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일제식민지에 북촌의 작은 한옥은 어떻게 지어졌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저자: 김경민 / 출판사: 이마 / 가격: 1만5000원

저자: 김경민 /?출판사: 이마 / 가격: 1만5000원


어느 곳이든 딛고 선 땅의 이야기는 있다. 일부 기억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잊힌 역사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의 프롤로그 첫머리가 책의 이유를 분명히 한다. ‘많은 사람이 북촌에 열광하고 있지만, 정작 누가 이런 동네를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서울 북촌 가회동 31번지. 주소는 낯설지만 장소는 익숙하다. 북촌 나들이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동네다. 언덕길을 따라 양쪽으로 한옥이 쭉 늘어선 북촌의 대표적인 한옥지구다. 넓은 대지에 안채ㆍ사랑채ㆍ행랑채가 펼쳐져 있는 전통한옥과 달리, 북촌의 한옥들은 ‘ㅁ자’형 땅에 모든 공간이 압축돼 있다. 1920년대부터 가회동 한옥과 같은 약 33~132㎡(10~40평) 규모의 작은 한옥이 경성에 많이 지어졌다. 오늘날의 삼청동ㆍ관철동ㆍ체부동ㆍ계동ㆍ익선동 등이다. 요즘 작은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주목받으며 한층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집이라 하면 일본식 적산가옥과 문화주택이라 불리던 서양식 주택이 주목받던 식민지 시절에 어떻게 작은 한옥촌을 만들게 됐을까. 저자는 그 사연을 거꾸로 추적한다. 무대는 20세기 초 경성이고, 주인공으로 조선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이면서 ‘경성의 건축왕’으로 불렸고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정세권(1888∼1965)이 등장하게 된다.
 
추적기는 생생하다. 군더더기 없는 서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신문기사, 가족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 덕이다. 1910년 한일강제합병 이후 급변하는 경성의 긴박감도 더해진다. 산업화로 몰락한 농민층이 경성으로 몰려들었고, 경성 남부지역에 자리 잡았던 일본인은 청계천 너머 북촌지역으로 주거지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경성의 인구는 폭발하고 북촌을 둘러싼 조선인과 일본인간의 토지 전쟁이 시작된다. 저자는 ”(일본인이) 정부기관을 북촌으로 옮기는 한편 종로통에 일종의 도시미화운동을 벌이면서 자연스레 조선인들의 북촌 이탈 효과를 보려 했다“고 전한다.
 
경복궁 가운데 들어섰던 총독부 청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인의 반발을 고려해 일본인은 경성의 국공유지에 통치기구 건물을 세웠다. 이어 주변 동네에 관사를 지었다. 경복궁 옆 동네인 통의동에 지금도 남아 있는 적산가옥이 당시 지어진 관사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인들이 오랜 삶터에서 속절없이 쫓겨나던 차에 이들을 위한 새로운 조직이 등장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회사였던 건양사의 설립자 정세권을 위시한 조선인 출신 신흥 자본가계층, 근대적 디벨로퍼들이다.
 
근대적 디벨로퍼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렇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왕실과 귀족층의 대규모 주택을 매입해 토지를 분필(分筆)한 후, 근대적 한옥이라 불리는 기존과 다른 작은 규모의 한옥을 대량으로 공급해 중산층 이하 서민계층의 주거 공급에 일익을 담당했다.“
 
경상남도 고성 출신인 정세권도 북촌에 자리 잡고 1920년 건양사를 설립한다. 10년쯤 지나 그는 경성 3왕 중 하나인 ‘건축왕’이라 불리게 된다. 그는 ‘대규모 근대식 한옥단지’ 개발에 뛰어들었고, 편리하게 살 수 있게 개량한 ‘20세기형 한옥’을 개발하고자 애썼다. 최근 한옥동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익선동의 경우 정세권이 조선 왕족의 종친인 이해승 소유의 누동궁(166번지)과 고종의 서자 완화궁의 사저(33번지)를 매입해 한옥집단지구로 개발했다. 저자는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의 북진을 막아야 한다’는 그의 인식이 한옥집단지구 형태로 투영됐고 북촌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한옥들이 처마를 이어 가며 어우러진 형태의 대형 개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작은 한옥이 모여 조선인의 북촌을 그나마 지켜낸 셈이다.
 
지금껏 정세권의 기록은 학계마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었다. 건축학계에서 그는 근대식 한옥집단지구의 작은 한옥을 건축한 집장사로 기억됐다. 역사학계에서는 조선물산장려회의 재정을 담당한 인물로, 한글학ㆍ국문학계에서는 조선어학회를 후원하고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탄압을 받은 인물로 연구됐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는 잊힌 인물이 됐다. 2012년부터 정세권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 지냈던 저자는 20세기 초 경성을 만든 인물 ‘건축왕’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