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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중국에 대한 인식 차 때문에 한·일관계 악화될 가능성 크다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소란하다. 경찰청 옆 동북아역사재단 지하. 575㎡의 공간은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독도체험관- . 120분의 1로 줄인 독도 모형이 있는 자연관, 동시에 16명이 들어갈 수 있는 4D영상관, 역사관이 올망졸망 들어앉았다. VR도 도입할 계획이다. 1일 오후 충남 당진에서 온 송악고 학생들이 몰려나왔다.

2012년 9월 문을 연 이후 관람객이 18만 명을 훌쩍 넘었다. 초·중학생 단체 방문이 많다. 외국인도 찾아온다. 미국·영국·독일·일본의 방송사들이 취재해 갔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내놓기에는 너무 옹색해 보인다.
김호섭 이사장은 1일 재단 지하에 설치된 독도체험관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의 부상을 기회로 삼으려는 한국과 위협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인식 차이 때문에 우호관계로 되기 어려운 게 아닌지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김호섭 이사장은 1일 재단 지하에 설치된 독도체험관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의 부상을 기회로 삼으려는 한국과 위협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인식 차이 때문에 우호관계로 되기 어려운 게 아닌지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김호섭(63)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한 번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20~30명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한 학급이면 딱이죠. 오늘 같은 날, 날씨도 추운데 다른 반 학생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해요.”

김 이사장은 지난해 5월 서울 은평구와 3만3000㎡를 무상 임차하기로 약정을 체결했다. 내년에 착공해 2020년까지 지하 1층 지상 4층의 동북아역사기념관을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우리 재단에 역사학 박사가 50명 정도 있습니다. 역사학은 좀 길게 보고 조용한 환경에서 연구해야 하는데, 너무 번잡합니다. 박사님들에게 연구실은커녕 칸막이로 서로 시야만 가려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재단을 만든 지 10년이 됐죠.
“네.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도약하려 합니다. 지금까지는 정책 개발에 너무 힘을 많이 썼어요. 연구 중심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단독청사와 맞물려 ‘새로운 신념을 위한 도약’, 이런 준비를 하고 싶어요.”
그는 김용덕 전 서울대 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교수,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에 이은 제4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다.

“제일 큰 성과라면 ‘동북공정’ 대응입니다. 중국이 2002년부터 시작했는데 이제 압박을 안 하잖아요. 사실 우리 재단의 업적이라고 봅니다. 중국도 한국과 역사로 다툴 필요까지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전체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나 싶어요. 2006년 9월 노무현 대통령께서 재단을 설립하셨는데, 선견지명이 있다고 봐요. 역사학자 30명을 바로 채용하셨거든요. 지금 예산이 200억원 정도인데 노 대통령 때는 300억원이었어요.”
 
