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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11

<여기, 널 위해 내가 서 있는데,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을 봤다. 신카이 마코토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지만 일단 봤다. 아니, ‘일단’이라는 표현은 취소하기로 한다. 남들 보니까 별생각 없이 봤다는 뉘앙스인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신카이 마코토의 사진을 본 후 관람을 결정했다. 이상하게 끌리는 얼굴이었다. 성공한 덕후란 바로 이런 사람인가! 염소수염은 화룡점정이었다. 만약 그가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면 내가 이 작품을 평생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을 보고 집에 돌아온 새벽, 오랜만에 넥스트의 <Here, I Stand for You>를 찾아 들었다. 이 노래를 카세트테이프로 사서 워크맨으로 들었던 것도 벌써 20년 전이다. 하지만 오늘은 네이버 뮤직 앱으로 들었다. 앱으로 들으니 감흥이 덜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아, 이 작품을 보고 왜 이 노래를 들었냐고? 그건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옆집 아저씨에게 <너의 이름은.>의 주제가가 <Here, I Stand for You>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서로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니까.
 
어린 마음에 들었던 <Here, I Stand for You>는 꽤나 장엄한 노래였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Here, I Stand for You>에는 쉼표가 찍혀 있다. “여기, 널 위해 내가 서 있어.” 그러고 보니 <너의 이름은.>에는 마침표가 찍혀 있다. 오타가 아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인터뷰에서 이 마침표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쉼표는 쉼표고 마침표는 마침표다. 그러나 이 쉼표와 이 마침표는 결국 같은 곳을 보고 있다. 이 쉼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이 마침표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Here, I Stand for You>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 순간에" 그때의 어린 마음에도 이 구절은 꽤나 가슴을 울렸던 것 같다. 내 눈을 바라보라고 했다고 허경영 얘기 꺼내지 말자. 난 지금 감상에 젖어 있다. 에잇, 다시 시작해야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 순간에"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구절. 그러나 무엇보다 믿고 싶었던 구절. 제발 나의 세상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내가 앞으로도 이 노래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이런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신해철은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이러한 면모를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링딩동’ 사건은 이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자신의 노래 가사와 샤이니의 <링딩동> 가사를 비교해놓은 인터넷 짤방에 대해, 자기는 20대 초반에 자의식 과잉이었다며 오히려 샤이니를 옹호하고 네티즌에 분개했던 그다. 그러나 신해철 본인의 생각이 그렇다 해도 내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신해철이 그 시절, 그러니까 무한궤도, 솔로, 넥스트 초중반 시절에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그가 그냥 큰 집과 빠른 차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고, 운명 같은 건 헛소리라며 우리를 준엄하게 꾸짖었다면, 수많은 한국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최근의 것으로는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자세가 있지만 <Here, I Stand for You>를 대하는 자세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내가 품어온 기준이다. 이 노래를 단지 허무맹랑하고 오그라드는 노래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현실에 닳아가는 나에게 '네가 믿는 게 맞다'며 어깨동무해주는 노래로 받아들이는지는, 적어도 나에게는 굉장히 큰 차이다. 물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꿈꾸게 해주는 노래 몇 개쯤은 주머니에 넣고 살아가는 것도 좋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기는 해도, 쉽게 고개를 떨구지는 않으려고 한다.
 
<신혼집>
 
오늘의 일과를 끝내고 친구를 만났다. 곧 결혼하는 그 녀석은 며칠 전 신혼집을 마련했다. 남의 신혼집에는 발도 들이기 싫다는 나에게 그 녀석은 그러지 말고 들렀다 가라고 자꾸만 나를 보챘다. 몇 번이나 보채길래 그냥 길을 따라나섰다. 절박함 같은 게 느껴진 건 나의 착각이려니 하면서.
 
길을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전세였다. 월세가 아니라 다행이구나. 2억 1천만 원이라고 했다. 대부분이 대출이라고도 했다. 여기에 아주 조금만 보태면 그 집을 살 수 있다고도 했다. 난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세상을 욕했다. 첫 번째로 전세가 비싸다고 욕했고, 두 번째로 전세가와 매매가가 거의 차이가 없는 게 말이 되냐고 욕했다.
 
신혼집은 3층이었다. 넓었다. 내가 보기엔. 거실이 있었고 방이 4개나 있었다. 둘이 살기엔 확실히 넓었고 아이가 태어나도 넓어 보였다. 하지만 녀석의 생각은 달랐다. 여자친구는 이 집을 넓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전에 살던 신혼부부도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이 집을 떠난 거라고도 했다. 세상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오늘 하나 더 늘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녀석은 이케아 가구를 조립했다. 요 며칠 동안 하루 5시간씩 혼자서 가구를 조립한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 녀석의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를 봤다. 마음을 바꿔 조금 더 있다 가기로 했다.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며 우린 한국 가구를 욕했다. 도대체 그동안 한국 가구가 얼마나 남겨 먹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이케아가 정말 품질이 좋냐고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그런 편이라고 말하면서 돈도 최대한 아낄 수 있다고 했다. 거실에 있는 소파가 이케아 건데 저걸 한국 가구로 샀으면 몇십만 원은 더 주었을 거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난 알게 됐다. 5장이었다. 녀석이 이 집과 가구를 마련하기 위해 돌려막은 카드의 개수가. 조건반사적으로 난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해야 하느냐고. 그러자 녀석도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바로 대답해왔다. “신혼여행 갈 수 있잖아.” “신혼여행 가려고 넌 결혼을 하냐?” “어. 공식적으로 갈 수 있는 긴 여행이잖아.” 왜 우리는 누가 가지 말라고 가로막고 있는 것도 아닌데,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물론 농담이 섞였을 것이다. 하지만 왜 농담으로라도 우린 길게 떠나기 위해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구실을 대야만 하는 걸까.
 
