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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올인 실리콘밸리, 트럼프 ‘망 중립성’ 폐지로 반격하나

 공화당 vs 실리콘밸리 25년 악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2월 열린 ‘테크서밋’에서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가운데), 팀 쿡 애플 CEO와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2월 열린 ‘테크서밋’에서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가운데), 팀 쿡 애플 CEO와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스타 기업인의 ‘요람’ 실리콘밸리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사이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전문직 대상 이민자 취업비자(H1-B)까지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란·이라크 등 무슬림 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H1-B 제한은 한국·중국 등 아시아권 이민자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강력한 반이민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IT기업들 이민·낙태 등에 진보적
히피 세대 클린턴 집권 때 전성기
힐러리에 74% 몰표 던졌으나 좌절

IT에 대한 트럼프 몰이해에 우려
콘텐트 사업 차별 막은 ‘망 중립성’
트럼프가 풀면 막대한 사용료 내야

 
아시아권 이민자를 포함해 전 세계 곳곳의 인재를 끌어모아 성장한 실리콘밸리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옛 소련 출신 이민자 세르게이 브린(43) 구글 공동창업자와 인도계 순다르 피차이(44)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반이민 행정명령’에 저항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민자가 없었다면 애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고 밝혔다. 잡스가 시리아 이민계 2세라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역시 소셜미디어 ‘링크드 인’에 “합법적인 이민자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은 마땅히 보호돼야 한다”고 밝혔다. 애플·구글·MS는 글로벌 시가총액 1~3위 기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그는 성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미국 이민 시스템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사람들, 폭력을 퍼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3일 워싱턴주 지방법원이 ‘반이민 행정명령’ 집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직후에도 트럼프 대통령 측은 “행정명령을 방어할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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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등 공화당 대통령들 이민에 부정적
한 가지 흥미로운 건 트럼프가 유별나서 이민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부시, 그리고 아들 부시까지 1980년대 이후 공화당이 배출한 대통령 모두 불법 이민자가 미국의 각종 복지 시스템을 축내고 있다고 판단했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불법 이민자가 미국의 공립학교에 공짜로 다니고 있고, 푸드스탬프(빈곤층을 위한 식비 지원 제도)를 지원받고 있으며,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무상 의료보험)까지 제공받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실리콘밸리와 트럼프 행정부 간 충돌에는 90년대부터 지속된 공화당과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간 ‘구원’이 자리 잡고 있다. 동성결혼, 이민, 낙태, 총기휴대 문제에서 공화당과 IT 기업인들은 끊임없이 으르렁댔다. 빌 게이츠와 잡스만 하더라도 1955년에 태어나 70년대 히피 문화를 경험하며 성장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생 시절 장발 머리에 마리화나를 즐겨 피웠다고 고백했다. MS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은 “연구실에 가면 젊은 개발자들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포스터를 공공연히 걸어두곤 했다”고 회고했다.
 
닉슨은 공화당 소속이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가 가장 활발하게 벌어진 곳 역시 미 서부의 버클리대와 스탠퍼드대였다. 2년 가까이 이어졌던 버클리대 반전 시위를 주 방위군 투입으로 틀어막은 장본인은 로널드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다. 그는 지금까지도 공화당원들이 떠받드는 영웅이다. 미 주간지 애틀랜틱은 “80년대 레이건을 위시한 보수주의에 패퇴한 히피 세대가 숨어들어간 곳이 실리콘밸리였다”고 설명했다.
 
90년대 클린턴 등장 후 민주당 ‘텃밭’ 자리매김
‘레이건-아버지 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 집권기간(1981~92년) 실리콘밸리는 별다른 정치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 당시 아칸소 주지사가 민주당 후보로 혜성처럼 등장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 태어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이 아끼는 정치인이었다. 클린턴은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처럼 젊은 시절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경제정책에서도 실리콘밸리 기업인의 입맛에 맞았다. 그는 민주당 정강정책 핵심인 ‘뉴딜정책’을 수정해 복지보다 성장률, 사회보장 지출 확대보다 균형예산을 강조했다.
 
