국중독상담연구소장(상담학 박사)도 “이런 류의 검사가 신뢰성을 인정 받으려면 10년~20년 지난 뒤 검사 당시 결과가 맞는 지 확인해야 하나, 지문적성검사는 아직 ‘검사’로 부를 만큼 데이터 축적과 통계화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업체들은 학계가 자신들의 성과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0여년전부터 이를 도입한 강남의 한 사설연구원 원장은 “업체에 따라 다르겠으나 우리는 지금까지 3만여명을 검사했다. 400여개 유형으로 분류할만큼 데이터를 모아 발전시켰는데도 학자들은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공교육에선 영유아, 초등생 단계의 적성ㆍ심리검사가 활발하지 않다. 어릴수록 구체적인 재능·적성을 파악하는 게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남미숙 서울 금북초 교장(교육학 박사)은 “초등학생이나 취학전 아동은 향후 변화 가능성이 커 신중해야 한다. 호기심 차원이라면 모를까 성격·적성이 결정된 것처럼 받아들여서 곤란하다”고 말했다.

중고생 대상 적성검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임언 선임연구위원도 “일란성 쌍둥이도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적성ㆍ재능은 선천적인 면보다 환경ㆍ교육에 의해 좌우되는 면이 크다”며 “오히려 선천적인 재능 만을 강조해 특정 방향으로 기르면 자녀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강남 등엔 취학전 아동에 대한 영재성 검사,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검사 등도 유행한다. 곽금주 교수는 “남들보다 빨리 아이에게 준비하게 하고 싶다는 조급함에 각종 검사에 의존하는 ‘검사 만능주의’가 퍼지고 있다”며 “하지만 조급함을 버리고 자녀 스스로 재능을 발견할 수 있게 차분히 관찰하며 돕는 게 바람직한 자세”라고 조언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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