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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석유’ 데이터 다루실 분 모십니다

‘디지털 인재’ 쟁탈전 나선 글로벌 기업
한 고객이 스타벅스가 선보인 음성인식 챗봇 ‘마이 스타벅스 바리스타’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다. [사진 스타벅스]

한 고객이 스타벅스가 선보인 음성인식 챗봇 ‘마이 스타벅스 바리스타’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다. [사진 스타벅스]

“알렉사, 휘핑 크림은 빼고 따뜻한 카페모카로 주문해줘.”
 

데이터가 돈 되는 디지털 경제
딜로이트 “디지털 인재난 심각”

헤드헌터 몰리는 실리콘밸리
AI·데이터 전문가 몸값 급등

돈 많은 기업은 M&A로 해결
GE 2년 교육해 기술자 양성

점심식사 후 스마트폰 앱을 켠 뒤 매장 직원에게 말하듯 하면 자동으로 주문과 결제가 이루어진다. 7~8분 뒤 커피숍에 도착하면 줄서지 않고서도 커피를 손에 쥘 수 있다. 지난달 스타벅스가 선보인 음성인식 챗봇 ‘마이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커피를 주문한 모습이다. 스타벅스가 2015년 모바일 앱에서 주문과 결제를 한꺼번에 할 수 있게 내놓은 사이렌 오더 서비스에 아마존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음성인식 비서인 ‘알렉사’를 결합했다. 아직까지는 베타 서비스지만 올 여름부터 미국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였던 스타벅스가 디지털 기술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2015년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 출신의 제리 마틴 플리킨저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하는 등 정보기술(IT) 전문가를 잇따라 채용하면서 생긴 변화다. 주니퍼네트웍스의 최고경영자였던 케빈 존스는 올해 4월 하워드 슐츠의 뒤를 이어 경영을 맡는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차기 CEO인 케빈은 ‘커피 거인’에게 실리콘밸리의 DNA를 이식할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디지털화가 디지털경제시대를 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경제란 전자상거래를 촉진하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경제라고 2012년에 정의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처럼 과거 전자상거래 등 특정한 산업으로 인식했던 디지털경제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같은 IT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경제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경제의 가장 큰 자산은 데이터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가트너는 “?21세기 석유?인 데이터가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치 석유가 원유를 정제해 아스팔트부터 화학·의학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 듯 앞으로 기업은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버는 세계 최대 택시회사지만 보유한 자동차가 없고,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도 부동산이 없다. 이들은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데이터(정보)를 중개하는 사업만으로 시가총액 30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기업이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가장 공들이는 건 ‘디지털 인재 모시기’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과 컨설팅그룹 딜로이트가 2015년 공동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748개 기업 중 90%가 디지털 기술이 산업을 바꾸고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디지털 조직과 인력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한 기업은 44%로 절반도 안됐다. 영국 경제연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도 지난해 비슷한 조사에서 상당수 기업이 디지털 기술과 인재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찾는 디지털 인재란 뭘까. AI, 로봇 기술, 3D 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할 인력이다. 천성현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앞으로는 3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컴퓨터나 인터넷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웹 프로그래머보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데이터·AI 전문가를 찾는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수집한 뒤 분석해 소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에 돈이 몰리고 있어서다. 아마존의 경우 온라인 책 구매자의 정보를 분석한 뒤 이용자 취향에 맞춰 추천하는 서비스가 전체 서적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6000여 명 디지털 인재 뽑은 GE
글로벌 기업이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는 전략은 채용, 스타트업 인수, 교육 세 가지다. 최근 각국 기업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재 영입 쟁탈전을 치르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10월 카네기멜론대학의 루슬란 살라쿠트디노프 교수를 AI연구 디렉터로 뽑았다. 그는 신경망과 심층학습(딥러닝) 분야 권위자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 초 구글의 AI로봇 개발부문 책임자인 제임스 커프너를 영입한 뒤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웠다. 페이스북은 이들보다 앞서 2013년 AI의 대부로 통하는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와 딥러닝 분야 개척자인 얀 레쿤 뉴욕대 교수를 스카우트했다. 점점 미국에서 우수한 인재를 뽑는 게 더 어려워지자 이제는 프랑스 파리에 연구소를 세운 뒤 유럽 전문가 채용을 늘리고 있다.
 