‘이단적 민주당원’ 클린턴이 눈길을 돌린 곳은 실리콘밸리였다. 93년부터 8년간 클린턴 행정부는 인터넷 상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스타트업 기업에 3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등 기존 산업과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했다. 앨 고어 부통령은 ‘정보화 고속도로’, 오늘날의 인터넷을 미 전역에 처음으로 깔았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가 90년대 내내 실리콘밸리에 집행했던 정책이 바로 애덤 스미스 식의 자유방임(Laissez-faire)”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 기간 공화당과 실리콘밸리의 정서적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94년 공화당 소속으로 40년 만에 하원의장에 오른 뉴트 깅리치는 의장 재직 4년간 불법 이민자 사면 제도를 사문화했다. 그는 동성결혼,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가족의 가치를 위배하기 때문에 마땅히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성 소수자, 이민자가 듣기에 불편한 발언이었다.
 
클린턴이 대선에 출마한 92년 이후 일곱 차례 대선에서 민주당은 실리콘밸리가 속한 캘리포니아주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특히 베이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 항만지대와 그 위성도시 일대)에선 두 차례나 클린턴이 30%포인트 넘는 격차로 승리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전체 선거인단(538명) 가운데 가장 많은 수(55명)를 가진 대형 주로 선거 결과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
 
98년 탄핵 위기에 처한 빌 클린턴을 옹호하기 위해 나선 곳도 실리콘밸리였다. 이곳에서 진보 성향의 정치 참여 사이트 ‘무브온(moveon.com)’이 탄생했다. 무브온은 훗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일조한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신 민주당원(New Democrat)은 ‘공화당-월스트리트’ 동맹에 대한 대항마 성격으로 실리콘밸리를 집중적으로 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30여 년 사이 ‘레이건의 텃밭’ 캘리포니아는 21세기 민주당의 요새로 변해 있었다. 2000년 이후 치러진 네 차례 대선에서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표로 공화당을 응징해 왔다. 조지 W 부시(공화당)가 재선에 성공한 2004년 대선에서도 베이 에어리어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에게 40%포인트 차 승리를 안겨줬다. 미군의 이라크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 오바마가 출마했던 2008년, 2012년 대선에서는 그 차이가 4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실리콘밸리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에게 ‘올인’하다시피했다. 베이 에어리어 지역에서 클린턴이 얻은 득표수는 233만9480표(74.4%). 반면 트럼프는 59만4821표(18.9%)에 그쳤다. 클린턴이 전국 선거에서 트럼프보다 250만 표 더 많이 득표했는데, 그중 70%(175만 표)가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나온 셈이다.
 
미국 정치 후원금 집계업체 크라우드팩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낸 총 정치기부금(810만 달러) 가운데 95%(약 770만 달러)가 클린턴에게 향했다. 트럼프에게는 30만 달러에도 못 미치는 4%만 돌아갔다.

30년 넘게 지속된 성장기 막 내리나
진보적 부자들과 우파 정부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것일까. 실리콘밸리는 이민자 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IT 산업에 대한 트럼프의 몰이해를 우려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7월 트럼프는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테러리스트를 모집한다는 뉴스를 듣고 “빌 게이츠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아예 꺼버리는 건 어떻겠느냐(close that Internet up)”고 제안했다.

 
현재 미 IT 업계가 주목하는 이슈는 2011년 오바마 행정부가 천명한 ‘망 중립성’ 폐기 여부다. 망 중립성은 이동통신 사업자가 데이터 제한(Data Cap), 속도 조절(Throttling) 등의 방법으로 영화·게임·스포츠 중계 등 각종 콘텐트 사업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망 중립성’ 반대론자인 아짓 파이를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파이는 망 중립성 원칙을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비판한 공화당 시각을 대변하는 인사다.
 
망 중립성 규제가 완화될 경우, 인터넷 업체들은 3G나 4G LTE 망에서 트래픽을 유발하는 만큼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는 당장 천문학적 손실을 감내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문지현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대다수 실리콘밸리 기업이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바로 저가의 초고속인터넷 시스템이었다”며 “페이스북·구글·유튜브가 독주했던 미국 콘텐트 시장 판도가 버라이즌, AT&T 등 이동통신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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