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환
중앙SUNDAY 차장
문제는 여야가 타협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입법절벽’의 현실이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여야가 맞서는 쟁점 법안은 180석(60%) 이상을 확보해야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국회 의석 분포상 여야 어디든 정권을 잡는다 해도 국정 철학을 녹인 핵심 법안은 혼자 힘만으로 통과시키기 어려운 구조다. 야당이 다음 대통령을 흥하게는 못해도, 예를 들어 총리 임명에서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일찌감치 야당 될 각오를 다졌는지 새누리당 일각에선 “우리도 대정부질문 때 기존 야당처럼 ‘기승전-사퇴하세요’ 하면 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선에서 이겨도 이렇게 만만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옵션으로 상대 당에서 의원을 빼내는 인위적 정계 개편이 있긴 한데 극렬한 반발을 불러 정권 초부터 국정이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 아니면 입법 때마다 여론전을 벌이는 건데 의회민주주의의 실격을 자임하는 것이고 너무 소모적이다. 밧줄 양쪽 끝에 매인 염소들이 눈앞의 건초를 좇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지는 우화가 현실 정치에선 국정 마비이고 입법 공회전으로 나타날 텐데 정신이 아뜩해진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대선주자들은 맞춤형 미래 산업 공약들을 다듬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금융업의 미래 먹거리인 ‘핀테크(금융+기술)’ 관련 법안은 지난해 여야가 맞서면서 한 건도 입법하지 못했다. 이렇게 입법절벽이 피부로 와 닿는 시대인데 정말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용환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