일본이 올해부터 모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표현한다는데 ….
“제가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 일본 초·중학교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기술하고, 교육시키는 것이거든요. 일본의 차세대에 주입하는 거라 우려됩니다. 한·일이 미래세대에서도 계속 다퉈야 하는 상황을 일본이 만들고 있다, 그런 게 아쉬운 거죠.”
쿠릴열도, 센카쿠열도, 인공섬 문제 등 최근 동북아에서 영토 갈등이 너무 고조됩니다.
“독도를 양국 관계 전체 측면에서 다루려는 시도들이 양국 모두에 있었다고 봅니다. 일본은 지금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너희들이 그러느냐. 우리는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 그 이후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독도를 다룹니다. 아베 총리의 일본 우선주의라고 할까요.”
위안부 할머니들도 독도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건 반대하셨는데, 한·일 관계를 독도에 얹는 건 잘못인 것 같습니다.
“아주 잘못됐다고 봐요. 자꾸 얽어서 문제를 확대 재생산할 게 아니고, 하나씩 개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과거 외교부는 독도가 국제 분쟁으로 표출되는 것을 억제하는 쪽이었는데, 독도 교육을 강화하는 건 이제 달라진 건가요.
“대외적으론 일본과 우리는 영토분쟁이 없습니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영토가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 재단도 그 입장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내의 압박이라는 게 있거든요.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島根)현에 편입하면서 식민지 침탈의 첫 희생물로 삼았습니다. 식민지 역사의 청산이라는 측면이 있죠. 자꾸 문제가 있다고 하니 한번 가봐야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독도는 가보셨습니까.
“지난해 가봤습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과 독도를 방문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400인승 관광선이 두 대 다닙니다. 배에서 파는 것도 아닌데 각자 태극기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그러고서 감격하는 거예요. 독도가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심을 확인하는 곳이 된 게 아닌가. 굉장히 좋게 봤어요.”
중국의 동북공정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중국은 자기들을 한(漢)민족,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고 봅니다. 현재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이 자기 역사라고 합니다. 고구려도 자기들 지방정부 역사라는 거죠. 영토중심사관입니다. 자기들 영토 안의 역사를 중국 역사라고 할 때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긴 합니다. 역사 해석은 국력에 비례하더라고요. 지안(集安)에 갈 때마다 매번 항의합니다만 국력 부족이 느껴집니다.”
역사 해석이 달라도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협조할 부분도 있지 않나요.
“동북 3성 조선족 학자들과 교류하고, 고구려·발해 유적을 발굴해 달라고 연구비를 지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선족들도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물으면 중국인이라고 하거든요. 장수왕묘 같은 적석총은 고구려 유적이라고 중국에서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실체를 중국의 지방정부라고 토를 달거든요.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하기 어렵습니다. 북방족이 지배한 중국은 중국 아니냐. 그것도 중국이란 말이죠. 복잡해요. 그러니까 역사 해석도 국력이라는 거예요.”
중·일의 국내 정치적 요인들이 크지 않나요.
“한·일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중국의 국력 부상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중국의 경제력을 어떻게 잘 활용할까. 북한의 안보 위협과 관련해 중국에 대한 기대도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의 국력을 일본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에 한·일 간에 우호관계로 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게 아니냐, 걱정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국내 학계 갈등이 오히려 심한데….
“역사 공부 한 사람들에게 소명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독단으로 흐르는 수가 있어요. 나와 다른 주장은 용납하지 못하는 게 특히 역사학자들에게 좀 강합니다. 강단 사학자들은 ‘증거가 없는데 상상력으로만 하면 되느냐’고 하고, 재야 사학자들은 ‘실증론을 하려 해도 자료가 다 없으니 우리에게 유리한 상상력을 동원하자’고 하는데 저는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안 합니다. 전체적인 토론이 벌어지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건 개인이 독점할 순 없다고 봐요.”
8년 동안 45억원을 들여 만든 역사지도를 포기한 게 양측 갈등 때문인가요.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연구 결과물이 굉장히 낮은 등급을 받았습니다. D등급을 줬습니다. 그건 재야 사학가들 주장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지도 450장 중 한반도 고대사 관련은 23장이에요. 문제는 지도로서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역사 지도가 왜 필요한 건가요.
“저도 처음에 와서 ‘지도가 없다고 불편한 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쓰는 지도가 모두 일본에서 그린 지도, 중국에서 그린 지도라는 거예요. 우리의 역사 인식에 근거해 우리가 만든 지도가 없다는 것이지요. 매우 창피한 일입니다.”
동북아에서의 역사 갈등이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해소돼야 합니까.
“아…이건 엄청 어려운 질문입니다. 지역사학(地歷史學)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제국을 운영했던 국가이고, 일본도 한때 제국을 운영했잖아요. 우리는 제국주의의 피해를 당했던 나라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사인식이 같아도 안 되고, 같을 수도 없다고 봅니다. 역사 문제가 전면에 나서서 현재까지도 양국 관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초래하는 건 굉장히 불행한 겁니다. 역사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동북아에 화해 기반이 됩니다. 거기에 우리 재단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 BOX] “국사편찬위가 국정교과서 검정 신청 하겠다는 건 웃기는 얘기”
김호섭 이사장은 국정교과서 제작에 편찬심의위원으로 참여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도 그의 입장은 확고했다.

“대한민국은 굉장히 성공한 나라인데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한 역사 교과서가 대부분이라는 게 교육부 생각입니다. 검정으로 사실 오류를 고치라고 해도 버텨요. 내용에 오류가 있고 사관이 잘못돼도 꼭 국가가 개입해 고쳐야겠느냐는 절차 문제도 있죠. 저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서 오류는 고쳐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을 존중합니다.”

- 오류는 검수만 강화해도 해결되지 않나요.

“검수위원들이 검정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줘야 하는데 쉽게 승인해 준다는 겁니다.”

- 검정교과서를 인정해 결국 원점 아닌가요.

“그건 사실 정치적 타협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가 망신이죠. 어느 순간 청와대가 허물어져 교육부가 다 뒤집어 쓰게 된 거죠.”

그는 검수위원에 이어 교과서를 선택하는 교사에 대한 불신도 표시했다. 한쪽의 이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교과서의 검정을 신청하겠다는 말도 하던데 웃기는 이야기예요. 편법입니다. 만들어 놓은 역사 교과서를 국회가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국가가 너무 개입하는 게 아닌가요. 국회도 국가인데.”

글=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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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