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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암기식 교육 뛰어넘어 ‘협력’ 가치 심는 교육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미국 뉴욕시 애비뉴 월드스쿨의 통합과학 수업에서 10·11학년생들은 지난해 2월 작은 집을 만드는 과제를 받았다. 5월엔 설계도를 바탕으로 집의 바닥과 벽체 등을 목재로 직접 제작하고 9월 뉴욕주 콘월에 있는 숲으로 옮겨 11월 완공했다. [사진 애비뉴 월드스쿨 홈페이지]

미국 뉴욕시 애비뉴 월드스쿨의 통합과학 수업에서 10·11학년생들은 지난해 2월 작은 집을 만드는 과제를 받았다. 5월엔 설계도를 바탕으로 집의 바닥과 벽체 등을 목재로 직접 제작하고 9월 뉴욕주 콘월에 있는 숲으로 옮겨 11월 완공했다. [사진 애비뉴 월드스쿨 홈페이지]

사립 S대 자연계열 1학년 김모(19·여)씨는 얼마 전 휴학계를 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세부 전공을 정해야 할 시점에 휴학을 선택해 주변을 의아하게 했다. 그런데 의문이 곧 풀렸다. 김씨는 지난달 20일 경기도 교육청이 발표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조작 은폐 사안 고발 등 강력 조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 ‘C 학생’이라는 익명으로 등장했다. 그는 2015년 9월 경기도 D고 3학년 재학 중 S대의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학종·서류 100% 반영)에 조작된 서류를 제출해 합격했다는 게 감사 결과 내용이다.
 

내신 서류 조작으로 불신 확산
수능 회귀는 암기교육 회귀 초래
프로젝트학습, 공정성 위기 대안
중학교부터라도 점진 확대해야

김씨의 어머니이자 D고의 교무부장 박모(52) 교사가 김씨의 학생부 전산프로그램(NEIS)에 접속해 1~3학년 기록(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 등)을 고쳤으며, 이 사실이 김씨의 고3 담임 때문에 뒤늦게 밝혀지자 박 교사는 그해 9월 사표를 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측도 은폐한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조작 사실을 안 지 두 달이 지난 그해 11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 김씨 기록 조작을 ‘기재 오류’로 판정하고 일부만을 정정해 대학에 다시 통지했다. S대 입학 관계자는 “학교 측이 일부 오류에 대해 정정해 달라고 공문을 보내 별문제 없는 걸로 판정하고 김씨를 합격시켰다”고 황당해했다. 조작이라는 통지를 받았으면 애초부터 뽑지 않았을 텐데 정정 요청이어서 선발했다는 것이다. S대는 감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통보받는 대로 김씨의 입학을 취소키로 했다.

 
 
“불공정한 수시보다 차라리 수능을”
경기도 D고의 서류 조작,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 S고의 교과 성적(내신) 조작은 국정 농단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입학 부정과 함께 현행 입시체제를 흔드는 사건이다. 대입 정원의 73%를 수시모집으로 선발하고 수시모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게 학생부교과전형, 학종 순인데 서류나 내신 조작 등은 수시모집의 근간인 공정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학종은 교과성적뿐 아니라 동아리활동·봉사·독서활동 등도 종합적으로 본다.
 
서류나 내신 조작처럼 중대 범죄행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정성을 훼손하는 평가 사례는 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입학처장은 “학종에 지원한 한 학생의 교내 대회 상장 수를 따져 보니 60~70개나 됐다”며 “학교가 특정 학생에게 ‘상장 몰아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과 성적을 기준으로 상위 3등급(총 9등급) 이내에 들어야 수시모집으로 합격이 가능하니 이런 학생에게 상장을 하나라도 더 준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나머지 4~9등급 학생들은 버려지는 셈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수능으로 뽑는 정시모집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야당인 국민의당은 지난해 총선 전 수시모집 축소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일부 대선주자도 비슷한 공약을 내놨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수시모집 비중을 40%로 낮추고 수능에 의해 선발하는 정시모집을 60%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에서 수능의 반영 비중과 중요도는 점점 떨어졌다. 내년 수능에선 영어 영역이 처음으로 절대평가로 치러진다. 그런데 정시 선발 비중이 커진다는 건 결국 입시가 수능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공정성 뛰어넘는 평가 가능할까
그렇다면 공정성 확보를 이유로 수능 회귀는 바람직한 것일까.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장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부정이나 특혜가 없는 공정한 제도를 원하고 있는 건 충분히 공감한다”며 “공정성을 따지면 수능보다도 수능 이전 학력고사가 더 공정하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이어 “그렇다고 학력고사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학력고사나 수능은 선다형 시험으로 전체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운다. 대학의 선발 편의를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수험생은 과거처럼 단 한 차례의 시험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본격적인 서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주호(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은 지식을 암기하는 게 아닌데 수능 회귀는 주입식 교육을 계속하자는 것”이라며 “문제 해결과 협력 등의 역량이 요구되는 시대에 수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평가의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주입식·단순암기식 시험의 폐해를 뛰어넘는 방법을 찾는 게 과제다. 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은 “평가를 바꾸려면 학교 수업과 학습부터 개혁해야 한다”며 “프로젝트 학습(Project-based Learning, 줄여서 PBL)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PBL이란 학생이 스스로 제안한 과제(프로젝트)를 다른 학생들과 서로 협력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교육방법을 말한다.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KDI의 도움을 받아 2015년부터 대구에 있는 중학교 두 곳(경북대사대부중·대구중앙중)을 중심으로 자유학기를 활용해 PBL을 시범 도입했다. 지난해 10월 곽호성 중앙중 수학교사는 1학년 남학생 24명을 상대로 ‘평면도형(삼각형·사각형 등)’ 수업을 이런 방식으로 했다. 보통 강의 수업에선 교사가 도형의 성질 등 개념을 설명해 주고, 학생들은 문제 풀이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엔 학생들을 5개 모둠(팀)으로 나눴다. 각 모둠은 320㎥ 크기의 땅에 마음에 드는 도형의 모양으로 집을 짓는 과제를 받았다. 곽 교사는 “도형의 성질을 활용해 집을 짓는 과제를 하면서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몰입하는 걸 배우는 게 수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1학년 정지광 학생도 “나뿐 아니라 동료도 평가에 참여하기 때문에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PBL에서 학생은 자신의 참여·기여 정도를 스스로 평가(20%)하고 같은 팀 동료의 참여와 기여 정도를 평가(30%)한다. 또 다른 팀의 과제 해결 발표를 듣고 평가(30%)한다. 교사도 각 팀의 팀워크 등을 놓고 점수(20%)를 매길 수 있다. 김태완 원장은 ”교사가 평가권을 독점하는 게 아니며 모두가 참여하는 평가이기 때문에 공정성 문제도 해소된다”며 “이 같은 수업을 당장 고교부터 시행하기는 어려워도 중학교 때부터 시행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강기헌 기자
자문단: 권대봉 고려대 교수(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노동시장),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 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전 한국교육개발원장), 김희삼 GIST 교수(기초교육학부), 박준성 교육부 기획담당관, 이민화 KCERN(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혁신),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부 장관),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교육학), 이화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원장(교육과정),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정철영 서울대 교수(산업인력개발),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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