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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달러로 살아가던 네팔 가족의 기억이 나를…

[김수정의 상큼 인터뷰]
23년 만에 다시 문 연 유니세프 한국사무소 김수현 소장
 

유니세프 원조 졸업한지 23년
한국은 함께 일하고픈 매력 파트너

590만 아동 고통 시리아 구호 시급
한국 후원자 37만명 1407억 기부

 지난달 전 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유엔 산하 기구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한국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1950년 6·25전쟁의 폐허에서 유니세프 한국사무소를 세우고 아동 구호를 시작한 지 43년 만인 94년 ‘더 이상 원조할 나라가 아니다’며 닫은 문이다. 유니세프는 대신 ‘유니셰프 한국위원회’(사무총장 서대원) 체제로 전환해 민간을 대상으로 모금 캠페인을 하고 다른 나라 어린이를 돕는 활동을 이어왔다.

 
닫은 문을 23년 만에 왜 열었을까.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개소입니다. 유니세프와 한국 정부의 파트너십 강화가 목적이고요. 세계 아동의 인권 증진에 대한 한국의 목소리, 개도국을 향한 설득에서 어느 선진국보다 한국의 말이 먹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무소에 부임한 김수현 초대 소장의 말이다. 2일 서울 종로구 글로벌센터 8층 유니세프 한국사무소를 찾았다. 사무실은 유니세프의 고유색인 사이언블루로 가득했다. 공식 개소식은 4월에 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 소장의 유엔 내 직급은 국장(Director) 바로 아래인 ‘P5’다. 세계식량계획(WFP)·유엔난민기구(UNHCR) 등 유엔 기구 20여 개가 서울에 사무소와 대표를 두고 있다.
 
김수현 소장은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쿠르디’가 죽어가고 있다”며 시리아 등 분쟁지역 아동에 대한 긴급 인도지원을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김수현 소장은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쿠르디’가 죽어가고 있다”며 시리아 등 분쟁지역 아동에 대한 긴급 인도지원을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한국사무소를 다시 여는 건 무슨 의미인가.
“우리 정부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헌신적이고 괄목할 만한 활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유니세프의 대한국 정부 업무는 도쿄사무소에서 겸했다. 이번에 서울 사무소를 열면서 유니세프의 대외협력사무소는 6개가 됐다. 서울과 뉴욕·도쿄·베를린·브뤼셀·제네바 등에 있다. 유니세프 입장에서 한국은 수혜국에서 기여국으로 변신한 기적의 나라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이룬 어린이 교육과 보건, 보호, 영양 강화 등 성과도 크게 인정한다. 우리의 경험에 기반한 원조 유형에 관심이 많다.” 
 
한국사무소는 정부를,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민간을 상대로 하는 건가.
“같은 유니세프 패밀리다. 업무 분장이라 보면 될 것 같다.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매년 늘려 나가는 모범 국가다. 총량으로 보면 선진국 수준에 많이 미치지 못하지만 어쨌든 2020년까지 국민총소득(GNI) 대비 0.2%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정책 개발도 활발하다. 유니세프 입장에선 함께 일하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다. 사실 많은 국제기구가 한국과의 협력을 위해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유엔 전반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다. 유니세프로 보내는 정부의 기여금 액수는 미국·일본·영국·북유럽 국가들에 이어 16위이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개도국 입장에서도 원래부터 잘사는 나라가 ‘잘 해보라’고 하는 것과, 한국이 ‘우리는 이렇게 했는데 잘됐다. 당신들도 개선해 봐라’고 하는 건 엄청난 차이다.”
 
한국 정부가 유니세프에 내는 자발적 기여금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사업을 포함해 연간 3000만~4000만 달러다. 한국위원회가 후원을 받아 내는 기여금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2015년 기준 9800만 달러(약 1407억원)에 이른다. 후원자만 37만 명이다. 전쟁 이후 43년간 한국은 유니세프로부터 2400만 달러를 지원받아 험난한 시기를 이겨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어린이 권리·교육에 관심이 많은, 혁신적인 뭔가를 더 하는 나라로 인식돼 있다. 물론 아동 문제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이제는 더 선진적인 차원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아동을 수혜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참가 주체로 보는 게 중요하다. 교육 프로그램 등에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반영하는 것도 한 예가 되겠다.”

우간다에서 어린이에게 비타민제를 먹이는 유니세프 친선대사 안성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우간다에서 어린이에게 비타민제를 먹이는 유니세프 친선대사 안성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한국 정부와 앞으로 할 일은.
“파트너십의 강화다. 국제사회가 2030년을 목표로 설정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내용에 부합하도록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이 원조를 할 때 정말 원조가 필요한 곳을 건의해 조율할 계획이다. 태블릿PC를 통한 수업 등 한국의 혁신 프로그램을 필요한 곳과 연계시켰으면 한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도 많았는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발생하는 사회문제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숙제다. 인격체로서 아동의 권리를 아이들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교사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커리큘럼 작성에 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동 구호가 가장 시급한 지역은 어디인가.
“시리아와 예멘 같은 분쟁 지역이다. 시리아는 인구 2100만 명 중 1350만 명이 긴급 인도 지원을 해야 할 대상이다. 만 18세 이하 아동은 이 중 절반인 590만 명. 요르단과 레바논, 터키로 피난 간 아동도 수백만 명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멀어져 ‘잊혀진 위기(Forgotten Crisis)’ 지역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차드와 나이지리아의 상황도 심각하다. 아시아의 경우 영양 부족 문제가 있지만 분쟁 지역 어린이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다.”
 