최근 가장 많은 인력을 뽑은 곳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미국의 제조업을 상징했던 GE는 2015년 9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곧바로 디지털사업부를 만든 뒤 구글·IBM·오라클·시스코 등 IT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거 스카우트했다. 지난해 말까지 GE가 새로 채용한 디지털 전문 인력만 6000여명에 이른다. 천성현 선임연구원은 “GE는 새롭게 바뀐 회사의 사업 방식을 실리콘밸리 인재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채용 방식도 바꿨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GE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실제 일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 ‘신입사원 오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를 시리즈로 제작해 유튜브에 배포했다. 전체 조회수는 100만 건을 넘어섰다. 또 디지털 사업부 인력에겐 다른 부서보다 10~20%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M&A로 기술과 인재 통째로 흡수
스타트업 인수합병(M&A)도 글로벌 기업이 인재를 확보하는 통로 중 하나다. 황인경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과거엔 M&A가 자산이나 특허권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최근엔 기술과 인재를 통째로 흡수하기 위한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이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로 AI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2014년 1월 4억 달러(약 4500억원)에 인수한 딥마인드 덕분이다. 황 연구원은 “구글은 딥마인드가 머신러닝(기계학습) 전문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작은 회사였음에도 5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인재가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회사 운영 체계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IT기업뿐이 아니다. 월마트·베링거인겔하임·나이키 등 전통적 글로벌 기업도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제휴를 맺었다. 월마트는 2011년부터 검색엔진 업체인 코스믹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그래블 등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지난해엔 33억 달러를 투자해 신생 온라인 유통업체인 제트닷컴을 품에 안았다. 디지털 기술과 인재를 확보해 온라인 유통 공룡으로 성장한 아마존과 승부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계산대 없는 매장’으로 불리는 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인 스캔앤고를 선보였다. 고객은 매장 내에서 스마트폰의 앱으로 제품의 바코드를 스캔한 후 앱에서 결제를 하고, 나갈 때는 매장 직원에게 전자 영수증만 보여주면 된다. 이보다 앞서 아마존이 지난해 말 내놓은 점원 없는 매장인 ‘아마존 고’ 와 비슷한 방식이다.
 
독일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은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캐글과 손을 잡았다. 캐글은 데이터를 수집·가공·분석해 더 나은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베링거인겔하임의 연구원들이 개발한 신약 데이터를 분석한 뒤 약품의 임상 예측력이 크게 개선됐다.
 
 
'자바’ 지고 데이터 언어인 ‘R’ 뜨고
마지막으로 내부 인력을 활용한 교육을 꼽을 수 있다. 지멘스는 자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다른 제조업체가 도입할 수 있도록 업계 임직원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 등 지멘스가 진출한 나라의 대학과 연계한 PLM(제품수명주기관리) 교육이다. PLM은 제품의 기획단계부터 설계·생산·서비스까지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또 제조업체들이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생산성을 개선하는 지능형 생산공장인 스마트팩토리에 주로 쓰인다. 천성현 연구원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GE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회성 보여주기식 교육이 아니다. 교육 기간만 2년이다. 교육 내용 중에서도 ‘R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 업무’가 눈에 띈다. 최근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에 관심이 커지면서 데이터 과학 언어인 R이 과거 프로그래밍 언어 대표주자였던 자바보다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GE는 전문적인 기술 교육을 통해 직원들을 차세대 기술개발자로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산업이 빠르게 디지털경제로 바뀌면서 디지털 인재 영입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와튼 스쿨의 피터 카펠리 교수는 “과거 굴뚝산업 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며 “앞으로는 새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 신기술로 채워지는 조직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산업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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