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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12. 잠입 (7)

붕괴 후 여섯 시간 십오 분 경과, 지하 3층
 
지하 3층 역시 위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위층 중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광경에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위쪽으로 올라가는 건너편 발판을 타고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뿐이었다. 바닥에도 신발 바닥을 적실 정도로 물이 차올라있었다. 그 물 위로 둥근 핏방울들이 꽃잎처럼 떠서 정처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저쪽인 것 같아요.”
 
물 위에 뜬 핏방울들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남쪽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떨고 있는 김원섭을 박금봉에게 넘겨주고는 화염방사기를 넘겨받았다. 창을 바짝 움켜쥔 이대백과 김승리 역시 경직된 표정으로 핏방울들이 떠내려 오는 남쪽 통로를 응시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달수였다. 내 어깨를 친 그의 손에는 짧고 구부러진 칼이 쥐어져있었다.
 
“저 영감탱이가 만든 건 어딘지 불안해 보이더군요. 칼날이 접히는 폴딩 나이프니까 접어서 옷 속에 넣어두었다가 쓰세요. 작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접혀진 칼날은 손잡이 사이로 숨어버렸다. 칼날이 숨겨진 칼을 넘겨받은 나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저와 사제님은 소화전을 잠그고 오겠습니다.”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차재경의 말을 들으며 우리 셋은 남쪽 통로로 꺾어 들어갔다. 통로에서는 섬뜩한 아이 울음소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실체와 마주친다는 긴장감에 젖은 땀이 자꾸만 눈으로 스며들어왔다. 통로에는 생각보다 많은 물들이 차있었다. 천정에서는 스프링클러뿐 아니라 크고 작은 배수 파이프들에서도 쉴 새 없이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툭툭거리며 어깨에 달라붙은 물방울들을 한 손으로 털어낸 나는 양쪽에 나 있는 문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난감해했다. 물 위에 뜬 핏방울들은 두 개의 문중 어떤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있었다. 일단 오른쪽에 있는 문을 먼저 열어보자고 손짓하는 순간 골골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사이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 딸칵
 
오른쪽에 있는 문에 들린 소리였다. 그때서야 문 위쪽에 CT 촬영실이라는 글씨가 박혀있는 황금색 명판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열린 문은 핏방울이 섞인 물들이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고장 난 자동문처럼 천천히 열렸다.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물줄기들이 거센 급류처럼 콸콸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들고 있던 화염방사기의 노란 다이얼을 돌렸다. 닿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리고 싶다는 탐욕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낸 푸른 화염이 좀 더 커졌다. 문 안쪽의 방에는 CT 촬영기나 다른 수술기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환자들의 링거를 걸어두는 폴대만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 더, 지독스러울 정도의 더위가 우리들을 엄습했다. 사우나의 한증막 안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숨쉬기가 곤란했다.
 
“분명히 뭔가 있어,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고...”
 
오른쪽에 선 이대백의 숨 돌릴 틈 없는 중얼거림이 잘게 떨리는 가슴을 무겁게 눌러댔다.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헤드램프의 어지러움에 지친 나는 혀끝을 가볍게 깨물었다. 침에 젖은 통증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고정된 내 시선이 붙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벽에 붙은 책상 위에 그녀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상태가 몹시 안 좋아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는 피인지 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에 젖어 있었고, 머리 한구석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위태로울 정도로 큰 상처가 보였다. 활짝 열린 하얀색 환자복 사이로 퉁퉁 부어서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가슴과 곧 산달이 다가온 것 같은 불룩한 아랫배가 드러났다. 여인은 한쪽으로 고개를 떨구고는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자 갓난아이를 넣어두는 포대기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인은 우리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한 채 포대기를 향해 무미건조한 자장가를 불렀다.
 
-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자장, 자장 자장...
 
“저기 봐요. 이유리 씨예요.”
 
김승리의 다급한 외침이 기묘한 광경에게서 눈을 떼게 만들었다. 김승리의 헤드램프는 그녀가 올라가 있는 책상 옆쪽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 안에는 김승리의 말대로 이유리가 보였다.
“저 피 좀 봐요!”
 
김승리의 말대로 책상 옆에 웅크리고 앉은 이유리의 목에서는 어마어마한 피가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원래 입고 있던 푸른색 셔츠는 물론 청바지까지 온통 검붉은 피에 젖어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난 괜찮으니까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우리들을 쳐다보던 이유리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의 말끝에 걸린 희미한 미소를 따라 목덜미에서 새로운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내렸다.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우리가 곧 구해 줄게요.”
 
창을 옆구리에 단단히 낀 이대백이 소리쳤다. 나는 화염방사기의 화염을 줄였다. 자칫하다가는 아이나 이유리까지 태워버릴 수도 있었고, 그 무엇보다도 따스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정체불명의 여인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요.”
 
나른한 그녀의 목소리가 물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우리들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살짝 고개를 들어 우리들을 노려보던 이유리는 또렷한 적의가 담긴 목소리로 덧붙였다.
 
“난 행복해요. 그러니까 날 귀찮게 하지 말아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속이 거북해졌다. 이 어둠 속에 빠져든 이후 모든 정상과 비정상들의 기준이 헝클어졌지만 목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그녀는 행복하다고 중얼거렸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은 나를 대신해 이대백이 소리쳤다.
 
“말하지 말고 있어요. 자꾸 말을 하니까 목에 철사가 더 파고들잖아요.”
 
철사? 그때서야 땀이 차서 시큰해진 눈에 이유리의 목에 걸려있는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 보였다. 올가미처럼 목에 걸려있는 부분부터 피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이대백의 말대로 철사가 틀림없어 보였다. 김승리가 권총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투덜댔다. 이제 이유리를 구해내는 방법은 직접 다가가는 것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책상 위에 앉아있는 정체불명의 여인은 다정스러운 눈길로 포대기를 내려다보면서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손에 이유리의 목과 연결된 철사 줄이 없었다면 지극히 평화스러운 부조화뿐이었다고 판단해버렸을 것 같은 그런 광경이었다. 절반쯤 다가갔을 때 책상 위의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바짝 붙어있던 김승리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고, 나 역시 겨우 비명을 삼켰다. 우리 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작은 실핏줄들이 터져서 이루어진 붉은 선들이 촘촘하게 씌어져 있었다. 무표정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던 그녀는 주먹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자신의 아랫배를 힘껏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와 이유리의 몸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만둬! 무슨 짓이야!”
 
나도 모르게 고함을 버럭 질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 계속 자신의 배를 내리쳤다. 나는 히죽거리는 그녀의 웃음 사이로 순수한 증오를 보았다. 아이를 어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라 증오하는 대상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악함이 가득 깃든 얼굴이었다.
 
“제발 그만 해요! 그만두지 않으면 가만 안 놔둘 거예요.”
 
날 선 목소리로 외친 김승리가 물을 박차고 뛰어가면서 소리쳤다. 앞으로 겨눈 창은 붉은 핏줄을 뒤집어쓴 여인의 배를 겨냥했다. 자신에게 김승리를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뻐금거렸다. 그리고 달려가던 김승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발이 안 움직이지? 좀 도와줘요!”
 
당황한 김승리가 외쳤지만 우리들 역시 발이 땅에 못 박혀버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발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하던 얼음 땡 놀이에 걸린 술래처럼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때처럼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남겨둔 채...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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