휴대폰을 확인한 녀석은 여자친구에게 부재중 2통이 와 있다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약간 초조해 보였다. 난 그 새를 틈타 집에 가겠다고 인사를 하곤 그곳을 빠져나왔다. 물론 통화 중이었기 때문에 소리를 내진 않았다. 녀석의 여자친구가 내 목소리를 들으면 혹시라도 어떤 피해가 갈까 봐 마치 수화를 하듯 손으로만 인사했다.
 
집으로 오는 길을 일부러 돌아서 왔다. 평소에는 효율 따지기 좋아하는 나지만 오늘은 최대한 돌아서 집에 가고 싶었다. 길 위에서 녀석에게 힘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녀석은 조립이 완성된 가구 사진을 답장으로 보내왔다. 난 잘했다고 답을 했다. 잘했다. 앞으로도 잘해라.
 
갑자기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느냐고 누군가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의 행복은 결국 남은 인생에서 대출금이 점점 줄어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안도하는 것뿐인지 누군가 나에게 명쾌한 답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유달리 긴 귀갓길이었다.
 
<좋아요>
 
2016년을 마무리하며 페이스북의 '한 해 돌아보기'를 클릭했다. 연말에 페이스북이 마련한 임시 기능이었다. 간단한 클릭만으로 한 해 동안 내가 페이스북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려주는 서비스였다. 다른 것들이야 뭐 그렇다 치는데, 한 가지 믿을 수 없는 항목이 있었다. 내가 한 해 동안 남의 글에 '좋아요'를 1,846개나 눌렀다고? 그러니까 내가 하루에 평균 5개 정도의 좋아요를 남의 글에 눌렀다는 거지 지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내 기억으로는 1년간 100개도 채 누르지 않았다. 아니, 50개도 안 된다. 좋아도 안 좋은 척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연기학원 다닐 생각까지 했어. 아닌 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마크 저커버그 네가 아냐고.
 
물론 그와 반대로 좋아요를 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나에게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나는 제일 좋다. 나는 가끔 그런 사람들과 파티를 하는 상상을 한다. 실제로 난 ‘시간대별 좋아요 개수 경향’을 대체적으로 알고 있다. 새벽에 원고를 쓰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바로 페이스북에 쓰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지만 일단 참는다. 새벽에서 이른 아침까지는 좋아요 개수가 가장 저조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대업을 무너뜨리지 말자고 제군. 나의 위대한 생각을 좋아요 10개 이하로 날려버릴 순 없지. 혼자 보고 혼자 만족할 거면 내가 왜 페이스북을 써?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 쓰지. 그래서 꾹 참고 있다가 주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올린다. 지금 당신은 이런 날 자랑스러워하고 있군.
 
이어지는 맥락에서, 때로는 극단적인 결단을 감행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관우가 화웅의 목을 일격에 베듯 회심의 글을 올렸으나 기대 이하의 반응이 돌아올 때가 그렇다. 관우의 대접을 바랐는데 페친들이 하후무의 대접을 내게 해주면 곤란하다. 좋아요-헌터로서, 이럴 때는 정말 견디기가 쉽지 않다. 정신력으로 버틴다. 대표적으로 난 이 문장을 하루에 두 번 올린 적이 있다.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이루어낸 것에만 집중할 뿐... 그 사람이 견딘 외로움에는 관심이 없다..." 몇 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처음 올렸는데 페친들이 바빠서 못 보고 지나친 것 같아 몇 시간 후에 다시 올렸다.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좋아요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좋아요'도 다 같은 좋아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요에도 다양한 결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떤 좋아요는 습관적이고 어떤 좋아요는 말 그대로 그냥 좀 좋은 정도다. 한편 어떤 좋아요는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좋아요는 마음의 무게를 실어 꾹 눌러본 부끄러운 진심이다. 이런 좋아요는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무언의 신호다. 게다가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지만 어떤 좋아요보다는 제법 큰 관심과 마음들이 투명하게 페이스북을 부유한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사실 좋아도 좋아요를 안 누르고 안 좋은 척한다고 말했던 건 거짓말이다. 좋아요를 안 누르는 건 맞지만 안 좋은 척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게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굳이 내 실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당신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굳이 확인받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는 눈팅이나 하면서 당신을 계속 좋아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의 눈팅은 누군가의 좋아요보다 진하고 강하다.
 
문득 좋아요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사실 좋아요 버튼은 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중이다. “시간 없으시죠? 글 잘 못 쓰시겠죠? 귀찮으시죠? 그럼 그냥 이 버튼 하나 누르세요. 다 해결되거든요.” 만약 좋아요 버튼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터치 한번’ 대신 긴 문장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좋아서 누른 건지, 그냥 글을 읽었다는 표시로 누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 없는 습관인 건지 모를 좋아요보다는 조금 더 상대방의 마음을 깊게 어루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요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엇갈리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요가 없었다면 우리는 더 많은 마음을 섞었을 것이다. 오늘만은 좋아요에 좋아요를 누르고 싶지 않다.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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