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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떠난 이별여행

 an die Musik : 말러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무슨 악보를 가져왔지?” “브람스의 ‘네 개의 엄숙한 노래’입니다.” 푸르트뱅글러는 얼굴을 찌푸렸다. “다른 건 없나?” 디스카우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 지휘자는 “그렇다면 별 수 없지” 하고는 피아노에 앉았다.



1950년 여름,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는 잘츠부르크에서 음악제를 이끌고 있었다. 젊은 카라얀의 도전이 거셌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였다. 축제에 참가해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던 첼리스트 엔리코 마이나르디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젊은 바리톤 가수를 한 명 아는데 탁월합니다. 한 번 만나 보시겠어요?” 
1951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실황이 수록된 음반.디스카우와 푸르트뱅글러 사진은 합성한 것이다.

1951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실황이 수록된 음반.디스카우와 푸르트뱅글러 사진은 합성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64세 거장 지휘자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25세의 무명 가수는 노래를 불렀다. 맑고 강하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브람스의 느릿한 선율에 실려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몇 소절이 지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음악적 동지가 됐는데, 그것은 다른 참석자들도 느낄 정도였다.
 
피아노에서 일어난 푸르트뱅글러는 디스카우를 이끌고 옆방으로 갔다. 방금 들은 목소리의 놀라운 음역에 대해 말하는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모임을 파하고 거리로 나간 푸르트뱅글러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아내가 곁에 있었지만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우뚝 서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 어린 친구가 브람스는 그렇게 불러야 한다고 확신할 수 있지?” 몇 발자국 떼다가 다시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하기야 나도 그 나이에 알긴 했어!”
 
디스카우가 푸르트뱅글러에게 준 충격은 컸다. 평생 처음 듣는 목소리에 천재적 음악성까지 갖췄다. 이듬해인 51년, 푸르트뱅글러는 디스카우를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초청해 말러의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공연했다. 26세의 디스카우는 싱싱하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잘츠부르크 무대를 휘어잡았다. 두 사람은 다음 해에 같은 곡을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푸르트뱅글러의 유일한 말러 녹음은 그렇게 탄생했다.
 
구스타프 말러는 푸르트뱅글러가 좋아한 작곡가는 아니다. 일부러 피하거나 혐오한 것 같지는 않다. 1920년대까지는 그의 1~4번 교향곡을 연주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전쟁 이후엔 말러는 손도 대지 않았고, 만년에는 지휘자 쿠벨릭이 5번 교향곡을 연주했을 때 대기실까지 찾아가 “연주는 훌륭하지만 그렇게 공을 들여 연주할 만한 곡인지는 모르겠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디스카우를 만나 말러의 연가곡들을 연속적으로 연주했다.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디스카우로 인해 말러를 재발견했든가, 아니면 무슨 곡이든 디스카우와 함께라면 상관이 없었든가. 두 사람은 1953년 베를린에서 말러의 다른 연가곡 ‘죽은 자식을 그리는 노래’를 세 차례나 공연했다.
 
네 곡으로 이루어진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최초의 오케스트라 반주 연가곡이다. 슈베르트 이후 발전한 피아노 반주 연가곡이 관현악의 다채로운 옷을 입었다. 말러가 작품을 만든 것은 20대 중반의 청춘이었다. 독일 중부 카셀의 궁정오페라극장 부지휘자로 일하던 시절이었는데, 말러는 요한나 리히터라는 여가수를 사랑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청년은 실연의 아픔을 겪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 곡을 붙였다.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과 다른 점이다.
 
자기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말러의 시도 19세기 독일 낭만파 음악이 즐겨 사용한 테마를 벗어나지 않는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처럼 여성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정처 없이 떠돌다가 마침내 안식(또는 죽음)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4곡 ‘그녀의 푸른 두 눈’에서는 ‘겨울나그네’의 장면들이 재연된다. 밤에 홀로 떠나며 “이제 정든 집에 작별을 고해야 하네. 아무도 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지 않네”하고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겨울나그네 1곡 ‘안녕히’(Gute Nacht)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겨울나그네에서 가장 유명한 보리수도 등장하는데 가사가 거의 같다. “거리에는 보리수가 한 그루 서 있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단잠에 빠져들었네.”
 
그러나 말러는 슈베르트와 다르다. 3곡 ‘타는 듯한 단검’은 실연의 고통을 처절한 분노와 함께 폭발시킨다. 광적인 관현악 서주에 이어 격정적인 노래가 터져 나온다. “내 가슴에 타는 듯한 단검이 있네, 오 슬픔이여! 그것은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깊숙이 베어 버리네!” 선혈이 낭자하다. 20대 디스카우의 포효는 소름을 돋게 한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시종 애상(哀想)이 넘친다. 18곡 ‘폭풍의 아침’이 격정적이기는 하지만 전체의 균형을 깨지는 않는다. 그의 겨울여행(Winterreise)이 좀 지루하다 싶으면 말러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말러는 꽃피고 새 지저귀는 찬란한 봄에 쓰라린 이별여행을 떠났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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