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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인류, 소행성 충돌 따른 대멸종 덕에 번성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우리는 누구인가

폴 고갱이 1898년 타이티에서 그린 작품에 붙인 제목이다(그림).
 

수소 등 우리 몸 구성하는 원소들
45억4000만년 전 지구 생길 때 형성

공룡 등 25kg 넘는 동물 멸종 후
포유류 번성의 생태적 지위 확보

220g의 들쥐 같은 동물이 직계 조상
유인원·원숭이·침팬치·인류로 진화

이것은 기원(origin)에 대한 질문이다. 과거 여기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신화밖에 없었다. 히브리의 창조 신화에선 여호와가 진흙으로 인간의 형상을 빚어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중국 신화에선 여와(女?)여신이 황토를 빚어 만든 것이 귀족, 진흙탕에 넣었다 뺀 덩굴을 휘둘러 떨어진 진흙방울들이 천민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과학 지식이 축적되면서 우리는 이런 거대한 질문에 실증적 근거를 가지고 답할 수 있게 됐다. 20여년 전 ‘빅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나타나게 된 배경이다. “빅히스토리는 우주·지구·생명·인류역사를 통합 학문의 방법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국제 빅히스토리 협회) “빅히스토리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우주 전체의 역사를 살펴보는 현대의 ‘기원 이야기(Origin Story)’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이 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호주 맥쿼리대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다. 1989년 그가 최초로 ‘빅히스토리’ 강좌를 개설한 이래 미국과 호주를 중심으로 중·고교, 대학의 강의에서 널리 채택되기 시작했다.

빅히스토리는 다학제 간 접근법 이용 
빅히스토리는 수십년에서 수십억년에 이르는 다양한 시간단위를 오가며 인간의 존재를 탐구한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두루 활용하는 다학제 간 접근법을 이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빅히스토리 강의를 접한 뒤 “젊은 시절 내가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하며 적극적 후원자가 됐다. 그는 크리스천 교수와 손잡고 2011년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는 UC 버클리와 손잡고 역사적 사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랙티브 교육툴인 ‘크로노 줌’을 운영 중이다. 몇십년에서 몇십억년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간척도를 기반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1898년) 보스턴미술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1898년) 보스턴미술관

빅히스토리의 시야를 가장 잘 반영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제시한 ‘우주 달력’이다(그래픽). 우주의 역사 138억년을 1년으로 본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해온 20만년은 8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90% 이상은 우리가 무시해 왔던 농업문명 이전의 수렵채집시대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달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 앞의 조건이 없었으면 뒤의 일들이 없었다는 것, 뒤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고 그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빅히스토리 교육이 도입된 것은 2009년 고(故)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가 지구사연구소를 설립하면서다. 현재 ‘빅히스토리 연구소(소장 이근영)’ 와 ‘조지형 빅히스토리 협동조합(이사장 김서형)’이 교육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김서형 이사장은 “빅히스토리는 기존의 분절되고 파편화된 교육과는 달리 여러 교과목 간 자유로운 소통과 공존, 그리고 상호관련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융합 교육”이라며 “138억년+α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층위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살펴보고, 그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지 찾아보는 것이 빅히스토리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빅히스토리 연구자들은 인간의 역사에도 생물의 자연선택과 같은 수준의 개방적이지만 방향성이 있는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찾아내려고 노력 중이다. 이들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이나 성이 아니라 하나의 종이다. 그 종이 생물권과 맺는 관계가 인간의 역사다. 인류가 현재 처해 있는 인구나 기후, 에너지 문제를 포함한 이 종의 미래는 그것이 생물권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다른 어떤 접근법보다 빅히스토리적 관점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별에서 왔다.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은 산소와 수소로 이뤄져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단백질과 지방은 탄소·산소·수소·질소·황으로 구성된 화합물이다. 그 외에 철·마그네슘·나트륨·칼슘·칼륨·인 등이 조금씩 들어있다. 이들 원소의 기원은 우주에 있다. 수소는 138억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으로부터 38만년 후쯤 생겼다. 수소구름이 뭉쳐져 별이 되고 별의 중심에서 핵융합이 시작됐다. 그 결과 헬륨을 거쳐 산소와 탄소·네온·규소·철 등이 만들어졌다. 이보다 무거운 금·납·우라늄은 매우 무거운 별이 마지막에 초신성을 이루며 폭발할 때 생겼다. 태양계는 약 45억6000만년 전 이런 초신성의 잔해가 모인 성운에서 태어났다. 성운은 전체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과 그 주변을 도는 아주 작은 행성들로 분화됐다. 지구는 그중 안쪽에서 셋째 궤도 주변에 있던 미행성들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은 그때 지구에 자리잡게 됐다.

박테리아 비슷한 자기 복제 분자 생겨나 

지구는 45억4000만년 전쯤 생겨났다. 그 뒤 약 5억년 동안 지구는 용암이 들끓는 불덩어리였고 운석과 소행성으로부터 지속적인 폭격을 받았다. 생명은 이 같은 환경이 안정되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났다. 거의 40억년 전 박테리아 비슷한 자기 복제 분자가 생겨난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같은 원시세포, 단일 유기체로부터 진화해 나왔다. 모두가 동일한 DNA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 증거다. 인간의 DNA는 바나나와 50%, 생쥐와 80%, 침팬지와는 98% 일치한다.
 
하지만 인간이 출현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한다.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됐을 때의 환경을 똑같이 재현해놓았을 때 지금의 인류와 같은 것이 진화할 확률은 0%에 가깝다.” 그 이유 중 하나만 들어보자. 우선, 인류가 진화하려면 먼저 포유류가 번성하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공룡이 2억1000만년 전부터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포유류는 공룡의 발치에서 돌아다니던 야행성의 작은 동물로 몇 종 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계속되었을 수도 있다. 6500만년 전쯤 지름 10km가 넘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여파로 지구상의 동식물 중 75%가 멸종했다. 여기에는 조류에 속하는 한 종을 제외한 모든 공룡, 25㎏이 넘는 모든 육상 동물이 포함된다. 우리에게 이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포유류가 살아남아 번성할 수 있는 생태적 지위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계 조상은 들쥐 비슷한 동물로 곤충을 잡아먹으며 살고 있었다. 몸무게는 220g을 넘지 못했다. 이 동물이 유인원과 원숭이의 조상이 되고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 보노보 그리고 인류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의 지질시대를 ‘인류세(世)’로 명명 
우리는 누구인가?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종이다. 생물 역사상 6번째의 대멸종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을 ‘인류세(世)’라는 지질시대로 명명할 정도로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는 종이다. 인류세란 지질시대 구분에서 홍적세(洪積世)와 충적세(沖積世)에 이어지는 현세의 명칭으로 지난해 국제층서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됐다. 우리는 또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하는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이 같은 ‘집단 학습’ 덕분에 환경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물질적 축적이 가능해졌고, 도시와 국가, 문자, 불평등, 혁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poemloveyou@hanmail.net
 

중앙일보 논설위원, 객원 과학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역임. 2011~2013년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산책’ 칼럼을 연재했다.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저술과 강연에 힘쓰고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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