김수현 소장은 2010년 11월 ‘국가 공무원’에서 ‘국제 공무원’으로 변신했다. 외무고시 34회로 2001년 외교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유엔 등 주로 다자외교 파트에서 일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유엔 결의 채택 업무까지 마무리한 뒤 유엔개발계획(UNDP)으로 옮겼다. UNDP에 공석 공고가 난 걸 보고 지원해 외교부 고용휴직 상태로 3년간 근무하다 2013년 11월 아예 유엔으로 전직했다.
 
“국제사회의 개발 업무를 하고 싶어 개발을 총괄하는 UNDP로 갔고, 제대로 된 개발 업무를 하려면 수혜국 입장도 봐야 할 것 같아 유엔에서 인도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으로 옮겼다. 현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인 강경화 선배가 당시 OCHA 사무차장보로 있었다.”

 
OCHA에선 어떤 일을 했나.
“OCHA는 유니세프나 WFP 등 이행 기구들이 분쟁 지역으로 가는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긴급 구호를 위해 교전을 멈추는 ‘인도적 휴전(Humanitarian Pause)’ 협상도 반군과 하고 현황 실사도 한다. OCHA가 정무적인 이슈를 해결하면 유니세프나 세계식량기구는 의료 및 식량을 트럭에 싣고 현장으로 간다.”
시리아 지원 업무차 인근 요르단에서 9개월간 체류했다는 김 소장은 “국경지대 난민 캠프의 상황은 심각하다”고 했다.
 

“사진이나 글로는 옮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캠프 주변이 우범지대가 되면 해당 정부는 그나마 있던 열악한 캠프도 폐쇄한다. 옮겨갈 시설이 부족하면 마냥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쿠르디(두 해 전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의 아기)가 죽어가고 있다. 분쟁지대 아이들은 구호품이 오면 먹고, 포탄이 떨어지면 그냥 맞을 수밖에 없다. 인구 71억 명 가운데 긴급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12억 명 정도이고, 그중 45%가 아동이다.” 

OCHA 근무가 위험하진 않았나.
“처음엔 두렵기도 했다. OCHA는 119 상황실이나 병원 응급실의 24시간과 같았다. OCHA 긴급대응조정실장 보좌관으로 본부에서 일할 땐 거의 잠을 못 잤다. 시차가 다른 지역에서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 근무 7년 중 OCHA에 근무한 2년은 내가 앞으로 이 일을 해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다. 개발 업무는 제로에서 조금 더 잘살 수 있도록 위로 올리는 일이고, 긴급 인도 지원은 한참 아래 마이너스에서 제로 상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대한민국 외교관과 국제기구 직원 중 어느 일이 좋은가.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그건 외교관의 매력이다. 하지만 국익이 반드시 보편적 가치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제기구에선 보편적 가치, 정의에 기반한 일을 회원국에 제시하고 이행한다는 매력이 있다. 강대국 간 갈등과 충돌 과정에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엔 고위직이면 다들 부러워하지 않나.
“많은 이가 ‘9 to 5’ 근무를 하고 리셉션이나 다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다. 리셉션에 가본 건 손에 꼽고. 회원국을 설득하러 다니고 현장에 가는 게 일의 60% 이상이다.” 
 

김 소장은 외교관이던 아버지(김종해 전 세르비아 대사)를 따라 해외에서 성장기를 대부분 보냈다. 네팔과 태국, 오스트리아, 덴마크에서 살았다. 유엔의 개도국 개발과 인도지원 업무로 일터를 옮긴 건 사춘기 때 네팔에서의 4년 생활이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에 전기가 8시간 이상 안 들어올 때가 많았다. 외국인 단지를 벗어나면 가난은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학교를 청소하고 하루 1달러를 받았다. 그걸로 가족들이 살았다. 벽돌로 벽을 쌓고 천막을 덮은 흙바닥 집이 그들의 공간이었다. 2015년 지진이 났을 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길 원하는 젊은이가 꽤 있다.
“나는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 덕에 해외 생활을 했다. 그래서 조언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국제기구 취업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쉽지 않다고. 유엔에서의 일은 대부분 선진국이 아니라 개도국을 상대로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인가를 놓고 자신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건축이나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다 지원할 수도 있는데, 내가 볼 땐 현장 업무가 대부분이다. 유엔에 지원해 필기시험을 보면 큰 주제를 던져 준 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평소 그 분야를 고민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문제다. 인권·난민 등 하고 싶은 영역의 비정부기구에서 인턴십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채용되면 대개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열정에 더해 어학 실력을 쌓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지금 유엔을 비롯한 모든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571명으로 알고 있다. 더 많은 젊은이가 넓은 국제 무대로 나왔으면 좋겠다.”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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