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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행복어사전] 나에서 우리로 환대

아내는 부각을 좋아한다. 부각은 김, 다시마, 고추, 깻잎 등에 찹쌀 풀을 발라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것을 말한다. 나는 아내 때문에 부각이라는 반찬을 알았다. 하도 아내가 맛있어 하길래 한 점 집어 먹어봤지만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아 우리 집에서 부각은 오직 아내 전용 반찬인 셈이다. 얼마 전 결혼기념일 저녁에 내가 와인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는 부각을 식탁 위에 올렸다. 요즘 와인 안주에 가장 부각되는 안주라며.


아내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처음 부각을 먹어봤다고 한다. 친구와 놀다가 때가 되어 돌아가려는데 친구 어머니가 방에 상을 차려놓았다면서 먹고 가라고 했다. 친구와 둘만 먹을 수 있도록 따로 차린 상이었다. 그저 딸의 친구이고 고작 중학교 1학년 아이에 불과한데 그런 자신을 위해 차린 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했다고 했다. 그 무렵 아내 집안은 장인의 사업 실패로 형편이 어려웠다. 아내는 그런 밥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릇에 담긴 음식이 모두 정갈하고 반찬 하나하나가 다 맛있었다. 상 차린 이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맛있는 음식들 중 그날 처음 보는 음식이 있었는데 그게 부각이었다고 한다.
 
나도 어느 저녁이 생각났다. 배부르고 따뜻하고 나른한 어떤 저녁이. 대학에 떨어지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공부는 안 하고 당구장에 한창 들락거릴 때였다. 단골로 가던 당구장에 박 선생이라고 불리는 손님이 있었다. 물론 그의 직업이 선생은 아니었다. 그는 외항선 선원이었다. 배를 안 탈 때는 당구장에서 당구 치는 일로 소일하는 것 같았다. 그 당구장에 오는 손님 중에서 박 선생이 가장 멋있었다. 외모도 준수했지만 매너도 좋았고 무엇보다 당구 칠 때 자세가 참 훌륭했다. 큐대 끝에 초크를 문지르며 당구대 주위를 천천히 도는 그의 모습은 마치 초원의 사자처럼 기품 있어 보였다. 그가 없을 때면 나는 박 선생 흉내를 내보곤 했다.
 
하루는 당구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던 나를 박 선생이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단칸방 신혼 집에서 저녁을 먹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아내도 낯선 존재인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별한 반찬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 부부가 평소 먹는 밥과 찬 같았다. 그러니까 된장찌개와 김치와 나물과 멸치조림과 김 같은 것들. 왜 그는 나처럼 한심한 녀석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까? 만일 나라면, 만일 요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몇 번 본 재수생 녀석을 집에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는 일은. 그 저녁의 식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구장 대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와인을 마시는 동안 TV에서는 ‘한끼줍쇼’를 했다. 이경규, 강호동 씨가 집집마다 다니며 저녁을 한끼 달라고 청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시대착오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겠는가? 이제 집은 친척이나 친구도 함부로 갈 수 없는 사적 공간이다. 게다가 카메라를 든 방송이라니. 누가 자신의 살림살이와 밥상을 무방비로 방송에 노출하겠는가? 당황스럽고 불편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찾아온 손님을 박대했다는 부담감만 집주인에게 안기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드물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주고 기꺼이 자신들의 한끼 식사를 내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 말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내는 이 프로그램이 환대에 대한 은유라며 김현경 선생의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한 구절을 들었다. “한 사람이 자기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을 들어오게 하여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한 사회가 그 사회에 ‘도착한’ 모든 낯선 존재들을 ? 새로 태어난 아기들과 국경을 넘어온 이주자들을 ? 조건 없이 환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낯선 존재로 이 세상에 도착하여, 환대를 통해 이 사회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부각을 먹을 때 아내의 얼굴에는 바삭바삭한 고소함이 가득하다. 눈꼬리와 입 꼬리가 하나로 이어질 것 같다. 부각의 맛에는 환대의 기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자신을 한 사람으로 대접해준 친구 어머니의 환대에 대한 기억이.


김상득 :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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