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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뽕짝, 막장 그리고 선전전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가. ‘박근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노래를 들은 뒤 떠오른 생각이다. 지인에게서 SNS를 통해 받은 유튜브 영상은 태극기와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낯 뜨거운 찬양 일색의 가사는 조악했고, 쿵짝 쿵짝 장단의 곡조는 단조로웠다. ‘박근혜 대통령 너무 불쌍해’로 시작하는 송가(頌歌)는 ‘우리가 지켜드린다/종북세력, 좌빨, 국가 파괴자, 대통령 건들지 마라’고 경고한다. ‘청렴, 결백, 깨끗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우리의 희망 대통령 박근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미화한다.

곡의 완성도는 논외로 치자. 그래도 관광버스에서 막춤에 맞춰 불러 젖히기엔 손색없는 ‘고속도로형 트로트 뽕짝’이었다. 지방의회의 한 의원이 만든 이 노래가 며칠 전 유튜브에 공개된 이후 누적조회수가 60만 회에 육박한다. 박사모(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 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한다. “100만 명이 들으면 탄핵 기각이 일어난다. 집회에서 틀고 노래를 배우고 퍼나르자”는 선동이 SNS를 떠다니고 있다.

이 ‘박근혜 찬양가’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돌아가는 흐름을 읽노라면 박 대통령의 대응이 놀라울 만큼 정교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씨에게 놀아났다는 섣부른 판단은 순진한 착각이다. 누군가의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사죄→책임 회피→반격의 수순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송구스럽다”며 악어의 눈물을 연출하던 지난해 세 차례의 대국민사과는 형식적인 사죄의 단계였다. “죽을죄를 지었다”며 지난해 검찰 첫 출석 때 보인 최씨의 제스처는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비리의 홍수가 폭로되면서 연민의 정은커녕 여론은 더 악화됐다. 그러자 올 초부터는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부인과 떠넘기기로 급선회했다. 입만 열면 “억울하다”는 최씨의 강변도 가세했다. 픽션(허구)도 막무가내로 우기면 팩트(사실)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마술을 믿는 모양이다.

이제는 반격의 모드다. 핵심은 음모론과 선전전이다. 박 대통령은 ‘누군가의 기획’ ‘거짓말의 거대한 산’이라고 역공을 폈다. 최씨는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고 변죽을 울렸다. 음모론의 실체는 19금(禁) 막장 드라마였다. ‘최순실과 고영태의 불륜’ ‘내연관계’라는 민망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내밀었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탄핵 사건을 20년 차이의 바람난 아줌마와 젊은 남성 사이에 얽힌 배신과 치정의 단막극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분은 막장 드라마에 누드라는 에로틱한 각성제를 얹어주는 기막힌 재주를 부렸으니 누굴 더 탓하랴.

침묵의 나선(螺線, the spiral of silence)을 깨는 선전전도 한창이다. 다수 의견(촛불민심)에 밀려난 소수 의견의 사람들(박 대통령 지지세력)이 고립에 대한 공포로 침묵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인 듯하다. 태극기집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법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침묵하는 지지층에게 결집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선전술에 대해 “추상적인 관념은 피하고 감정에 호소하며, 간단명료한 문구를 반복해야 효과적”이라고 압축했다. 앞으로도 ‘거짓말’ ‘엮은 것’ ‘억울’이라는 앵무새의 단어만 들릴 것이다. 대중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지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선택적으로 소비한다. 뽕짝과 막장이 누군가에게는 먹히는 이치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록과 뽕짝, 진보와 보수의 진영 대결은 어느덧 주말의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제 65세 생일에 참모들과 칼국수를 먹으며 자화자찬하는 여유를 부렸다. 어제는 특검팀의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버텼다. 법치와 이성보다 격한 구호가 난무하고, 변혁에 대한 갈망이 허탈감과 무기력으로 바뀌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성은 작은 조랑말일 뿐이고, 감정은 커다란 코끼리만 하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두렵게 다가온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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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