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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지레 겁먹을 이유 없다, 문제는 관리

금융 리포트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지는 제법 오래됐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2년, 2013년에만 해도 3~4%대에 머물렀으나 2014년 하반기 이후 10%를 상회하고 있다. 게다가 2015년 하반기 이후로는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 예급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의 증가세도 한층 확대되고 있다.

부채 증가율 2014년 이후 10%대
주택경기 호황으로 집단대출 늘고
내수 나빠 사업자금용 대출도 증가

저금리, 규제 완화가 주범은 아닌 셈
공공·기업임대 비중 40%로 늘리면
가계부채 최대 50조원 줄어들 것
사안별 맞춤형 건전성 관리가 중요

가계부채의 규모가 빠르게 늘어난 원인으로는 정책의 실패, 즉 2014년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규제 완화가 지적되기도 한다. 여기에 ‘과도한’ 저금리 정책이 문제라는 진단이 덧붙여진다. 그러나 가계부채라는 단일한 명칭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현실의 가계부채는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닌 부채들의 결합이다. 따라서 그 증가 원인을 단순화하기보다는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대응 방향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지난 수년간 가계부채의 증가세가 두드러진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유는 주택경기의 상대적 호황이다. 2013년 이후 주택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주택 거래가 활성화되었고,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났다. 주택가격의 추가적인 상승을 기대한 주택구입 중에서 가장 ‘투기적인’ 형태가 바로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높은 주택을 소규모의 자기자본으로 매입하는 이른바 ‘갭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가계부채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갭투자가 등장할 정도로 주택가격 상승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신규주택의 분양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집단대출이 크게 늘어났다. 집단대출의 경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에서 배제된 탓으로 부실화 우려가 거듭 제기됐다.

둘째 이유는 전반적인 내수경기의 부진이다. 가계와 자영업자들은 생활자금이나 소규모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가 있다. 신용대출의 상당 부분도 여기에 포함된다. 2015년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가계대출의 용도 중에서 사업자금과 생활비 마련이 각각 21.1%, 5.9%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한 가계부채의 증가를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냥 부정적으로 볼 이유도 없다. 문제의 출발점은 경기부진과 소득둔화이지,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가계부채 증가가 아니다. 재무적 여건의 악화에 따른 유동성 제약을 완화하기 위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은, 미래의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수준만 아니라면 금융의 본래 역할 중의 하나다. 이에 대해서는 자영업자들의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도록 내수경기가 호전되고, 자영업자의 사업자금이나 가계의 생활비 용도의 부채가 원활하게 상환될 수 있도록 소득여건이 개선되는 것이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이유 는 주택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된다.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시장에서 전세 비중이 낮아지고 월세 비중이 높아지는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면서, 임대주택 중에서 월세의 비중은 2008년 45%에서 2014년에는 55%로 상승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은 대부분 다주택보유자인 개인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대주택 중에서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개인이 공급하는 비중은 80%를 넘는다. 만약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개인을 포함할 경우 9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임대주택의 공급자로서 개인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들이 임대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을 어떤 형태로 마련하는가에 따라 가계부채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전세에서 임대인의 주택 구입은 임차인이 제공하는 전세보증금과 약간의 자기자본을 통해 이루어진다(흔히 “전세를 끼고 집을 산다”고 표현한다). 전세라는 계약형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직접금융(사금융)이라는 점에서 제도권 금융기관의 대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월세로 넘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임대인은 임대주택의 구입을 위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택 구입을 위한 재원의 조달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직접금융(사금융)이 임대인과 은행 간의 간접금융(주택담보대출)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통계에 잡히는 가계부채가 늘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가계부채의 증가는 없던 부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부채의 형태가 바뀌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사금융이 제도권 금융으로 전환되면서 담보인정비율(LTV)이나 DTI 규제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증가에는 서로 다른 여러 요인이 뒤섞여 있다. 과도한 저금리나 규제 완화가 부채 증가의 주범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주로 첫째 사례에 해당할 뿐이다. 둘째 사례에서 저금리는 부채 증가의 요인이 아니며 오히려 채무자들의 이자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긍정적 기능을 한다. 또한 셋째 사례에서도 저금리는 핵심적 요인이 아니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저성장 기조로의 전환과 주택보급의 확대 등을 배경으로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낮아짐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고 싶다면, 개인이 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기업과 공공부문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을 크게 늘리면 된다. 한국은행은 만약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시장에서 공공·기업임대 비중이 선진국과 비슷한 40% 수준으로 높아질 경우, 가계부채 규모는 현재 수준보다 최대 50조원 줄어들 것으로 (보수적으로) 추산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줄어든 만큼 기업부채나 공공부채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주택구입을 위한 것이든 생활자금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이든 간에 가계부채의 증가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해치지 않으려면 채무자의 상환능력과 담보물의 가치를 감안한 적절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 수년 전부터 정책당국이 추진중인 가계부채 문제의 연착륙을 위한 구조개선 방안 은 그러한 취지로 이해될 수 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주택관련 대출은 금융기관의 자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 임대주택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비중이 더 커질 것이다. 최근 정책당국이 발표한 ‘여신심사 선진화 로드맵’에서도 드러나듯이 앞으로는 획일적 규제보다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여신심사와 건전성 관리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부채의 건전성 관리는 우리 거시경제의 건전성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핵심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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